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문형배 헌법재판관(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좌표찍기'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문 재판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져 성향과 이력을 문제 삼더니 이제는 음란 게시물 의혹까지 제기합니다. 좌표찍기는 극우 언론과 극우 유튜브 타고 국민의힘에서도 자행됩니다. 일부 문제는 문 재판관과 직접적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이들은 계속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문 재판관을 흠집 내고 윤석열씨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입니다. 사실상 헌재 불복을 위한 수순이라는 지적입니다.
문형배 재판관(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씨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헌재는 경찰에 문 재판관이 가입되어 있는 고등학교 온라인 동창카페 사건을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전날인 12일 <뉴데일리>는 문 재판관이 졸업한 경남의 모 고등학교 동창모임 카페에 음란한 게시물이 다수 게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보도는 윤씨 지지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극우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확산됐습니다.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문 재판관을 '문행배'라고 부르는 것과 온라인에서 성착취물 제작·유포한 'n번방'의 이름을 따 고교 동창카페를 '행번방'이라고까지 칭할 정도입니다.
이에 문 재판관도 언론 공지를 통해 "해당 카페는 동창카페로서 경찰은 적극적으로 수사해 주기를 바란다"며 "카페 해킹에 대한 철저한 수사도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뉴데일리는 이후로도 <[단독] 문형배, '행번방' 활발 활동…본보 보도 후 文 가입 카페 청소년 유해 음란물 등 2000여 건 삭제>, <"안 봤다"곤 안 하는 문형배, '행번방' 해명에 의혹 눈덩이…진실은 무엇인가> 등의 기사를 보도해 논란을 키우는 중입니다.
극우 유튜브도 가세했습니다. 이들은 문 재판관에 관해 더 자극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고성국TV에선 <행번방 사건으로 문형배 제정신 아니다>를, 가로세로연구소에선 <충격단독 여고생 팬티사진(미성년자 성착취물)>을 방송했습니다. 자칫 문 재판관이 음란 게시물에 작성에 적극 관여됐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 재판관이 가입된 동문카페에 음란 게시물이 올라온 건 맞지만, 그가 이런 게시물을 공유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 문 재판관이 동창카페에 글을 쓴 건 2012년이 마지막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3년 전입니다. 문 재판관이 동창카페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주장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까지도 문 재판관에 관해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키우는 데 가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현진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사실상의 최종심급 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이 무려 2천여 건의 불법 음란물을 게시 및 유통되는 현장을 방관했다는 이른바 '행번방' 논란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상휘 의원도 13일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헌법재판관"이라며 "아동 성음란물을 관람하고 거기에 댓글을 달고 주식투자로 수십억원을 손쉽게 벌어들인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국민의힘은 공식 페이스북에 문 재판관을 '음란수괴'라고 표현한 게시물을 올린 바 있습니다. 해당 게시물엔 문 재판관이 자리에 없는 헌재 사진을 일부러 골라서 '동창카페에 올라온 게시물을 지우러 간 것 아니냐'는 조롱의 문구를 넣었고, '아님 말고'라는 문구도 기재했습니다. 현재 이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입니다.
국민의힘이나 극우 언론, 극우 유튜브 등의 좌표찍기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이들은 윤석열씨가 내란수괴 혐의로 수사받는 동안엔 고위공직자범죄수처, 경찰 등을 흠집 내려고 했습니다. 극우 언론 → 유튜브 → 국민의힘 순서로 이어진 좌표찍기는 아스팔트 보수를 선동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달 19일 서울서부지법이 아스팔트 보수의 습격으로 건물이 훼손되고 기물이 파괴된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이런 탓에 헌재가 윤씨가 파면할 경우에 대해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윤씨 측은 8차례 진행된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재의 심판절차가 위법하다고 계속 주장했습다. 윤씨는 최종적으로 파면되더라도 이에 불복할 가능성이 높은 겁니다. 수사기관을 흠집 내고, 헌재가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문 재판관까지 좌표를 찍는 건 결국 헌재의 심판에 불복하는 수순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헌재는 답을 내려놓고 달려가는 모양새인데, 오히려 그럴수록 윤씨가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면서 "윤씨 측은 어차피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극심한 진영 간 갈등·대립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너무 우려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