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타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70km 커브를 던진다. 빠른 공 구속도130km대에 머문다. 왼손투수 유희관(29·두산) 얘기다. 숫자가 지배하는 스포츠, 특히 야구에서 그의 구속은 매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느림보 투수' 유희관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수확했다. 국내 대들보 좌완투수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꿰찼다. 올 시즌 전반기에만 12승(2패 평균자책점 3.28)을 쓸어 담았다.
느림보 거북이가 토끼와 치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무기가 필요했다. 제구력과 꾸준함이다. 야구인들은 유희관의 제구력을 높이 평가했다. 좌우를 찌르는 제구력으로 '빠름'을 이겨냈다.
◇유희관. (사진=ⓒNews1)
"100개 이상을 던져도 몸이 아픈 경우가 없다. 오래 던지는 건 상관없다"고 유희관은 말했다. 거북이처럼 쉬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2013년 145.1이닝, 2014년 177.1이닝을 소화했다. 2014년 최다이닝 4위를 기록했고 국내선수 가운데 1위다.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졸업 예정인 투수에 대해 스카우트는 "145km 이상의 묵직한 직구가 장점"이라는 식의 말을 자주 쓴다. 투수에게 구속은 숙명과도 같다. 구속은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숫자로 나타나는 구속은 가장 쉽게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됐다.
그러나 '투구는 배트를 비켜가는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투수에게 필요한 자질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구속이 빠르다고 살아남는 건 아니다. 남과 달라야 생존할 수 있다.
유희관이 지닌 또 다른 재능도 있다. 올스타전 특별해설로 나서 만만치 않은 입담을 과시했다. 네티즌은 "은퇴 후 걱정 없겠다", "공은 느리지만 입은 빠르다" 등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빠른 공은 없지만 유희관은 성공할 수 있는 다른 야구를 하고 있다.
포털 검색창에 '느림의 미학'을 넣으면 유희관 관련 기사가 쏟아진다. 지난 3년에 걸쳐 유희관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바꿨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