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왼쪽)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다. 신구 권력 갈등으로 비화되며 여론의 부담을 느낀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28일 만찬 회동을 갖고 화해와 협력의 모습을 보였지만, 갈등을 촉발시켰던 사안들은 두 사람 모두 피했다. 국민적 시선을 우려해 첫 만남부터 얼굴을 붉힐 수 없었던 사정이 컸다. 공을 넘겨받은 실무라인의 부담은 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여부부터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정권 이양기의 인사권 행사 주체, 추경 편성 등 모두 부담스러운 사안들 뿐이다. 양측 모두 지지층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면까지 부각되면서 실타래를 풀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이번 회동에서 양측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견해차를 좁히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다만 합의는 아니라는 점에서 후폭풍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지역 판단은 차기 정부 몫"이라며 "현 정부는 정확한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했다. 협조 의사를 언급한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히는 이전 비용 승인을 해주느냐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29일 기자들과 만나 예비비 지출 승인 시기에 대해 "두 분(이철희·장제원)이 같이 의견 조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라고 했다. 결국 이 수석과 장 실장 간 회동에서 양측의 조건과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논의가 다시 헛바퀴를 돌 수밖에 없단 의미다. 여기에 국방부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예산을 두고 인수위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예비비 지출이 조기 승인될 지는 의문부호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장 실장은 이날 통의동 인수위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방부나 합참이나 공무원들이 있는데 현직 대통령이 협조를 하라고 지시가 떨어지지 않는 한 자신(국방부)의 입장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듣기에 따라서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을 기대하는 발언으로 풀이됐다.
임태희 당선인 특별고문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예비비 안건 내용이 치밀하고 면밀하게 협의가 안 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마 청와대에서는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동이 수반되는 과정이 면밀히 따져보면 간단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에서 "저희가 먼저 예단해서 혹은 먼저 앞서나가서 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다"며 "실무협의 조율 결과에 따라 추후 말씀드릴 계기가 있겠다"고 언급, 이 수석과 장 실장 간 실무 협의 내용에 따라 사안이 해결될 것임을 재확인했다.
△임기말 인사
갈등의 핵심인 인사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향후 불씨가 남았다. 감사원이 감사위원 제청 거부로 일단 윤 당선인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청와대가 다시 감사위원 인사권 행사를 모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앙선관위원회 상임위원이나 추가적인 정부·공공기관 인사 등은 임기 마지막까지 현직 대통령 권한이므로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장 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를 어떻게 하자'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해당 문제를 이 수석과 장 실장의 '협의'로 남겼다. 조율과 협의에 따라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양측이 전날 회동에서 임기 말까지 추가 인사를 자제한다든가, 서로 협의한다든가 큰 틀에서의 의견을 교환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일종의 '신사협정'이다. 상호 협의 과정에서 자칫 파열음이 날 경우 파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양측은 지난 16일 최초 회동 무산 후 한은총재 인선과정에서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두고 '거짓말 공방'을 벌이며 감정적 충돌을 빚은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안
코로나19 손실보상 추가경정예산안 규모도 확정짓지 못했다. 다만 민주당도 "추경은 빨리할수록 좋다"는 입장이어서 여야 합의만 이뤄지면 추경 처리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전날 회동에서도 추경 시점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으나 필요성에는 양측이 공감했다.
김 대변인은 "현재는 협의 중인 관계로, 저희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기재부에서 성의있게 적극적으로 임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들어 문 대통령 임기 내 2차 추경에 소극적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장 실장은 "집권하기 전에 할 수 있는지 이철희 수석과 이야기해볼 것"이라고 했다. '추경은 타이밍'이라고 할 정도로 속도감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의 눈물조차 메마른 상황에서 규모나 시기를 놓고 논의를 지연할 경우 추경 효과가 반감될 공산이 크다.
△MB사면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 문제도 가늠하기 어렵다.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오롯이 문 대통령의 결단에 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공식적으로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청할 명분도 적다. 사면 문제가 문 대통령이 마지막 임기 내 던지는 메시지가 되는 만큼 굳이 자신의 지지층을 반발을 사는 사면을 결단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무리하게 사면을 결단 할 경우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직면해야 할 후폭풍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장 실장은 "사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우리가 제안을 해도 대통령이 받으면 받고 안 받으면 안 받는다는 말"이라고 인정했다. 이어 "적어도 사면 문제를 물밑에서 조율하고 할 문제는 아니다"며 "그렇게 되면 국민이 볼 때 밀실에서 사면 얘기를 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 측 장제원, 윤한홍, 원희룡, 김은혜 등 핵심 참모진이 과거 모두 친이계였단 점에서 이 전 대통령 사면 문제가 물밑에서 논의될 여지는 크다. 임태희 고문은 "이 문제는 고도의 현직 대통령의 정치행위"라며 "실무 선에서 논의해 결론 내는 것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