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속 세계는 감독 또는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다. 이 세계를 활용해 하나의 세상을 구상해 놓는 작업 ‘영화적 시계관’으로 불리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그 동안 할리우드 영화, 그 가운데에서도 마블 영화가 주도했던 트랜드다. 하지만 올 여름 개봉한 국내 블록버스터, 그리고 앞으로 제작될 영화들을 보면 국내 영화계도 이 같은 트랜드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흥행 코드로 내세울 전망이다.
지난 15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 300만을 넘어선 ‘반도’가 ‘세계관 확장’의 국내 영화 대표격으로 주목 받고 있다. 2016년 여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과 같은 영화적 세계관을 공유한 ‘반도’는 독립된 얘기로 출발하지만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
‘반도’ 속 핵심은 ‘부산행’ 속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 확산 시작과 이후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상황에서의 인물 서사에 주목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좀비’가 등장하고, 원인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던 점뿐이다. 연상호 감독은 뉴스토마토에 “’좀비’란 개념은 확장성이 큰 소재다”면서 “이 소재를 활용해 여러 개의 작은 얘기를 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 시작된 스토리가 ‘부산행’을 거쳐 ‘반도’까지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어 “’반도’ 이후에는 다시 ‘부산행’ 이후 스토리가 될지, 아니면 독립된 또 다른 얘기가 될지 그것도 아니면 631부대와 살아 남은 생존자들의 얘기로 갈지 모르겠다”면서 “분명한 것은 이 세계관이 쉽게 끝날 것 같진 않다”고 전한 바 있다.
‘강철비2: 정상회담’은 세계관을 공유한단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으로 데뷔하기 전 웹툰 작가로 활동하면서 웹툰용 시나리오로 ‘변호인’과 ‘스틸레인’을 완성한 바 있다. ‘변호인’의 성공 이후 ‘스틸레인’의 스크린 전환이 이뤄졌다. ‘스틸레인’은 ‘강철비’란 제목으로 영화화가 이뤄졌다. 1편과 2편의 세계관은 영화적 시각에선 전혀 별개의 독립된 스토리다. 하지만 이 얘기의 전체 밑바탕이 웹툰 ‘스틸레인’을 기반으로 한 단 점에서 확장성은 무한대다. 1편에서 정우성과 곽도원이 각각 북한의 특수요원과 대한민국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출연했지만, 2편에서 위치를 바꿔 대한민국 대통령과 북한 호위총국장으로 변신했다.
정우성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기획은 국내 영화 산업에 분명히 큰 자극이 될 것 같다”면서 “서로 다른 얘기를 끌고 가지만 같은 배우가 다른 배역으로 출연하게 된다면 ‘강철비’란 세계관을 끌고 갈 수 있는 충분한 동력과 관객들에게도 그 세계관을 이해시킬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는 9월 개막하는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된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 신작이다. 박 감독은 이미 국내 느와르 영화 교본으로 불리는 ‘신세계’를 연출한 바 있다. ‘낙원의 밤’은 ‘신세계’와 전혀 다른 별개 세계관과 스토리 캐릭터를 갖고 출발하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스타일 방식 등에서 ‘신세계’ 프리퀄을 떠올릴 법한 완성도와 색채를 담고 있단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박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 가운데 세계관을 공유하는 ‘신세계’와 ‘마녀’ 시리즈 제작도 현재 계획 중이다.
최근 뉴스토마토와 만난 한 영화계 관계자는 “박 감독의 ‘낙원의 밤’은 ‘신세계’의 후속편을 기다리는 팬들에겐 새로운 재미를 전달할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면서 “연관성이 전혀 없는 독립된 얘기이지만 ‘충무로 스토리텔러’로 불리는 박 감독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30일 오후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전화통화에서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는 검증된 기획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단 점에서 연출자와 제작자가 외면할 수 없는 방식이다”면서 “이미 이전에도 시리즈가 충무로에서 인기를 끌어 왔지만,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확장은 얘기가 다르다. 올 여름 대작 영화들의 흥행 성적표는 앞으로 여러 매력적인 세계관 공유 작품이 앞다퉈 나올 원동력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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