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개천의 용
입력 : 2020-01-16 06:00:00 수정 : 2020-01-16 06:00:00
‘개천의 용’. 이렇게 몇 글자 적지 않았을 뿐인데 참 많은 그리움이 몰려온다. 새해 벽두부터 가슴 벅찬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 아, ‘개천의 용’이여. 찢어지는 가난과 고난을 겪고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선 자들이여. 그대들이 헤쳐 온 삶의 과정을 생각하면, ‘개천의 용’은 참으로 아름다운 조어가 아닐 수 없다. 이보다 더 그들의 고진감래의 과정을 찬미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할 만한 말이 있을까.   
 
여기에서 굳이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을 일일이 예를 들고 싶지는 않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적지 않게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빚어낸 창조적인 삶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용기를 심어주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던 범인들에게 그들은 따뜻한 전설이었다. 건강한 삶의 해법을 제시해주는 등댓불 같은 것이었다. 
 
아,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이제는 ‘개천의 용’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 같다. 아니, 좀 더 과장해서 얘기하면 ‘개천의 용’이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찾아온다. ‘개천의 용’이라는 용어의 소멸을 재촉하는 ‘금수저’라는 단어가 대척점에 서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한국의 통계청이 2019년 11월 25일 발표한 ‘2019 사회조사’에서, “내 자식이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응답한 국민의 비율이 최근 10년 사이 48%에서 29%로 무려 19%나 급감한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수치기 때문이다. 향후 자식의 삶에 대한 기대치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이 수치에는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  
 
‘개똥밭에 인물 난다’, ‘자수성가’와 같은 말이 점점 더 우리 사회에서 격리되는 것도 안타깝지만, 그보다 이제는 부모의 재산이 자식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결정해주는 요인으로 정착하지 않을까 몹시 두렵다. ‘금수저’, ‘은수저’, ‘무수저’와 같은 이른바 ‘수저계급론’, 그리고 대한민국에 더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헬조선’과 같은 자조 섞인 용어가 사회 전반에, 특히 젊은이의 가슴속에 각인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구슬픈 곡조로 울어대는 것만 같다.   
 
더불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해법을 고심하는 ‘저출산’ 문제도 이러한 사회 현상으로 야기된 문제의 하나일 것이다. 2019년 7월에서 9월까지의 합계 출산율은 0.88명이었다. 정말 충격적이다. 2018년 같은 기간의 0.96명보다 더 떨어졌다. 2020년 출산율이 0.8명대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렇게 초라한 수치의 바탕에는 사회가 젊은이들의 꿈을 방치해 놓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방치하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놓는 행위다. 무엇보다 ‘2019 사회조사’에서 20대와 30대의 절반 이상이 우리 사회를 “믿을 수 없다”고 답한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경기연구원이 작년 12월 경기도민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모바일 설문조사에서도 “한국사회는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이 76.3%였다는 사실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공정한 게임, 공정한 룰을 꿈꿀 수 있게 이런 암울한 통계를 걷어내야 한다. 그런 간절함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황폐해진다. 계층 이동의 중요한 사다리 역할을 했다고 여겼던 ‘사법고시’를 부활시키고, 그리고 대학입시에서 정시를 확대하는 정책 등은 국가가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희망적인 시그널이 될 수 있다. 더하여, 노력하면 얼마든지 집을 사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부동산 대책과 획기적인 출산 대책도 절박한 심정으로 다가서고 또한 서둘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개천의 용’도 다시 살아 돌아온다. 그립고 또 그립다. ‘개천의 용’이여.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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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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