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차기태의 경제편편)CJ 증여의 거듭된 '마법'
2020-05-06 06:00:00 2020-05-06 10:03:52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CJ 신형우선주 184만주를 두 자녀에게 증여했다. 딸 이경후 CJ ENM 상무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92만주씩 나란히 넘겨받은 것이다.
 
지난해 4월 CJ올리브네트웍스와 CJ올리브영을 분할하면서 이선호 부장에게 CJ 지주사 주식 2.8%를 안겨준 데 이어 증여까지 한 것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와 CJ올리브영의 분할과정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이재현 회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태연하게 증여까지 했다. 증여 덕분에 이 부장은 5.16%의 CJ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이경후 상무도 3.81%의 지분을 갖게 됐다.
 
우선주는 의결권 없이 배당만 보통주보다 더 받는 주식이다. 그렇지만 이재현 회장이 아들에게 넘겨준 신형 우선주는 다르다. 10년 후 보통주로 전환되기에 특별한 우선주다. 따라서 10년 후에는 이들 남매가 의결권까지 갖춘 보통주로 바꾸면 된다. 그때까지 배당이나 받으면서 편안하게 기다리면 된다.
 
이 방법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이미 유효적절하게 써먹은 바 있다. 서 회장은 2006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장녀 서민정씨에게 신형우선주 20만여주를 증여했다. 서민정씨는 11년 뒤 이 신형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했다. 덕분에 그녀는 지주회사인 아모레G 지분 2.93%를 확보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참으로 간편한 방식이다.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보다도 더 간명해 보인다. '우선주 마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재벌들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이용해 돈 안 들이고 경영권을 차지하는 '자사주 마법'처럼 신통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재현 CJ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증여에 따른 세금을 줄여주고자 증여를 취소했다가 다시 증여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이재현 CJ회장은 지난 3월30일 184만여주 신형우선주의 증여를 취소하고 4월1일 다시 증여했다.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지난해 12월 증여 시점에 1204억원에 달하던 증여가액이 767억원으로 감소했다. 그 결과 증여세 역시 자동으로 줄어든다. 두 자녀에게 넘어가는 주식의 수량이야 물론 그대로다.
 
국내 굴지의 재벌 가운데 하나인 CJ가 이 방법을 써먹는 모습을 보고는 무릎을 탁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기발하고 '참신'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보다 영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증여가액이 줄어든 것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제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진 가운데 많은 기업의 주가도 하락을 면치 못했다.
 
바로 이런 와중에 이재현 CJ 회장은 자녀 승계를 위해 증여한 우선주의 세금부담까지 걱정하니, 끔찍한 자식사랑이다. 또 하나의 마법, 즉 '절세승계의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결국 이재현 회장은 2·3중으로 거듭된 마법을 동원한 셈이다. 마법은 마법을 낳는다고 할까?
 
그런데 지금 그런 마법을 쓸 때인지 사실 묻고 싶다. 재벌 총수가 책임경영을 하겠다면 주가가 하락할 때 자사주를 사들여 끌어올리는 반전을 시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GS그룹의 오너4세인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등은 이미 사재로 자사주를 사들였다. 심지어 전문경영인도 나섰다.
 
오너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투자자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신용도 저하와 주가 하락 등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다. 이럴 때 총수가 당면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주가회복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반면 CJ는 거꾸로 간다. 그런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이때다 싶어 '증여 취소에 이은 재증여'라는 마법까지 썼다. 더욱이 이 회장의 장남이자 증여대상인 이선호 부장은 지난해 마약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따라서 그의 자질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상태이다. 그런 의문이 해소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CJ 총수는 마법까지 써서 물려주기에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자세가 투자자나 채권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투자자와 채권자도 상식과 공감능력을 지닌 인간이다. 과연 CJ의 이번 마법이 공감의 대상일까, 불신의 대상일까? 그 해답은 CJ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