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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미완성일 수 밖에 없는 '체제 전복' 메시지
2014광주비엔날레
입력 : 2014-09-12 오전 9:08:27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시작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햇수로 스무돌, 회차로는 10회를 맞은 현대미술전시회 '2014광주비엔날레' 얘기다.
 
파행은 홍성담 화백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전시 유보 결정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 논란으로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열띤 논의가 펼쳐졌고, 급기야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가 자진 사임하기도 했다.
 
지자체가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면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미술계와 미술 애호가들에게 큰 아쉬움을 자아냈다. 무엇보다도 광주비엔날레가 민주와 인권, 평화로 대변되는 이른바 '광주정신'에서 출발한 축제인 까닭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비엔날레의 축제성 또한 한풀 꺾인 게 사실이다. 특히 비엔날레의 정신이 타격을 입었다.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는 이번 전시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제도권에 대한 저항과 도전, 창조적 파괴와 새로운 출발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이번 전시에서 '터전을 태울 뜨거운 불'은 외국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더욱 도드라져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이번 전시회의 예술총감독을 맡은 제시카 모건은 제레미 델러, 로만 온닥, 우르스 피셔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통해 부조리, 개발 위주 현대사회, 인간성 말살 등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전경(사진제공=광주비엔날레 재단)
 
◇터전을 불태우는 불
 
전시는 비엔날레 광장에서부터 시작된다. 2013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작가였던 제레미 델러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관 전면 외벽을 채우는 거대한 고화질 배너를 설치했다. 이 배너에는 전시관 안에서 화재가 나 벽을 뚫고 나오는 문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거대한 문어가 뜨거운 불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보는 이에게 모종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 광장과 전시관, 출구 등에는 독일 작가 스털링 루비가 특수 제작한 거대한 난로가 배치되어 있다. 서양의 가정에서 익숙한 물건인 난로가 잔뜩 녹이 슨 채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습은 전시 전체의 연계성을 높인다. 야외에 설치된 난로에서는 진짜 연기가 피어오르며 생생함을 더하기도 한다.
 
현대미술계의 센세이션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스위스의 우르스 피셔는 대형설치물을 통해 가상의 집을 선보였다. 자신이 전에 살던 뉴욕의 아파트를 극사실적으로 벽지에 복제했는데 이 집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2D를 표방한 이 실내 공간은 익숙함과 낯섦의 감정을 동시에 자아낸다.
 
에드워드 킨홀즈와 낸시 레딘 킨홀즈가 만든 해적선을 연상시키는 설치물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도 인상적이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군대와 국가적 권위 형태에 대해 비판적 질문을 제법 세게 던진다.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The Ozymandias)>, 에드워드 키엔홀츠 & 낸시 레딘, 혼합매체(사진제공=광주비엔날레 재단)
 
◇아시아권 작가 약진 두드러져
 
아시아권 유명 작가들의 참여도 두드러진다. 아시아 작가들은 올해 전체 전시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특히 중국 작가 류 사우동, 일본 미술계의 스타 테츠야 이시다 등은 아시아의 역사와 변화 발전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이목을 끌었다.
 
중국 작가 류 샤우동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광주에서 한 달 간 레지던시를 진행했다. 5·18이 발생했던 옛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와 현재 사이의 묘한 이질감을 선사한다.
 
◇<시간(Time)>, 류 샤오동, 캔버스에 유화(사진제공=광주비엔날레 재단)
 
일본사회에 팽배해 있는 극단적 내성주의를 반영한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테츠야 이시다의 작품도 소개됐다. <리콜>이라는 페인팅 작품이 전시됐는데 이 작품에는 1990년대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 허무주의,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경쟁 체제, 소비사회와 인간성 상실 등 다양한 일본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그림의 고독한 시선은 1973년 출생해 32세에 요절한 이 작가의 젊은 이미지와 한데 엉켜 차가운 슬픔을 자아낸다.
 
한국의 여성작가 이불은 1989년 일본의 거리에서 괴물 형상 솜옷을 입고 행했던 퍼포먼스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다큐멘터리와 작품들을 통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 상품화, 군대 문화 등에 대한 이불 작가 특유의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뜨거운 예술작품들 보니 아쉬움 더 커
 
이번 전시에는 대륙별로 한국 22작가를 비롯해 아시아 51작가, 유럽 34작가, 북·남미 25작가, 아프리카 4작가, 오세아니아 1작가 등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통적 형태의 예술, 설치, 퍼포먼스, 뉴미디어, 영화, 연극, 음악, 건축 등으로 펼쳐낸다.
 
축제에 앞서 제시카 모건 총감독은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사운드나 움직임의 실천적 역동성을 추구하면서 현 상태를 불태우는 급진적인 정신을 아우른다"며 "연극적인 요소,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의 전시 개입과 자유롭고 열린 접근 방식을 끌어들이면서 주제가 담고 있는 예술적인 혁신, 호소력, 저항의 힘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의 말대로 작품은 때로 뜨겁기도 하고 풍성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는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기존 질서 체계를 뒤집고 억압에 저항하라는 축제의 핵심 메시지가 치명타를 입은 까닭이다.
 
이번 전시 주제로 차용한 토킹 헤즈의 노래 '버닝 다운 더 하우스'에는 'Burning down the house, fighting fire with fire'라는 가사가 나온다. 아쉽게도 '터전을 불태우라'는 메시지는 결국 광주비엔날레의 미해결과제로 남았다. 광주 비엔날레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축제라는 오명을 씻고 다시금 베니스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휘트니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5대 비엔날레로 거론되는 국제적 축제에 걸맞는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볼 일이다.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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