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CF 사업에 참여한 국내 건설사들이 수년간 입찰 담합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는 취지의 EDCF 기금이 건설사들의 뒷주머니로 새면서, 실무 책임자인 수출입은행의 관리감독 기능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국가 이미지 훼손 또한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다.
◇EDCF 사업 뭔가
EDCF(대외경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는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고 경제교류를 증진할 목적으로, 1987년 우리정부가 설립한 개발원조자금이다. 기금은 통상 교통, 수자원, 에너지, 교육 등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쓰인다. 장기 저리의 혜택을 주는 대신, 원칙적으로 우리나라 제품과 서비스 구입을 조건으로 하는 구속성 원조(차관을 제공하면서 물자·기자재 및 용역의 구매계약을 반드시 차관공여국의 기업과 체결하도록 제한) 형태로 운용된다. 기획재정부가 기금의 관리를 맡고 있고, 정부 간 협정 체결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실무는 한국수출입은행이 담당한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EDCF 규모도 확대됐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말 누적 기준 52개국에서 337개 사업, 총 11조6479억원의 EDCF를 지원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해당 국가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국내 기업들에게는 사업 수주 및 해외 진출 기회로 활용되는 등 EDCF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다.
◇대우인터·현대엔지니어링·효성 등 대기업 5곳 가담
지난달 25일 취재팀 앞으로 "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으로 진행되는 사업 중 해외 전력 관련 사업에서 국내 대기업 간 담합이 있었다"는 내용의 제보가 접수됐다. 제보자는 EDCF 입찰 담합 의혹이 있는 프로젝트명과 시기, 담합에 참여한 건설사, 수주형태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했고, 심지어 당시 각 사별로 해당 사업을 책임진 팀장들이 모여 담합을 모의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집중적으로 짬짜미가 이뤄졌다”면서 “효성, GS건설, 대우인터내셔널, 현대엔지니어링, 삼성물산 등의 해당 사업(전력) 부문 담당자들이 모여 담합을 주도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이들은 상호 경쟁 없이 나눠먹기식 사업 수주를 목적으로 정기적인 회합을 진행해 입찰에 참여할 기업과 들러리, 입찰 포기 회사 등 각자의 역할을 구분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를 비롯해 그간 시장에서 '설'로만 떠돌던 시나리오 담합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취재팀은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도움을 받아 수출입은행에 '최근 5년간 EDCF 사업목록' 자료를 요청, 총 84건에 대한 프로젝트별 낙찰가와 심사 컨설던트, 입찰 참가업체 및 계약업체 등 전반적인 내용을 확보해 면밀히 분석했다.
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으로 진행되는 해외 송전망 구축 등 전력부문 사업은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뤄졌고, 담합이 의심되는 사업 역시 이 기간에 집중됐다.
지난 ▲2011년 11월28일 방글라데시 ‘비비야나-칼리아코 송전망 개발사업’(효성 송전·GS건설 변전 수주), ▲2013년 9월17일 탄자니아 ‘이링가-신양가 송변전망 확충사업’(GS건설·효성 공동수주), ▲2013년 12월28일 에티오피아 ‘술루타-게브레 구라차 전력망 구축사업(대우인터내셔널·효성·삼성물산 공동수주), ▲2014년 1월20일 니카라과 ‘재생에너지 송변전사업’(대우인터내셔널·현대엔지니어링 공동수주) ▲2015년 4월7일 가나 ‘Prestea-Kumasi 전력강화사업’(GS건설·삼성물산 공동수주) 등이 담합 사례로 지목됐다.
