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기독교계 원로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이자리에는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장종현 백석대학교 총장, 김태영 백양로교회 담임목사, 양병희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수습에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대통령실 참모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경찰, 특히 현장 치안을 책임졌던 일선 쪽으로 한정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대비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경찰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 112 신고 안 들어와도 조치를 했었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태원 참사가 제도가 미비해서 생긴 거냐"며 경찰을 크게 질타했다. 대통령실은 이 같은 윤 대통령의 비공개회의 발언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동시에 윤 대통령은 종교계를 면담하면서 민심 달래기에도 주력했다. 대변인실은 지난 8일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이 불교계·기독교계 원로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밝힌 뒤 "앞으로 다른 종교계 원로분들을 만나 경청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조계사 추모 위령법회(4일), 백석대 서울캠퍼스 하은홀 위로예배(5일), 명동대성당 추모미사(6일) 등 사흘 연속 종교 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윤 대통령은 9일에도 공식 일정 없이 비공개 일정을 소화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정순택 대주교를 만난 데 이어 염수정 추기경과 만나 환담을 나눴다. 윤 대통령은 오후에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과 부상자, 국민을 위로할 수 있는 방안을 통합위에서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가운데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국정감사 도중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의 메모장에 "웃기고 있네"라고 적은 장면이 국회 사진기자단 카메라에 포착됐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이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김성한 안보실장에게 "참사의 원인을 경찰서·소방서로 떠넘기고 있는 꼬리 자르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실이 제역할을 다했는지 꼼꼼히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질의하는 도중 김 수석이 강 수석의 메모장에 적은 것으로 보였다. 두 수석은 의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퇴장당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비례)은 국감 현장에서 김 수석과 강 수석의 불량한 태도를 꼬집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런 분들과 일하고 있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두 사람을 호되게 나무랐다. 이 의원은 9일 새벽 운영위 국감을 마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웃기고 있네'라는 조롱 섞인 대통령실 수석들의 비아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잠을 못 잘 것 같다"며 "156명의 죽음이 희화화되는, 타인의 아픔에 진영싸움으로 맞대응하는 그들에게서 책임은 둘째 치고 휴머니즘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적었다.
앞서 김 수석은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 종료 후 회의장을 배경으로 활짝 웃으면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생중계 카메라에 포착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치솟는 물가와 금리, 환율 등으로 서민 경제가 휘청이는 가운데 참모진의 비장함을 찾을 수 없었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강 수석 역시 지난 7월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당시 "엽관제"라는 해명을 내놓아 구설에 올랐다. 폭우가 수도권을 강타했던 지난 8월 윤 대통령의 자택 지시가 논란이 된 당시엔 "비가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하는가"라고 말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 수석은 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운영위에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을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 운영위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 필담은 운영위 내용과 전혀 관계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김 수석은 윤 대통령 비공개 일정을 브리핑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웃기고 있네' 메모가 포착된 뒤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 강승규 시민사회수석과 김은혜 홍보수석. (사진=국회방송 캡처)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전날 운영위 국감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발언을 내놓아 비판을 받았다. 김 실장은 이태원 참사 당시 국정상황실의 대처가 적절했는지를 묻자 "국정상황실은 대통령 참모조직이지 대한민국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며 "국정상황실에 인력도 몇 명 없다. 어떻게 전체를 컨트롤하겠냐"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중 '비속어' 발언 논란에 대해선 "민심보다 중요한 게 팩트"라고 맞받았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이에 대해 "팩트가 사실이어야 민심이 따라간다"며 "우리 국민 70~80%가 '바이든이다' 하고 김 실장도 '바이든 어쩌고 하는 때처럼'이라고 말했잖나. 어떻게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고 따졌다. 박 전 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대통령도 국회의원한테 이 XX하니까 그 수석들은 국회의원한테 '웃기고 있네'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라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가장이 잘해야 식구들 아들 딸들이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야권은 논란이 된 대통령실 인사들의 반성과 책임 추궁을 촉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어제 김은혜 수석 등 관계자들이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의원들의 질문 과정에서 '웃기고 있네' 메모를 하다가 문제가 됐다. 이게 웃깁니까"라고 따진 뒤 "대통령의 진지한 성찰과 사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김 수석 등을 "후안무치하고 염치가 없다"고 직격했다. 박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국민 300여분이 죽거나 다친 대참사를 놓고 책임과 원인, 재발방지 논의를 하는 국회에 와서 청와대 주요 공직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농담이나 시시덕거리면서 주고 받느냐"며 "진짜 웃기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라고 했다.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함께 회의장에 앉아 있던 우리 감사위원들이 두 사람(김은혜·강승규)이 자꾸 질의 중에 킥킥거리고 깔깔거리고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오만방자하게 굴었다"고 했다. 이어 김 수석과 강 수석에 대한 대통령실 차원의 인사 조치를 촉구했다. 안호영 수석대변인도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대통령실 김 수석과 강 수석을 즉시 파면하고, 이태원 참사에 대해 진정으로 엄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증명하라"고 압박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