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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문화 터전 최전선’에서 만난 밴드 9와 숫자들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탈홍대’…“공간을 잃으면 공동 의식 무너져”
약자들의 소박한 고민 빚어낸 10년…“복고는 과거만 지향하는 것 아냐”
망리단길서 만난 9와 숫자들①
2020-01-08 18:00:00 2020-01-08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골목길을 걸으면 옛 생각이 났다. 노란 조명이 어스름한 겨울 저녁을 포근하게 감싸 쥐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예쁜 빵집과 앙증맞은 소품샵, 음악 스튜디오…. ‘말랑’, ‘만물’ 같은 간판 밑으로 적당히 모인 사람들이 담소를 나눴다. 1990년대 문방구만큼이나 반가운 정겨움. 거리 곳곳 드리운 안락이 자꾸만 시계를 되감았다.
 
예술 공방 같은 곳들이 늘어선 이 거리는 서울 망원동 인근이다. 최근 몇 년 새 홍대부터 연남동까지 확장된 ‘젠트리피케이션’ 탓에 이 일대로 옮겨온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비싸진 임대료를 감당 못한 예술가들에겐 ‘문화 터전’의 최전선 같은 곳. 홍대를 거점삼던 밴드 ‘9와 숫자들’[송재경(보컬), 유정목(기타), 꿀버섯(베이스). 유병덕(드럼)] 역시 최근 이 곳에 안착했다. 지난달 19일 망리단길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은 대한민국 현대화 과정의 제일 큰 병폐”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극(기성권력)과 극(사회적 약자)의 싸움이자 해결이 되고 있지 않은 문제죠. 직접적 피해자까지는 아니어도 저희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망리단길 한 카페에서 만난 밴드 ‘9와 숫자들’. 왼쪽부터 꿀버섯(베이스), 유병덕(드럼), 유정목(기타), 송재경(보컬), 사진/오름엔터테인먼트
 
2009년만 해도 홍대에는 밴드 중심의 라이브 클럽신이 활성화돼 있었다. 당시는 9와 숫자들이 막 결성됐던 시기. 몇몇 공간을 주기적으로 오가며 이들은 라이브 기반을 닦았다. 수요일 밴드로 시작해 토요일 밴드로 나아가는 건 당대 뮤지션들의 성장 법칙. 멤버들끼리 인연을 맺은 것도 각자의 ‘요일 밴드’를 하면서였다.
 
10년 새 풍경은 급변했다. 자본에 예속되지 않던 공간들의 자본화, 느닷없이 불어 닥친 ‘탈홍대’ 바람. 사람들이 몰리며 임대료가 치솟았다. 문화 토대를 형성하던 주체들이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유목민처럼 이 곳, 저 곳을 부유했다.
 
“모래성을 쌓으려는데 마치 잔물이나 파도가 계속 몰아치는 것과 비슷했어요. 현재까지 망리단길은 우리들의 대안공간이자 최전선이예요.”
 
이들은 홍대 밴드신의 쇠퇴 기점을 ‘두리반 투쟁’ 사건 전후로 보고 있다. 두리반은 2009년 홍대 동교동 삼거리 인근에 있던 국수집. 2007년 인천공항 경전철역 공사가 시작되며 당시 두리반 건물은 강제철거 위기에 있었다. 이 곳에 세 들던 두리반 주인은 투쟁을 시작했고 홍대 뮤지션들이 연대했다. 2년 뒤 주인은 인근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지만, 밴드신은 되려 ‘그 뜨겁던 시기’를 뒤로 하고 주춤하고 있다.
 
“얼굴을 맞댄 채 공동의 발전 내지 모색이 가능했던 시기죠. 공간을 잃게 되면서 결국 ‘밴드신’이라 할 만한 의식 같은 게 점차 없어진 것 같아요.”
 
망원 인근에서 만난 밴드 9와 숫자들. 왼쪽부터 송재경(보컬), 유정목(기타), 유병덕(드럼), 꿀버섯(베이스). 최근 망리단길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이 일면서 이들은 "다른 대안지역을 탐색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진/오름엔터테인먼트
 
찬란하고 뜨겁던 그 날은 다시 올 수 있을까. 흡사 도시개발자 같은 답이 돌아왔다. “영국 캐번 클럽처럼 20~30년 존속되는 공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소수 취향을 적재적소 고루 분배할 수 있죠. 결국 문화의 질적 차이, 다른 양태를 만들죠.”
 
지난 10년 간 음악은 그들의 행보와 닮아 있었다. 주로 변두리 삶을 살아가는 약자들의 소박한 고민, 따뜻한 고백 같은 것. 재경이 익명 ‘9’로 활동하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9는 완벽에 살짝 못 미치는 숫자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려는 인간적인 느낌. 그게 우리 창작의 핵심 정서라 생각해요.”
 
2009년 데뷔 앨범을 시작으로 밴드는 복고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왔다. 아련한 청춘 한 줌 흩뿌리는 듯한 문학적 가사, 시간을 되감는 포크록과 도회적인 신스팝 풍 사운드의 조화. 산울림, 시인과촌장 같은 70년대 정서를 새롭게 변주한 이들 음악은 최근 대중음악계 복고 열풍의 선도격 흐름이었다. 2011년 밴드는 ‘제 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앨범 부문도 수상했다.
 
“복고라는 건 단순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과거를 지향하되 지금의 의식이나 첨단, 여러 기제들이 만나 지금의 것으로 나오는 것이죠. 10년 전 복고가 밴드신의 소수 문화였다면 지금은 기업, 광고까지 확대되며 저변이 커졌단 생각이 들어요.”
 
옛 사운드의 가치를 묻자 멤버들은 ‘통기타, 목소리 만으로 울림을 주던 김광석’을 떠올려보라 했다.
 
“몇 만명이 운집한 스타디움, 거기서 울리던 교감을 생각해보세요. 정서적 이데올로기가 하나로 모아지던 그 순간을….”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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