담합이 의심되는 사업들에 대한 최종 계약가와 낙찰가율은 다른 EDCF 사업 평균 낙찰가율과 비교해 대부분 높았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탄자니아 낙찰가율 99.4%(3126만3000달러·360억9313만원), 에티오피아 100%(7132만4000달러·823억4355만원), 가나 100%(5815만0000달러·6713417만원), 니카라과 100%(2509만9000달러·289억7679만원), 방글라데시 84.2%(7116만2000달러·822억4903만원) 등으로, 방글라데시 프로젝트를 제외한 모든 사업에서 EDCF 총 사업 평균 낙찰가율(93.3%)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담합이 의심되는 송전망 사업비만 2968억원 정도다.(9일 환율 기준)
이와 함께 EDCF 송전망 각 사업별 입찰에 참가했던 업체 리스트를 보면, 이들 5개 사는 컨소시엄이나 입찰 경쟁사(들러리)로 대부분의 전력망 사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담합을 위한 사전작업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지난 5년간 EDCF 사업목록을 살펴보면 현대건설은 1억달러 이상 대형 프로젝트가 아닌 사업은 거의 참여를 하지 않았고, 현대중공업은 EPC(일괄수주 방식의 턴키) 참여가 아닌 기자재 공급을 중심으로 사업에 참여했다. LS산전 역시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보자는 LS산전의 경우, 기존 카르텔에 의해 담합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친목도모에서 입찰담합까지…이해관계 대립하자 '균열'
과정은 은밀하고도 치밀하게 진행됐다. 제보자는 “대우인터내셔널과 효성,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삼성물산의 팀장·부장급 인사들이 협력관계 증진이란 목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술자리와 골프회동을 하면서 단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상호 신뢰가 쌓이자, EDCF 자금의 송전선·변전소 등 송전망 턴키공사 건에 대해 경쟁 없이 공평하게 나눠 먹자는 취지로 협의가 진행됐고, 어떤 협력구도로 갈 것인지 구체적인 역할 분담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입찰이 진행된 탄자니아 EDCF 사업건(발주처 TANESCO·탄자니아 국영송전청, 사업명 Iringa-Shinyanga Backbone Transmission Investment Project)의 경우 효성과 GS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응찰가를 입찰 들러리로 나선 대우인터내셔널에 미리 알려줬고, 결국 효성과 GS건설이 높은 가격에 수주했다.
같은 해 시행된 에티오피아 사업건(Sululta-Gebreguracha Power Transmission EDCF PJT)은 효성과 대우인터내셔널이 컨소시엄을 구성, GS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들러리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담합에 포함되지 않은 두산·경남·LS산전도 별도로 컨소시엄을 구성, 입찰에 참여했지만 GS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들러리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면서 두산 컨소시엄이 떨어지도록 작업을 했다는 게 제보자 주장이다.
제보자에 따르면, 니카라과 사업건의 경우 대우인터내셔널과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을 밀어주기로 사전에 모의가 됐다. 효성이 들러리로 서고, 삼성물산은 담합에서 빠져 독자적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컨소시엄은 발주처와 사전에 금액을 정해놓고 입찰요건을 갑자기 변경, 입찰가가 더 낮았던 삼성물산과 LS산전을 부적격 이유로 탈락시킨다. 또 들러리인 효성이 탈락할 경우를 대비해 탈락 발생 요건이 있는 입찰서류들을 모두 교체하는 방법으로 입찰에 참여시켰다.
돈독했던 담합은 회사간 이익이 대립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출입은행의 지난해 EDCF 사업목록에 빠져 있는 라오스 사업이 이들의 관계를 틀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저 입찰가를 제시한 LS산전이 자격미달로 탈락했다. 2순위인 효성과 3순위인 대우인터내셔널·현대엔지니어링 간의 협력구도로 좁혀졌다. 그런데 입찰평가가 장기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라오스 전력청이 입찰을 유찰시키려 하자, 대우인터내셔널 컨소시엄이 효성을 탈락시키고 사업을 수주하게 된다. 최종 계약만 남겨둔 상태다.
해당 사업을 추진한 대우인터내셔널 팀장은 이사로 승진했고, 아프리카지역 지사장으로 발령난 상태다. 현대엔지니어링 부장 역시 상무로 승진해 필리핀으로 발령 났다. 실무자들이 흩어지면서 이후 모임은 자연스럽게 깨졌다는 게 제보자 설명이다. 또 미얀마 송전 사업, 니카라과 송전 2차 사업, 파키스탄 사업 등이 EDCF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담합의 모양새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보자는 특히 “이러한 사전 담합의 결과로 입찰은 일부 대기업들만 독점하는 형태가 됐고, 중소기업들의 참여는 더욱 요원해진 상황”이라며 “수출입은행이 중소기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입찰 자격 등을 대기업들이 사전 작업으로 조정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담합 의심을 받는 건설사들은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다만 한 건설사 관계자는 "EDCF 사업 담당자들은 서로 잘 알고 자주 보는 사이라, 보는 시각에 따라 담합으로 비쳐질 수 있다"면서 "EDCF 사업으로 인한 수익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해당 사업부에 확인한 결과, 우리가 (담합을) 주도하지는 않았다"며 거듭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담합은)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번 의혹이 불거질 경우 발생할 국가 신인도 추락과 수원국의 구속성 원조 변경 요구 등을 걱정했다. 한 관계자는 "국내경기 침체에 따라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해당 기업이 입을 타격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국의 EDCF 사업은 구속성이 높은 데다, 특히 재벌 대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집중 수주를 하면서 경쟁이 저해된다면 원조의 수준이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의 대외 이미지와 국민 세금의 투명한 집행을 위해서라도 부당이득 의혹에 대해 당국이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