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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배터리 빼고 시작합시다"…베테랑이 털어놓는 '담합의 세계'
순번 정하고 나눠먹기 일상화…배신 업체에는 가혹한 응징
입력 : 2015-11-11 오전 7:00:00
"걸리면 불법이지만, 안 걸리면 관행이다. 부득이 담합을 깨는 행위를 하면 입찰금의 두 배에 해당하는 다음 사업에 들러리를 서야 하는 자체 규정도 있다."
 
지난 14년간 대형 건설사에서 국내외 영업을 담당했던 A씨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 3일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는 '설'로만 떠돌던 국내 건설사의 입찰 담합과 관련해 어두운 단면과 함께 담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낱낱이 털어놨다. 현직에 있는 그는 취재팀이 여러 차례 설득해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건설사 입찰 담합에 대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4~5개 프로젝트 응찰 리스트를 가지고 각 사별 실무진들이 약속장소에서 만난다”면서 “큰 건의 경우 회의 전 보이스펜이나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심지어 배터리를 빼놓고 얘기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불법행위를 모의하기 때문에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담합은 첫째도 보안, 둘째도 보안"이라고 말했다. 5년 전부터는 설사 회사에서 지시를 받았다고 해도 실무진이 처벌을 받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게 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A씨는 “모인 업체들이 사실상 원청(발주처)에 예산을 잡아주는데, 예산비용에 가장 근접하게 파이를 키우기 위해 ‘리프트 업(lift-up·입찰가 끌어올리기)’을 한다”면서 “이로 인해 롤러코스트를 타던 입찰가 편차는 자연스럽게 잡히게 되고, 평균가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1번 타자, 2번 타자 등 순위를 정하는데, 예산금액과 지분 등을 보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한다. 대개 비밀리에 판을 짠 업체의 목소리가 크다”면서 “1빠(은어)가 되기 위해 논리와 명분이 있어야 하고 기회비용(원천영업), 즉 발주처와의 관계 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접대비 영수증까지 내밀며 주도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또 “중량감(통상 1000억원 이상) 있는 프로젝트는 임원진에서 협의가 이뤄진다. 실무진은 확인만 하는 수준으로, 연판장처럼 각서(회의록)를 남기는데 그게 암암리에 계약서가 된다”고 덧붙였다.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들끼리 얘기를 마치면 사실상 수주 계약이 마무리된 것으로 간주한다.
 
입찰 참여 기업이 실적 압박 등을 이유로 흑심을 품고 담합을 깰 경우 통상 두 가지 형태로 응징이 이뤄진다.
 
A씨는 “담합에 참여한 건설사들은 이미 최저가를 알기 때문에 약속한 플레이를 한다”면서 “협상판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박킹'(배신) 업체에는 헛바퀴를 돌려 2배 금액을 물어주는 게 통례”라고 설명했다. 가령 1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배신하면 두 배에 해당하는 2000억원 규모의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순위에서 배제시킨 뒤 헛바퀴를 돌린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완전히 판(담합)을 깨는 극단적인 경우다. 배신 업체의 입찰 수주를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수법으로, 나머지 업체들이 순번을 정해 원가 이하로 입찰에 참여한다. 담합을 깬 업체 역시 이 같은 패턴을 몇 번 당하다 보면 수주를 하기 위해 원가 이하로 입찰가를 낮출 수밖에 없게 된다. 덫에 걸리게 되는 꼴이다.
 
A씨는 “박킹 업체는 못 먹거나 운 좋게 먹어도 썩은 걸 먹는 수밖에 없게 된다”면서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 없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잡아내기도 상당히 힘들다”고 말했다. 또 “윤리경영 한답시고 공정위에 신고하는 건설사는 사업을 접을 각오로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하면서 ”극단적이긴 하지만, 나머지 건설사가 가만 놔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들만의 카르텔을 깰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건설사는 재하도급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악용해 짬짜미를 벌이기도 한다. B건설사가 대형 프로젝트를 높은 가격에 수주하고, 이면계약을 맺은 C건설사에 원청의 승인 없이 재하도급을 줘 이익을 나눠 먹는 방식이다.
 
그는 건설사는 원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적발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부실공사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재하도급 건설사는 마진을 극대화하기 위해 원가절감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실공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A씨는 이와 함께 “10여곳의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하면 수주하기 위해 서로 경쟁해 당연히 낙찰가가 낮아진다”면서 “하지만 컨소시엄 형태의 사업 참여는 서로 이익을 나눠먹는 것으로 담합 여지가 충분하다. 단독입찰 조건만 없으면 사이즈를 키우기 위해 서로 뭉치는 게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건설사의 담합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최저가 입찰제’를 도입하면서 업체들이 ‘과당경쟁’에 놓여 마진이 없는 데다, 장비와 인력은 놀릴 수 없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플랜트나 토목공사는 수주를 해도 끊임없는 설계변경이나 공사대금 지연 등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해 추가비용이 든다”면서 “여기에 지난 10여년간 건설경기 침체까지 지속되면서 국내 건설사들이 줄줄이 쓰러졌다”고 말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최근 5년간 20개 건설사의 입찰 담합 관련 매출액은 무려 44조원에 달한다”면서 “건설산업은 ‘담합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건설사들이 가장 원하는 건 ‘입찰자격 제한’ 해제인데, 정부가 최근 사면을 통해 입찰자격 제한을 풀어줬다”면서 “범죄자들이 형량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니, 아예 ‘범죄기록’ 자체를 말소시켜 준 것과 같다”고 강하게 정부를 비판했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김영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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