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이상수의 한국철학사 8화)경주 흥륜사 대웅전과 성불할 결심
입력 : 2023-04-24 오전 6:00:00
지난 회 글에서 해동의 공동체들이, 토착문화와 외래문화의 융합을 시도했고 그 융합의 징표가 바로 한국의 가람(절)마다 남아있는 산신령님을 모신 공간인 산령각(山靈閣), 삼성각(三聖閣)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공간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와 더불어서 두 번째 해동의 공동체가 외래선진문화를 받아들일 때의 특징을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두번째 특징은, 어떤 논리를 받아들이든지, 그 논리를 충실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강렬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한 예를 보여주는 설화가 일연 스님이 쓰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남백월의 두 성인(聖人)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설화에 남아 있습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토착어인데요, 이것을 발음 나는 대로 한자로 음사한 것이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고 일연 스님이 주석에서 밝혀놓고 있습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두 분은 출가해서 도를 닦았는데요. 두 분은 서로 이런 얘기를 나눕니다.
“학불당성불(學佛當成佛), 수진필득진(修眞必得眞)” “불학을 배우기로 했으면 마땅히 성불(成佛)해야 되고, 수진(修眞)하기로 했으면 반드시 득진(得眞)해야 된다.” 
 
‘수진(修眞)’이라는 말은 “참을 닦는다”는 뜻인데, 도가(道家)의 수련법을 닦는다는 것을 얘기합니다. ‘득진(得眞)’이라는 것은 신선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분이 나눈 말씀은, 불학(佛學)을 배웠으면 부처가 되어야 되고, 성불(成佛)해야 되고, 도를 닦았으면 신선이 되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삼국유사에 실린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설화를 그림책으로 꾸민 국내 출판물. 사진=필자 제공
 
해동의 공동체의 특징적 예를 보여주는 게,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또 남아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동경흥륜사금당십성(東京興輪寺金堂十聖)>이라는 짧은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이 기록은 굉장히 중요한 기록입니다. ‘동경(東京)’이라는 것은 경주를 얘기합니다. ‘서라벌’을 말하죠, ‘흥륜사(興輪寺)’는 동경(東京)에 있었던, 경주에 있었던, 절 이름입니다. '금당(金堂)' 이라는 것은, '금'은 가장 뛰어난 것을 금이라고 합니다. '금당(金堂)'은 '대웅전(大雄殿)'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사찰에 가보시면 볼 수 있는, 대웅전, 절의 중심 건물이자, 그 절이 모시고 있는, 부처님을 모시는 공간이 대웅전이죠. 이는 동경(東京)에 있는, 경주에 있는, 흥륜사(興輪寺)의 대웅전에 십성(十聖). 대웅전에 모시고 있는 열 명의 성인(聖人)이라는 기록입니다.
 
열 명의 성인이, 여기에는 일연 스님의 기록에 따르면, 다른 부처가 없이, 열 명의 성인(聖人)을 모시고 있었다. 그 열 명이 누구냐면은, “동쪽에는 아도(阿道), 염촉(厭?, 이차돈), 혜숙(惠宿), 안함(安含), 의상(義湘) 다섯 분이 있었고, 서쪽에는 표훈(表訓), 사파(蛇巴), 원효(元曉), 혜공(惠空), 자장(慈藏)이 있었다”라는 기록입니다. 이들 열 분은 모두 고구려와 신라의 화상(和尙, 스님)들입니다, 모두 고구려와 신라의 스님들이고, 해동의 스님들이죠. 해동에서 불교를 닦아서, 성불(成佛)했던 사람들이 열 명이다. 라는 기록인 거죠. 열 명이 성불(成佛)한 것으로 인정을 했기 때문에, 다른 부처를 모시지 않고, 대웅전에 이 분들만을 모셨다는 거죠.
 
이 분들 열 명을, 진흙으로 좌상(坐像)을 빚어서 모셨다, 라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남아 있습니다. 이 기록은 부처가 된다는 것이 천축국(天竺國)에서, 인도에서,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 때나 가능했던 일이 아니라, 불학(佛學)을 제대로 닦기만 한다면, 해동(海東)에서도, 신라에서도, 인도가 아닌, 세계 어떤 지역에서든지,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성불(成佛)하는 부처가 나온다, 라는 얘기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말해주는 공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경주 사정동 285-6번지에 있는 천경림(天鏡林)에 있는 복원된 흥륜사 대웅전. 사진=필자 제공
 
