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 내부 비리에 대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수사 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판사 중 무죄 선고는 이 전 법원장이 8번째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최수환)는 19일 오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법원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공모 등에 관한 일부 사실을 오해한 잘못이 있지만 그 결론은 정당하고,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우선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이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집행관 사무원 비리 사건의 수사 확대를 저지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기획법관의 일부 보고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이를 용인하는 정도를 넘어서 해당 기획법관에게 지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 사건 각 보고서 송부 행위를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사건 관련 영장이 청구되는 경우 이를 보고하게 하고, 총무과에서 필요한 영장이 있으면 이를 사본해 총무과에 제공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지시를 했다고 해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피고인이 기획법관을 통해 집행사무원 비리 사건 관련 정보들을 취득한 것은 사법행정사무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다소 벗어난 것으로 볼 여지가 없지 않으나 그러한 사정만으로 기획법관이 취득한 정보가 직무와 무관하게 취득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이 사건 보고서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송부한 행위는 기획법관이 피고인의 사법행정사무를 보좌하는 지위에서 직무 관련 알게 된 직무상 비밀을 취득할 지위 내지 자격이 있는 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한 행위"라며 "이는 공무상비밀누설죄에서 정하고 있는 '누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법원장은 지난 2016년 8월부터 11월까지 서울서부지법 소속 집행관사무소 사무원의 비리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은폐하고자 수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 내 직원들에게 8차례에 걸쳐 영장청구서 사본과 관련자 진술 내용 등을 신속히 입수하고 보고하게 하는 방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 등도 받는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임종헌 전 차장으로부터 지시나 부탁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수사 확대 저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마련한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이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검찰이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한 14명의 법관 중 8명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과 2심을 거친 10명의 법관 중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과 임종헌 전 차장 등 4명은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이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 앞에서 취재진들과 질의응답을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