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 허지은 기자] 싱가포르강 하구에는 이 나라를 상징하는 순백색의 머라이언상(Merlion statue)이 있습니다.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인 형태인데요. 이 사자상을 호위하듯 그 뒤를 초고층빌딩들이 빼곡히 에워싸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마천루가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사자상의 옆쪽으로는 마리나베이파이낸셜센터가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네 번째 국제금융센터(IFC)인 이곳은 50층 높이 건물 3개동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스탠다드차타드를 비롯해 △싱가포르개발은행(DBS) △바클레이스 △웰링턴자산운용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골드만삭스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사들과 다국적 기업 사무실이 들어차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국제금융센터지수에서 뉴욕과 런던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대표적인 아시아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마리나베이에 펼쳐진 초고층 빌딩에는 눈에 익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회사 이름이 걸려있습니다. (사진 - 뉴스토마토)
싱가포르 GFCI지수, 뉴욕·런던 이어 3위
싱가포르 국제금융센터는 올 3월 영국 글로벌 컨설팅그룹 지옌(Z/Yen)사가 전 세계 130개 도시를 대상으로 분석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33차 보고서'에서 뉴욕·런던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기존 중심업무지역(CBD)이 포화상태라는 판단 하에 비즈니스 구역을 마리나만 남단으로 넓혔습니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몰려있는 광역 마리나베이는 360만㎡규모입니다. 여의도 면적(290만㎡)의 약 1.2배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융중심지 여의도와 비교하면 물리적 크기는 비슷하지만 입점 기업이나 건물 규모를 따져보면 위상 차이가 큽니다.
여의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서울 국제금융센터(IFC)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금융센터로,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며 지난 2012년 준공한 곳입니다. 하지만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애초 취지와는 다르게 글로벌 금융사들이 거의 입점하지 않았는데요.
IFC 타워에 임차한 기업을 살펴보면 △AIG손해보험 △크레디리요네증권(CLSA) △뉴욕멜론은행(BNY Mellon) 정도만이 외국계 금융사입니다. 이외에도 OTIS·한국야스카와전기·한국P&G·IBM코리아·PB Korea 등의 외국계 기업들이 입주해 있지만 상당수가 비금융 기업입니다.
이런 탓에 여의도에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이름을 내걸기는 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리나베이와 여의도는 외관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지역은 서여의도인데요. 이곳은 국회의사당보다 건물을 낮게 짓도록 고도제한(최고 높이 45m)을 받습니다.
시원하게 하늘로 뻗은 마리나베이의 빌딩들과 한 눈에 비교가 됩니다. 대형 증권사들이 모여있는 곳은 동여의도인데, 이 지역의 건물들도 대부분 2000년대 이전에 지어올린 것들입니다. 그나마 2020년 IFC몰 옆에 복합시설 파크원 타워(333m, 69층)가 들어서며 여의도의 새로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는 있습니다.
여의도 '공간' 보다 기업 '환경'이 문제
여의도는 국제 금융허브라는 목표와는 다르게 글로벌 기업에 소외당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데요. '여의도'라는 공간 자체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글로벌 금융허브 정책, 즉 글로벌 금융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규제 면제와 혜택 등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한지혜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싱가포르나 홍콩에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집적한 이유는 풍부한 세제혜택과 개방적인 시장 덕분"이라며 "서울의 경우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 해당하는 규제 대상이기 때문에 이곳에 위치한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은 제한돼 있고 이중적으로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홍콩 사태로 아시아 금융중심지 재편 가능성' 보고서에서 "법인세, 소득세 등에서 해외 주요 금융중심지인 홍콩, 싱가포르와 격차가 존재한다"면서 "국내 금융중심지는 주요 해외 금융중심지 대비 매력도가 떨어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세계적 금융허브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싱가포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금융활동을 영위하기 좋은 환경을 맞추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는 글로벌 기업이 자국을 지연본부 입지로 활용하도록 싱가포르 외부로부터 벌어들인 적격 소득에 최대 5년 동안 15%의 우대세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정 충족 요건을 만족한 기업에 대해서는 5~15% 범위 안에서 더 낮은 우대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싱가포르에 소재하는 은행이 싱가포르 외 지역에 위치한 지점이나 본사로 지불한 금액은 원천징수세 대상에서도 제외됩니다.
또한 싱가포르는 적격 거래소득에 대해 3년 또는 5년 동안 최대 10%의 법인세 우대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글로벌 트레이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법인세율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적격 거래소득은 실물거래, 실물거래 중개, 파생상품 거래, 구조화 상품 거래, 인수합병과 관련한 재무 및 자문서비스 등과 관련해 발생한 소득입니다.
"외국계 불러들일 강력한 세제 혜택 필요"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전통적인 금융중심지와 달리 싱가포르와 홍콩같이 새롭게 떠오른 금융중심지는 살아남기 위해 세제혜택 등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며 "세금을 면제해줘야만 글로벌 금융사들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세제 혜택과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한 유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입니다. 한지혜 부연구위원은 "금융중심지 발전을 위해 제한적으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상황이 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일부 지역을 경제자유구역 등 특구로 지정하고, 이곳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기업에 대해서만 특정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이라고 제언했습니다.
싱가포르와 달리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에 대한 반향이 큰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입니다. 이 연구위원은 "외국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을 준다는 점에 사람들이 동의를 할 것인가가 의문"이라며 "싱가포르의 제도적 장점과 국내 도입의 효과성을 이야기하려면 동시에 여론과 공감대 형성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이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경쟁력을 보여주면 국내 금융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12)편에서 계속>
외국계 글로벌 금융사들이 입주한 마리나베이파이낸셜센터와 달리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는 비금융사들이 주로 입주해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IFC(왼쪽에서 세번째 건물)를 바라본 모습. (사진 = 허지은 기자)
싱가포르=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