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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논란에 문학계 자성..“침묵의 카르텔 거둬야”
입력 : 2015-06-23 오후 11:58:08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문단 관계자들이 "지난 20년 간 있었던 논란"이라며 "이제는 침묵의 카르텔을 거둬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태는 작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업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출판사, 문학계 전체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23일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는 서울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제목의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이명원 문학평론가, 오창은 문학평론가가 발제자로, 심보선 시인, 정원옥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정은경 문학평론가, 조영선 변호사가 지정토론자로 참여했다.
 
먼저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의혹을 둘러싸고'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이번 논란이 "15년 전 매듭을 짓고 생산적으로 논의했어야 하는데 지연된 데서 나타난, 억압된 것의 회귀가 아닌가 한다"면서 "그동안 문학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평론가는 문학계의 상업화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씨는 "현재의 문학제도는 비평적 담론과는 완전히 무관한 산업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반체제 지식인은 존재 불가능한 공간"이라며 "오늘의 한국 문학 출판시장 쇠퇴 원인은 무엇보다도 생산과 매개, 수용의 고리 안에서 수용, 즉 독자의 신뢰가 붕괴되는 측면에 대해 우리가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진=김나볏기자)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사건 자체 외에 한국 문학의 변화 모색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했다. 오 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국면에서 문학권력의 문제'라는 발제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살펴야 한다"면서 "한국 문학이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씨는 "2000년대 초에 박철화, 정문순, 김명인, 이명원의 동일한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묻힐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며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세계의문학 등이 문학상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문학적 권위의 상징을 독점했으며 문학상을 수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발간하고, 또는 자기 매체 출신의 작가의 문학단행본을 간행함으로써 문단 질서가 고착화됐다"고 지적했다. '진입은 굉장히 가혹하고 진입한 이후에는 굉장히 느슨한 이 질서가 온당한지' 문제제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어 이번 신경숙 표절 논란에 창비가 대응했던 방식을 "그 폐쇄성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또 이번 논란의 이면에 비평의 무기력 문제, 표절과 같은 문학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한 사건에 대한 징계 시스템의 부재 등이 있다고 말했다.
 
발제 후 지정토론에서도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심보선 시인의 경우 문학 출판사들의 조직문화를 지적했다. 심 작가는 "주요 문학잡지들은 평론가들을 편집위원으로 두고 있다. 평론가들은 자신이 속한 문학잡지의 운영주체인 출판사를 통해 문학의 상업성을 문학성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이 번역에 큰 자부심을 가지며 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고 믿고 있다"면서 "이론 지상주의, 한국문학 지상주의가 아주 기이하고 모순적으로 결탁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업성과 문학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가에 대한 무한애정이 하나의 조직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원옥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신경숙 작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제3자가 보기에는 표절인데 작가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이며 이는 표절 의혹을 받는 작가 대부분이 안타깝게도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는 태도"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문학작가에게 내면화된 권력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정 위원은 "작가의 윤리적 태도나 도덕 문제가 아니라 문단 내 약자에게 가하는 범죄라고 말할 수 있다"며 제재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의 뜻을 밝혔다.
 
정은경 문학평론가는 신경숙 문학의 표절 문제와 별개로 신경숙의 신화화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70~80년대에 민주화 투쟁을 했던 출판사 창비는 문학인들의 자존심이었는데 창비가 그 가치 지향성을 폐기하면서 신경숙을 밀어주기 시작했다는 의견이다. 정 평론가는 "창비 만의 문제인가, 신경숙의 대중성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며 "신경숙 표절 사건의 문제는 가치지향성을 전부 폐기해버린 우리 사회 전체의 징후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만 정 평론가의 경우 징계 시스템 도입에 대해서는 "현택수의 검찰 고발과 유사하다"며 "마녀사냥처럼 번져가는 집단 광기의 횡포에서 벗어나 재판 대신 같은 동료로서 고민하고 자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의 의견도 나왔다. 조영선 변호사는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와 관련, "교수 논문 심사의 경우 보다 엄밀하지만 시나 문학은 창작의 자유, 모방의 자유를 인정하며 더 넓게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번 사건의 경우 몇 문단을 보면 유사성이 발견되지만 표절인가 아닌가는 법 쪽이 아닌 문학 쪽에서 판단할 내용"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는 기준이 더욱 엄격하다고 전했다. 조 변호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침해 요소를 바라보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에 있어서는 고개를 흔들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또 "저작권 침해의 경우 친고죄에 해당한다"면서 "돌아가신 그 분(미시마 유키오)이나 번역하는 분의 고소 없이는 저작권법 위반인지 아닌지 검증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의 판단을 받기보다는 문학계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조 변호사의 의견이다.
 
신경숙 작가에 대한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의 고발과 관련해서는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인데 출판사를 기망해서 이익을 얻었다는 인과관계가 필요하다"면서 "표현과 이익 간에 과연 인과관계가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업무방해죄의 경우 "이번 경우는 책이 더 잘 팔리지 않았나"라면서 "방해라는 요건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 원장의 고발하는 충정과 별개로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 변호사는 대안으로 표절에 대한 가이드라인, 윤리규정을 내부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택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 논란은 지난 16일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이 허핑턴포스트에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한 부분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공론화됐다. 표절 혐의를 부인하던 신 작가는 입장을 바꿔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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