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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어버이의 싸움
오늘 부는 바람은
입력 : 2016-05-02 오후 3:45:11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학교에 부모의 인적 사항과 가훈을 적어내야 했다. 조부모와 증조부모까지 대가족이 모여 살 때야 가풍과 가훈이 중요했겠지만 이제 막 분가한 사회 초년 가정에 별달리 가훈이랄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처음엔 ‘정직하게 살자’로 적어내라던 부모님도 이내 민망하셨는지 언젠가 이태원에서 좋은 글귀가 적힌 액자를 구해오셨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가훈이 되었다.

 

아무 역사도, 의미도 없는 글귀를 가훈이라 말하기 위해선 암기가 필수였다. 글귀는 오른쪽부터 세로로 적혀져있었는데 어린 나는 그것이 어색했었는지 왼쪽부터 가로로 읽어 통으로 외워버렸다. ‘크희넓마밝세, 게망게음게상, 품은갖은살은, 자/고/며.’괴상하기만 한 이것이 15년이 지나도록 외우고 있는 우리 가훈이다. ‘세상은 밝게살며, 마음은 넓게갖고, 희망은 크게품자’는 뜻과 형식은 모두 알아볼 수 없게 왜곡되었지만 학생기록부에 적어내기만 잘 적어내면 되었다. 어차피 가훈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누가, 왜 썼는지도 모를 보급형 가훈은 거실 한 가운데에 꽤나 오래 걸려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 꾸중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마치 아주 오래된 우리 가정의 수호신인 것처럼, 때로는 옛 선조가 물려준 가보인 것처럼 존재감을 내뿜었다.

 

의미도 모른 채 반복해 외우던 것은 가훈만이 아니었다. 매일, 매주 조례시간에 하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그러하였고, 음악 시험 때야 다 외운 애국가도 비슷했다. 무슨 뜻인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알 필요도 없었다. 대충 좋은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잘 외우기만 하면 괜찮은 어린이가 될 수 있다.

 

나와 다르게 ‘괜찮은 사람’이 되길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와서의 일이다. 국가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지 않고, ‘대한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암기한 것이 아닌, 각자가 바라는 국가를 이야기 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진노한 아버지들의 목소리가 이들을 가로막았다. 비난의 기준은 암기한 국가다.‘자녀들에게 김일성 주체사상 가르치는 역사 왜곡 교과서 OUT’,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세월호 집회에 대한 반대 집회)’, ‘북한 찬양하는 종북 콘서트 항변한 오세현군 응원한다! 오세현군의 조국은 대한민국! 황선, 신은미의 조국은?(오세현 테러사건).’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소위 애국보수 단체들의 현수막 문구다.

 

 

JTBC관련 보도 영상 캡쳐. 사진/바람아시아

 

 

짐작컨대 어버이 연합의 ‘국훈’은 나의 어렸을 적 가훈과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크희넓마밝세, 게망게음게상 ….’무슨 뜻인지 몰라도 된다. 대충 좋은 느낌이고 잘 외우기만 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 국가가 시킨 일이, 대통령이 하는 일이 감히 잘못된 것일 리 없다. 뻐끔뻐끔. 마치 치열하게 고민한 것처럼, 이것만이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늘 그래왔듯 국민의례를 반복한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버이들이 일당 2만원에 동원됐을 리 없지 않은가.

 


JTBC관련 보도 영상 캡쳐. 사진/바람아시아

 

 

 

송은하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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