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은 천연덕스럽게 잘생겼다. 그 산하의 생김과 고을의 앉음에 꽃풀 같은 인심이 살아있다. 순창 땅의 사람은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투박한 몸짓을 지녔다. 무어든 때깔 나게 따로 만드는 재주가 없어서 무엇이든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다. 순창이란 이름자를 널리 알린 것중 하나가 순창고추장인데, 이 역시 별난 수를 쓴 것이 아니고 붉은 태양의 양명한 기운에 어머니의 정성을 담아낸 것이 감칠맛으로 입소문을 탔다. 주변머리 별로 없는 순박한 순창 사람들이 잘생겼다며 호감을 얻는 방식이다. 맨 얼굴로 천연스레 마음을 드러내고 웃는 얼굴이 순창 사람들의 변치 않는 인상이다. 자연스러움에 부끄럼을 보탠 염치 있는 낯빛, 순창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잘생긴 고장이다.
이미 봄꽃잔치는 파장이다. 꽃동산 하나쯤 있는 동리라면 너나없이 꽃잔치를 벌이던 상춘의 봄이 지났다. 그 꽃이 진 자리에 초록의 풀들이 삐쭉삐쭉 머리를 내민다. 땡볕이 바짓가랑이를 잡는 여름으로 넘어간다. 성급한 도시 아이들이 첨벙 물에 뛰어들고 당산나무 정자 아래 늙은 할아비 목침 베고 누워지는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아카시아 향기가 퍼질라 치면, ‘야랄라라 야랄라라~ 눈누눈누 눈누눈누~’ 콧노래를 불러도 좋을 만한 시절이다.
◇순창 섬진강 갓꽃길(사진=이강)
흙길을 맨발로 걷는 강천산
붉고 노란 꽃때깔이 시들해지니 이제 호시절은 다 지났다. 길 곁에는 꽃 이름도 알지 못하는 무릇 꽃들이 무성해지고, 논두렁 다락밭마다 잡풀들이 자라나는 시기다. 산하와 들판, 골목 구석구석까지 번져있던 꽃들이 떠나니 그 여백을 청록의 수목들이 채운다. 여름의 초록빛은 이런 범꽃 무리들이 그려내는 세상이다. 봄이 언 땅에서 생명을 틔운 기쁨으로 천지사방 꽃잔치를 벌이는 때라면, 여름은 흥을 돋워 함께 땀을 흘려야만 신명이 나고 생장하는 계절이다. 봄바람과 노닐던 연한 잎새들이 여름땡볕에 적당히 그을리며 줄기의 근력을 키우는 때도, 성급한 농사꾼이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노동의 들판으로 내달리는 때도 바로 지금이다.
순창의 자연과 인심을 살펴볼 요량으로 먼저 둘러볼 곳이 바로 강천산(剛泉山)이다. 해발 584m의 강천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의 산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품이 고요한 덕산(德山)이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은 그 생긴 모양이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용천산이라도 불렸다. 1982년 전국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천혜의 비경을 보전하고 있다.
◇강천산 병풍폭포(사진=이강)
매표소를 출발해 금강교에 다다르니 병풍바위가 눈앞에 위용을 펼친다. 두 줄기의 물줄기가 마치 너른 폭을 펼친 듯 큰 물줄기를 쏟아내는데, 바로 병풍폭포이다. 늘 수량이 풍부해 답답한 가슴을 씻겨내기에 충분하다. 폭포를 기점으로 맨발로 걷는 숲길이 시작된다. 힐링의 숲길로 잘 알려진 이 구간부터 산행객들은 한결같이 신발을 벗고 흙길을 걸어 오른다. 맨발로 걸으니 흙냄새가 풀풀 나는데, 숨숨 차오르는 흙의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진다. 자연과의 일체감으로 걸으면 걸을수록 호흡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 흙길은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더욱 운치가 깊다. 산행객들의 뒤를 따라 비릿한 젓냄새만 같은 나무의 향내와 흙의 호흡을 즐기며 길놀이를 하듯 행렬을 따른다. 이 흙길 역시 여느 마을처럼 일부러 길을 낸 것이 아니고 포장을 한 일이 없는 옛날 그대로의 흙길이다.
숲길을 계속 오르면, 흙길 양 옆에 줄지어 선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숲이 푸르고 높이 솟아있다. 강천사 일주문을 지나 단풍과 은행나무가 만든 숲터널을 지나면 신라 887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강천사가 고즈넉한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10여분 남짓을 오르니 현수교와 전망대다. 강천산의 주봉인 왕자봉을 가려면 이 현수교를 지나야 한다. 50m 높이의 구름다리를 건너면 발 아래로 강천산의 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에서 내려와 장군목으로 향한다.
섬진강변 장군목에 갓꽃 흐드러지네
순창의 천연덕스러움을 보여주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장군목이다. 커다란 바위들이 분간 없이 누운 섬진강 상류, 장군목에 들어서면 입이 떡 벌어진다. 잘생긴 듯 못생긴 듯한 바위들이 방향도 없이 강자락에 자유로이 흩어져 장관의 풍경을 보여준다. 곡성, 하동 등 아랫녘 섬진강이 여성적이며 곱다면, 순창의 섬진강은 높은 산세의 물갈음과 바위의 위용으로 힘센 남정네처럼 역동적이고 자유롭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들이 강변과 강심에 흩어져 제각각 위용을 뽐낸다. 때문에 내룡에서부터 풍산면 대가리 향기마을까지 24.2㎞에 걸쳐 흐르는 이 강을 지역사람들은 적성강(赤城江)이라 한다.
갓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2㎞ 남짓의 강가를 따라 걸으니 순창 제일의 명당이라 불리는 어치리 내룡마을의 장군목이 나온다. 이 구간은 500리 섬진강 물줄기에서 가장 웅장하고 원시적인 구간인데, 4월말부터 5월 중순까지 야생갓꽃이 피어나 더욱 아름답다. 장군목이라는 이름은 서북쪽 용골산과 남쪽 무량산의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형상이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라 부른 데에서 연유한다. 마을사람들은 장구의 목 같다고 하여 장구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장군목의 포트홀과 요강바위(사진=이강)
장군목에 이르면 약 3㎞에 걸쳐 강바닥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수만년 동안 거센 물살이 다듬어놓은 기묘한 바위들을 ‘포트홀(Pot Hole)’이라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돌개구멍이라 한다.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라는 뜻이다. 장군목에는 연꽃바위, 자라바위 등 기기묘묘하게 움푹 파인 돌개구멍 바위가 늘어서 있다. 그중 타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돌개구멍은 바로 요강바위다. 이 바위는 둘레 1.6m, 깊이 2m, 무게 15t으로 요강처럼 생겼다. 한국전쟁 때에는 마을주민이 바위 속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 아이를 못 낳는 여인네가 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순창은 조선의 지식인 서거정이 호남의 명승지라 일컬으며, 논밭이 풍요롭고 어장이 넉넉해 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강천산과 장군목 등 아름다운 산하와 순창고추과 블루베리 등의 특산물로 풍요로운 순창의 땅. 섬진강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와 자전거길이 정비되면서 장군목에는 오토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섬진강 마실펜션도 갖추었다. 섬진강 맑은 물가에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과 갓꽃길을 걷고 아빠의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낸다. 참 아름답고 순박한 순창은 잘생겼다.
이강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