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여전히 바닥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사상 최대인 340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투자심리는 얼어붙는 비대칭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6일 발표한 ‘2012년 기업 투자심리지수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업 투자심리는 100점 만점에 35.8점에 불과했다.
지수는 기업들의 전반적인 투자 의향을 비롯해 자금 조달, 국내외 수요, 신규 투자처, 대내외 불확실성 여건 등 5대 투자환경 요소별 점수를 합산하여 집계된다. 50점을 기준으로 수치가 기준 이상이면 투자심리가 긍정적, 이하이면 부정적이다.
이번 조사는 국내 기업 1026개사(제조업 711개, 비제조 301개)를 대상으로 지난달 2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됐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데는 국내 신규 투자처(25.6점)의 부재가 꼽혔다. 다음으로 행정규제, 조세정책 등 법·제도 여건(28.0점), 세계 경기와 정책 변화 등 불확실성 증대(28.1점), 국내외 시장 여건(32.0점), 자금 조달 상황(36.5점) 순으로 나타났다.
규모별로는 중소기업이 32.2를 기록, 44.6을 나타낸 대기업보다 투자심리가 더 위축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내수기업(35.1점)이 수출기업(38.9점)보다 투자심리가 좋지 않았다.
업종별로는 조선(12.1점)의 투자심리가 제일 낮았다. 건설과 철강·금속도 각각 28.6으로 산업 전반 평균을 크게 하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석유화학(31.2점)과 섬유·의복·신발(34.5점), 음식료(35.2점)도 평균치 이하였다.
반면 기계는 50.9점으로 가장 높게 집계됐다. 노후설비 교체수요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가스(50.3점)는 기준치 50을 간신히 넘겼고, 통신·방송(47.7점), IT·전기전자(39.5점), 자동차·운송장비(38.2점), 운수·유통(37.3점) 순으로 나타났다.
하반기에는 투자심리가 다소 개선될 전망이다. 그러나 지수가 여전히 기준인 50에 못 미치는 49.2로 조사돼 투자 활성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환율·원자재가 안정(29.1%)이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꼽혔다. 이어 저리자금조달 확대(26.0%), 입지·환경 등 규제 완화(18.2%), 법인세·상속세 등 세제 개선(15.9%), 연구개발 및 신성장산업 발굴 지원(7.2%) 순으로 뒤를 이었다.
대한상의는 “신흥국 경기 위축과 선거에 따른 급격한 정책 변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심리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의 낮은 투자심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기업들이 대내외적 환경을 이유로 투자를 꺼리면서 분야별 양극화가 부쩍 심화됐다는 얘기다. 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우리 경제의 근본 문제라는 지적도 잇달았다.
국회 지식경제위 민주당 간사인 조경태 의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내 유보금은 쌓여 가는데 투자심리는 얼어붙었다”며 “대내외 불확실성 등의 이유는 핑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수시장, 특히 지방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요구된다”면서 “그래야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여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72개사가 기록한 사상 최고치 유보율 1219.45%를 근거로 “대기업이 사내 유보금은 늘리면서 투자는 전혀 안 하고 있다”고 질타한 바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는 기자에게 “이번 조사는 우리 경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그대로 보였다”면서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중심으로 유보금은 크게 증가했지만 노동 분배율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수 지향적이고 안정적 성장을 위해선 분배 문제와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해법으로 “비정규직 문제, 대·중소기업 간 불균형 등 경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기업 역시 투자를 활성화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적 토대 없는 성장은 일시적 착시현상일 뿐 지속되지 못한다는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