이 기록을 보고 나서 저는 깜짝 놀라서, 차를 몰고 경주로 달려갔습니다. 경주 사정동 285-6번지에 있는 천경림(天鏡林)에 있는 흥륜사로 달려갔습니다. 흥륜사가 화재를 만났었기 때문에 지금 복원이 되어 있는데요. 복원돼 있는 대웅전에 달려갔습니다. 거기에는 주물을 부어서 국화빵처럼 만든, 어느 절에 가도 볼 수 있는, 금부처 셋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망감에서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그 정도로 실망했는데요. 게다가 ‘금당(金堂)’ 이라는 현판은, 요사채로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통에 대한 능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것은, 굉장히 중요한 기록인데, 후손들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황폐화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에서라도, 흥륜사 대웅전에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열 명의 조선에서 성불(成佛)한 성인(聖人)들 아도(阿道), 염촉(厭?), 혜숙(惠宿), 안함(安含), 의상(義湘), 표훈(表訓), 사파(蛇巴), 원효(元曉), 혜공(惠空), 자장(慈藏) 이 분들의 좌상을 진흙으로 빚어서, 부처로 모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웅전 앞에 안내 표지판에다가, 이런 내용을, 왜 이렇게 복원했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해 둔다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따라서 이렇게 복원했다, 라는 기록을 해 둔다면, 이 공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적 공간으로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공간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성불(成佛)을 한다는 것이, 부처가 된다는 게, 인도에서만 천축(天竺)에서만 고타마 싯다르타 시대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해동에서도 신라에서도 시공을 뛰어 넘어서, 어디서든지, 불학(佛學)을 제대로 닦는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고 어떤 중생이든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말해주고, 웅변해주는 중대한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은혜로운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의상(義湘) 자장(慈藏) 표훈(表訓) 이 분들은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고승들입니다. 혜숙(惠宿) 사파(蛇巴) 원효(元曉) 혜공(惠空) 이 분들은 민중불교를 실천했던 분들입니다. 절간보다 민중 속에서 더 많은 생활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분들입니다. 
 
<이혜동진(二惠同塵)>이라는 기록은, 왜 이 분들을, 진흙으로 빚었는가에 대해서, 실마리를 주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는 주물을 부어서 만들죠. 주물을 부어서 찍어낸 다음에 거기에, 이제 금 매끼를 칠해서 부처를 만드는데 흥륜사의 부처님들은 쇠로 만든 부처님들이 아니라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들이죠.
 
귀족집에서, 고용살이하던 노파의 아들로 하층민 출신이던 혜공 스님. 사진=필자 제공
 
혜공(惠空) 스님은 원효 스님과도 관계가 깊은 스님입니다. 이 분은 미래를 예지하는 예지능력이 있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혜공은 천진공(天眞公)이라는 귀족네 집에서, 고용살이하던 노파의 아들입니다. 만년에는 오어사(吾魚寺)라는 곳에서 기거하면서 원효와 교류를 했고, 원효가 집필을 할 때, 문답을 했던 유일한 분이 혜공 스님입니다. 해공 스님의 가장 유명한 이적(異蹟)은 영묘사(靈廟寺)의 화재를 예견했던 일입니다. 영묘사라는 절은 신라 왕실이 건립한 사대(四大) 사찰 중에 하나인데요. 왕들이 불공을 드리는 사찰입니다. 혜공 스님이 어느 날 이 영묘사에 가더니, 금줄을 치는 거예요. 새끼줄로 이렇게 치고는 “이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가지 말아라”, 해서 영묘사에 불이 났을 때, 인명 피해가 하나도 없었다, 라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습니다. 영묘사에 불이 났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여러 차례 있는데, 언제 때의 화재인지,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혜공 스님이 이 화재를 예견하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금줄을 폴리스 라인(police line)처럼 친 거에요. 대웅전 등에는 들어가지 말아라 해서, 이 화재로 인명피해는 한 명도 없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처음에 말씀드린 “흥륜사금당십성(興輪寺金堂十聖)” 이라는 얘기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냐면은, 흥륜사에서 다른 부처를 모시지 않고, 여느 사찰들처럼, 천편일률적인 주물을 부어서 만든 국화빵 같은 부처를 모시지 않고, 해동에서 성불(成佛)한 사람 열 명을 모셨다는 얘기는, 매우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강력합니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인도에서만, 천축(天竺)에서만, 고타마 싯다르타 시대에만 성불(成佛)이 가능한 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 있는 곳, 신라든 해동(海東)이든, 어디든지 불학(佛學)을 제대로 닦으면 성불(成佛)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이보다 더 강하게 던져주는 공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흥륜사의 대웅전을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서 복원해야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일을 불자(佛者) 누구든지 시작하셔야 됩니다. 흥륜사의 대웅전의 금당십성(金堂十聖)을 오늘날 기술로써 복원하자. 열 분을 사료에 따라서 고증해서, 고졸(古拙)하게, 진흙으로 빚어서, 복원을 해야 되는 거죠.
 
이 분들을 왜 진흙으로 빚었느냐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이혜동진(二惠同塵)>’이라는 글 제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혜동진(二惠同塵)>에 나오는 ‘동진(同塵)’이라는, 두 글자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도덕경(道德經)》에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은 “빛을 무디게 하고, 티끌과 가까이 하라”는 얘기입니다. 빛을 무디게 한다는 얘기는, ‘빛’이라는 거는, 자신의 잘난 모습입니다, ‘화광(和光)’이라는 것은 부드럽게 한다는 얘기죠. 조명을 부드럽게, 불러(blur) 처리를 해서 부드럽게 하라! 그런 얘기이고, ‘동진(同塵)’이라는 얘기는 “티끌과 함께 하라”는 얘기입니다. 티끌은 불교에서 사바세계를 의미합니다. 부처의 세계가 아니라, 중생의 세계 일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죠. 부처를 티끌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가장 중요한 사상인 “범성불이(凡聖不異)”,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라는, 사상을 조각으로 구현한 것이, 동경흥륜사금당십성(東京興輪寺金堂十聖)이다 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동경흥륜사금당십성, 신라에서 성불(成佛)한 열 명의 성인(聖人)을 모신 공간입니다. 열 명의 성인을 모시는 계기가 된, 깨달음의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 원효 스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효 스님의 일대기와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저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저서인,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이어서 말씀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