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1번지'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소극장 이름인 동시에 극단 이름이기도 한데요.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름 한 번쯤 들어본 분들은 많으실 겁니다.
혜화동1번지는 상업적 연극에서 벗어나 개성 강한 실험극을 올리겠다는 취지로 1993년 태동한, 젊은 연출가 중심의 동인제 집단입니다. 정식 명칭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인데요. 22년째 기수를 이어가면서 동명의 극장에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국서, 김아라, 이윤택, 김광보, 박근형, 이성열, 박장렬, 양정웅, 김재엽, 윤한솔, 이양구 연출가 등 현재 연극계를 활보하는 유명 연출가들 중 여럿이 바로 이 혜화동1번지 동인 출신입니다.
올해는 6기 동인이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지난 3월19일부터 '혜화동1번지 6기동인 봄 페스티벌'을 열고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중인데요. 이번 축제의 주제는 '총체적 난극(亂劇)'입니다.
이들 젊은 연출가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라 규정하고, '총체적 난극'을 통해 동시대에 대한 고민을 풀어보겠다고 나섰는데요.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현 국가의 속성을 국가 속 국민들도 닮아가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입니다. 현재까지 '앤드씨어터' 전윤환 연출가의 <마라 사드>, '극단 작은방' 신재훈 연출가의 <시간의 난극>, '낭만유랑단' 송경화 연출가의 <백한덕브이>, '여기는 당연히, 극장' 구자혜 연출가의 <곡비>가 차례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중 지난 주말로 막을 내린 연극 <곡비>를 잠깐 들여다볼까요. <곡비>는 오늘날 대학로 젊은 예술가들의 욕망과 고민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구자혜 연출가는 이 작품을 통해 '칭찬을 받고 싶어 안달 난 개'가 된 젊은 예술인들에 대해 비판의 각을 세웁니다.
(사진=김도웅)
극중 인물은 타인을 위해 울어주는 게 직업인 '곡비(전박찬 분)'와 타인을 위해 웃어주는 일을 하는 '소비(김정훈 분)', 그리고 성공한 곡비인 '위대한 곡비(권정훈 분)'입니다. 무대에는 오르막길 혹은 내리막길처럼 기울어진 나무 다리가 무대 중앙에 길게 놓여 있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 명의 배우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인생을 상징하는 듯한 단촐한 무대를 꽉꽉 채워나갑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관객이 처음에 입장할 때 배우들이 대기 중인 분장실을 지나치도록 설정한 것입니다. 이 간단한 인트로 하나로 관객은 '곡비'와 '소비'라는 직군이 배우 혹은 예술가에 대한 상징이란 점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곡비'와 '소비'라는 낯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사실 이 연극은 관객에게나 배우에게나 그리 친절한 극은 아닌데요. 무대 위의 발화마저 주로 대화체가 아닌 서술형의 문장으로 구성됩니다. 또 배우들은 남을 위해 울어주거나 웃어주는 일을 '꺽' 하는 소리, '광대'라는 말의 발화 혹은 휘파람 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해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극적 실험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역할에 곧장 몰입합니다.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배우가 몰입한 덕분에 관객 또한 끝까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됩니다.
'위대한 곡비'가 되는 것은 비단 예술가만의 꿈은 아닐 겁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다들 한 번쯤은 품어봤을테니까요. '위대한 곡비'를 쫓아다니며 사랑도 버리고 오직 성공과 명예를 꿈꾸다 마침내 떠오르는 신예의 반열에 선 '곡비'의 울부짖음이 극장을 나오면서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오늘 내 울음 어땠어? 제발 말을 해줘.' 칭찬과 인정에 갈급해하는 모습이 처참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처음에 왜 곡비가 되려고 했는지 가물가물하고, '우리 같은 사람이 왜 존재하는지'라는 질문을 여러차례 던지지만 대답은 결국 아무데서도 들리지 않습니다. 텅빈 무대가 마치 존재의 이유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대신 답하는 듯합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성공의 기준은 뒤로 한 채 말이지요. 남은 '혜화동1번지 6기동인 봄 페스티벌' 기간 중 이어지는 작품에서도 젊은 예술가들의 생생한 고민과 화두를 엿볼 수 있을까요. '극단 창세'의 <제국의 일상(5월14~24일)>, '극단 신세계'의 <그러므로 포르노(5월28일~6월7일)>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연명 : '혜화동1번지 6기동인 봄 페스티벌'
-시간·장소 : 6월7일까지 혜화동1번지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