[뉴스토마토 최기철·김광연·홍연 기자]검찰 수사관이 피의자 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에게 피의자 후방에 앉으라고 요구한 행위는 변호인의 변호권을 침해한 처분으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수사관의 변호인에 대한 착석 요구행위는 검찰과 변호사들이 피의자 조사 시 수사기밀 유지와 변호권 보장을 서로 주장하며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여온 문제다. 그러나 이번 헌재 결정으로 모두 정리됐다. 이제 검·경은 피의자 조사시 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에게 어디에 앉으라고 요구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30일 법무법인 정인이 “피의자 조사시 수사관의 변호인에 대한 후방 착석 요구 등은 변호인의 피의자에 대한 접견교통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부산지검 동부지청 수사관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재판관 7대 1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수사관의 후방착석요구는 공권력 행사
재판부는 우선, 수사관의 후방착석요구가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인지 여부에 대해 “피청구인이 청구인을 잠재적으로 피의자신문을 방해할 수 있는 존재로 파악해 변호인의 역할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피의자신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이 사건 후방착석요구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고, 청구인이 항의할 경우 피청구인이 퇴실을 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피청구인인 수사관의 후방착석요구행위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미 종료가 된 후방착석요구행위에 대해 위헌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관련 지침에 근거해 후방착석요구행위를 반복할 위험성이 있고, 변호인의 피의자신문참여권의 헌법적 성격과 범위를 확인하고 이를 제한하는 행위의 한계를 확정짓는 것은 헌법적 해명이 필요한 문제에 해당하므로, 심판이익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정인은 수사관의 조사 참여신청서 작성요구와 피의자 접견불허행위도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참여신청서 작성요구는 피의자 접견을 위한 신분확인 행위로 공권력 행사가 아니고, 접견불허행위 역시 변호인 본인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소원심판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각하했다.
"변호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권 제한"
재판부는 “형사절차에서 변호인이 피의자신문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인의 변호권으로서 보호되어야 한다”며 “피의자신문 시 변호인이 피의자의 옆에서 조력하는 것은 변호인의 피의자신문참여권의 주요 부분이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에게 후방착석을 요구하는 행위는 변호인의 피의자신문참여를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인의 변호권을 제한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수사관의 후방착석요구행위는 그로 인해 위축된 피의자가 변호인에게 적극적으로 조언과 상담을 요청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변호인이 피의자의 뒤에 앉게 되면 피의자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거나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제시한 서류 등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수사관의 후방착석요구행위는 변호인인 청구인의 피의자신문참여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의자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이 피의자 옆에 앉는다고 해서 피의자 뒤에 앉는 경우보다 수사를 방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거나 수사기밀을 유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창종 재판관 "착석요구는 공권력 아니야"
이에 대해 김창종 재판관은 “변호인이 수사관의 후방착석요구행위에 따라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나 의무가 없고, 그에 불응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거나 퇴실조치를 당하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공권력행사성이 없어 각하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김 재판관은 “설령 후방착석요구행위가 권력적 사실행위에 해당하더라도 이는 형사소송법 417조 상의 준항고 대상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해당 사건에서는 청구인이 피청구인의 후방착석요구행위로 인해 피의자에게 조언을 행사하는 데에 대한 어떠한 지장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변호인으로서의 피의자신문참여권을 침해당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매우 반기는 분위기다. 허윤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은 “피의자 뒤에 앉아 있을 경우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즉각 알기 어려웠다. 헌재의 결정은 당연한 귀결이고 변호사들도 모두 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지영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도 개인 생각임을 전제로 “변호인이 조사입회에서 앞에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뒤에 앉아 있으면 조사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이를 어길 경우 조사방해행위로 중간에 퇴실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듣는다”며 “이번 헌재의 결정은 이런 문제점을 모두 지적한 것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피의자 인권도 고려한 결정으로 평가"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헌재의 결정에 대해 뭐라 말할 것은 아니지만, 피의자에 대한 인권적 고려 차원에서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A수사관은 구속 피의자에 대한 조사에서 변호인으로 참여한 법무법인 정인 소속 B변호사가 피의자 옆에 앉으려고 하자 후방에 앉으라고 요구했다. 또 변호인 참여신청서도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요구에 모두 응한 B변호사는 피의자와 얘기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으나 A수사관은 변호인 접견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이에 B변호사는 당시 시각이 저녁 6시가 넘은 상태였기 때문에 피의자가 구치소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하고 접견하지 않았다. 이어 다음 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진성(왼쪽 네번째) 헌법재판소장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11월 심판사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앚아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김광연·홍연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