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자,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메탈리카를 보게 될 겁니다. 음악에 몸을 맡기며 머리를 흔들어요. 이렇게 팝콘도 먹고요."
카우치 소파에 앉아 센 농담을 거네는 건장한 네 남성과 관객들 앞으로 쏟아질듯 튀어대는 팝콘들. 흑백 처리됐던 커다란 스크린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버들나무와 숲의 녹색으로 서서히 채워지고 노란 밴드 로고가 나오자, 터져나오는 객석의 함성과 박수. "좋다! 가자!"
세계적인 록 밴드 메탈리카[제임스 헷필드(보컬) 라스 울리히(드럼) 커크 해밋(기타) 로버트 트루히요(베이스)]가 돌아왔습니다. 8년 만의 정규 음반, 11집 '72 시즌스(72 Seasons)'를 전 세계 동시 발매한 날, 지난 14일 이들이 딱 하루 전 세계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음반에 얽힌 비하인드를 소개하는 인터뷰 자리이자, 샛노란 빛 번짐 같은 새 음악들을 보고 듣는 청각적 미술관이었던 셈.
대곡 지향의 앨범 타이틀곡 '72 Seasons'가 입체 음향으로 터져나올 때부터 이미 그곳은 영화관이 아니었습니다. 커크의 말대로 "마치 우주를 떠다니는 레스폴 주니어의 기타 리프가 해안 지역 풍경"을 눈 앞에 가져다 놓은 것.
정규 11집 '72 시즌스'를 전 세계 동시 발표하고 영화관 상영회까지 진행한 메탈리카.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블랙사바스 올드록 풍과 라몬즈류 펑크록 풍 기타가 동시에 느껴지는 곡 'Shadows Follow'과 수지앤더밴시스 풍의 선율이 주가되는 'Screaming Suicide'를 지나며, 7~80년대를 관통하던 원초적 진한 메탈 사운드로 돌아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1981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메탈리카는 세계적인 메탈 밴드입니다. 1986년 3집 Master of Puppets의 수록곡 <Master of Puppets>를 히트시키며 미국 메탈 씬의 주류로 올라섰다. 'Master of Puppets'(1986)과 'Enter Sandman'(1991) 등 기념비적인 곡들로 메탈의 대중화, 상업화 성공을 이룬 밴드로 평가됩니다. 현재까지 정규 앨범 11장을 발매했고, 그래미 어워드를 8번 수상했습니다. 200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됐으며, 커리어 통산 1억 26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 음반을 찍을 공장('퍼니스 레코드 프레싱' 인수)을 직접 사들여 세계에 유례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는 '메탈신 리치 밴드'로도 통합니다.
정규 11집 '72 시즌스'를 전 세계 동시 발표하고 영화관 상영회까지 진행한 메탈리카.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들이 주축으로 삼는 스래시 메탈은 기존 메탈보다 빠르고 강력한 직선의 사운드를 표방하는 장르입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스래시 메탈의 전형적인 과거 문법에 충실하되, 이를 드라마틱한 영상미와 길게 내빼는 대곡 형식의 악곡으로 실험성 또한 곁들였습니다. 정규 9집 '데스 마그네틱(Death Magnetic·2008)'부터 인연을 맺어온 엔지니어 그렉 피델만(블랙 사바스와 레드핫칠리페퍼스, 마릴린 맨슨, 슬립낫, 시스템 오브 어 다운 같은 록 명반들의 사운드를 디자인해 온 인물)이 붙어 소리를 매만졌습니다. 앨범명 '72 Seasons'는 태어나고 72번의 계절, 즉 0세부터 18세까지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이 순회라는 개념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사운드의 의미와 연결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헷필드는 "우리의 자아를 결정짓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인이 돼 겪는 일들은 대다수가 어린시절의 재현이거나 반응이고, 우린 그 시절에 속박되거나, 탈출하여 자유가 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겁니다. 앨범 가사에 자아성찰적인 면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라스 울리히는 "모두가 자신만의 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들어달라고 당부합니다.
맹렬하게, 천둥처럼 몰아치는 사운드의 광풍은 분명 메탈리카입니다. 그렇지만 하와이의 높은 파도를 연상케 하다가도(실제 커크가 '메탈 버전의 서핑 곡'이라 칭한 'Sleepwalk My Life Away'), 가족과 동물, 자연 경관이 뜨개질처럼 연이어지는 영상미에선 아일랜드 초원('Too Far Gone?') 같은 친환경과 인류애적인 부분들도 놓치지 않습니다.
"투어를 마치고 가족 곁으로 돌아갈 때, 여운이 가시기 전에 곡을 씁니다. 진짜 자신을 보여준다는 그 두려움은 세상에 드러낼 수록 편해지는 법이죠."(제임스 헷필드)
정규 11집 '72 시즌스'를 전 세계 동시 발표하고 영화관 상영회까지 진행한 메탈리카.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앨범과 다큐 전체에 왜 노란색을 발라놨을까. 필경 이것은 아련한 삶의 노스텔지아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닐까.
"여러분은 이제 10분이 넘는 첫 메탈리카 음악을 듣게 될 겁니다. 인생에서 가장 짧은 11분 되길 바란다"는 헷필드의 말과 함께 길게 늘어지는 마지막 대곡 'Inamorata'의 순서.
스크린 속 몽환적인 회색 바탕, 흰 눈송이들이 음표들처럼 부유하다가 떨어지고 쌓이더니 녹습니다. 43년 한 길을 내달린 메탈리카가 긴 연주로 답합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는지.'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