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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20분 만에 쑥대밭…"1년 농사 망쳤다" 망연자실
"60년대에 만든 저수지 제방, 어느 기관서도 '안전점검' 없었다"
2020-08-04 15:44:29 2020-08-04 16:08:04
주말부터 중부지방에 쏟아진 물폭탄이 나흘째 이어진 4일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양1리 이장인 이종진씨는 마을 입구 다리에 걸터앉아 무표정히 토사를 퍼 나르는 포크레인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이틀 전인 지난 2일 마을 위 언덕에 있던 산양저수지가 범람하며 떠밀려온 토사들로 이씨 주변의 풍경은 이게 밭인지 길인지 집인지 구분기조차도 어려웠다. 포크레인의 작업으로 겨우 마을이 윤곽을 잡아갔다.
 
1일부터 계속된 집중호우로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양1리는 마을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복구 작업이 시작된 4일 쏟아진 토사로 인해 입구가 막혔던 마을 체육시설은 겨우 입구를 드러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천시청과 이씨 등에 따르면 2일 오전 7시쯤 밤새 내린 장마에 산양저수지 제방이 붕괴, 순식간에 마을이 물에 잠겼다. 산양저수지 면적은 축구장 2배 크기인 1만7490㎡고, 마을까지 거리는 약 530m다. 지난 주말 이천지역의 누적 강수량은 250㎜에 육박했다. 이번 호우로 몇 시간 만에 마을이 이렇게 됐냐는 질문에 이씨는 "몇 시간이 뭐냐"고 운을 뗀 후 "20분 만에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그때는 주말에다 시간도 일러 사람들이 밖에 없어서 한 명도 안 다친 것이지 자칫 인명피해가 크게 날뻔 했다"고 했다.
 
1일부터 계속된 집중호우로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양1리는 마을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4일 복구 작업이 시작됐지만 배 농사를 짓던 밭의 토사는 미처 퍼내지 못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제방이 무너지고 토사가 휩쓸고 간 후 이틀이 지나자 처음에 '살았다'고 안도하던 주민들의 마음엔 '어떻게 살아가나'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막대한 재산피해 탓이다. 특히 농작물 타격이 심대했다. 주민 박씨는 "집이나 건물이 망가진 건 복구하고 깨끗이 청소하면 되는 일이지만 배 농사며 비닐하우스가 망가진 건 1년 농사를 망쳤다는 것"이라며 "총리하고 장관도 마을 망가진 것만 둘러보던데 진짜 걱정스러운 건 농사"라고 토로했다.
 
1일부터 계속된 집중호우로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양1리는 마을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4일 복구 작업이 시작됐지만 비와 토사에 무너진 비닐하우스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졌다. 사진/뉴스토마토
 
그의 안내로 걸음을 옮기자 무너진 구조물과 물과 토사가 뒤엉킨 비닐들이 드러났다. 포도 비닐하우스가 있던 곳이라고 했다. 벼농사를 짓던 논은 잘 모르고 쓸쩍 지나가면서 보면 흡사 잔디밭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토사가 전체를 뒤덮었다. 옆에서 거들던 한 할머니는 깨 농사도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논이나 밭에 들어온 토사는 포크레인으로 퍼 나른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라며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부터 계속된 집중호우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며 서경리는 마을 일부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 마을은 4일부터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사진/뉴스토마토
 
정부 이야기가 나오자 주민 김씨는 제방이 무너진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간 제방을 주민들이 관리하기는 했으나 지금껏 시청이든 한국농어촌공사든 어디서도 안전점검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제방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시설이 노후화된 만큼 붕괴의 위험성이 컸다는 뜻이다. 이에 이천시청 측은 "7월에도 육안점검을 실시한 결과 이상이 없었다"며 "이번에 산양리엔 200㎜가 넘는 비가 와서 저수지가 범람하고 제방이 무너졌는데, 그런 경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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