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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 "탁상행정" 비판
"배당 받을 주주, 권리 행사할 주주 불일치 문제 발생"
섀도보팅 폐지이후 정족수 미달·안건부결도 심각해
2019-12-15 12:00:00 2019-12-15 12:00:00
[뉴스토마토 신송희 기자] 올해 사업연도 결산과 내년 초 정기주주총회 실시를 앞두고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당장 주총 내실화를 규정한 상법 시행령 시행이 한 해 유예될 가능성은 있지만, 미뤄졌다고 해서 더욱 어려워진 주총 일정관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주총을 내실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주총 소집통보(주총 2주전) 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통보를 의무화(개정안 31조 제4항)한다. 충실한 주총으로 만들기 위해 주주들에게 미리 사업보고서 등 정보를 제공하고, 준비기간도 늘려 4~5월에 주총을 열어 많은 기업들의 주총이 특정일로 집중되는 것을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배당 문제가 핵심이다. 그동안 국내 12월 결산법인들은 12월말 결산일을 기준해 주주를 확정하고, 배당 받을 주주도 이에 맞추는 것이 관행이었다. 한해 결산 성과를 토대로 지급하는 배당금을 의결권을 가진 결산 시점의 주주에게 주기 위해서다. 다만 상법상 의결권 행사 기준일로부터 3개월 안에 주총을 열어야 하고, 결산과 외부감사, 주총 소집을 위해 필요한 시간 등을 모두 감안해 3월말에 정기주총을 개최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 취지에 따라 주총을 4~5월로 분산할 경우 의결권 주주 확정 기준일과 배당기준일이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주주 확정 후 3개월 안에 주총을 열기 위해서는 1~2월 중에 주주를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배당을 받아야 할 주주는 12월말 기준인데 주총 의결권은 1~2월의 주주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이는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배당을 받지 않는 주주가 주총에서 배당안건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익 충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3월 안에 주총을 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준비 시간이 빠듯하다. 현행법상 사업보고서는 사업연도가 끝난 후 90일 이내, 감사보고서는 주총 1주일 전까지 제출하면 되지만, 바뀐 개정안은 주총 2주 전까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기업 IR 담당자는 “회계 감사가 까다로워져 안 그래도 준비기간이 빠듯했는데 바뀐 시행령이 적용되면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이는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푸념했다.
 
 
부실 감사 우려도 커진다. 일정성 배당하는 회사의 외부감사인은 2월말 혹은 3월초까지 감사를 끝내야 하는 만큼 감사소요기간이 5주에서 3주 정도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대신지배구조연구원 관계자는 “감사품질에 있어 감사시간은 절대적인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감사품질을 높이려면 적정시간이 요구된다”며 “신외감법은 표준감사시간제도 도입을 통해 감사시간이 표준감사시간보다 현저히 적은 경우 지정감사 대상이 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아직 확정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부실 감사 우려를 언급하긴 어렵고, 감사기간이 줄어드는 데 대한 추가 대책이 나오지 않겠냐”며 말을 아꼈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소위 비지 시즌(1~3월)에는 모든 회계법인이 인력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감사보고서 제출기한이 조금이라도 당겨진다면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바쁜 시기에는 1~2주 차이도 매우 크고, 충분한 감사를 하지 못해 생기는 부실감사 혹은 감사자료를 제대로 제공 못해 감사범위 제한에 따른 의견변형(한정, 의견거절)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주총이 지연될 경우 배당을 중시하는 주주들의 불만도 커질 전망이다. 주총에서 배당 안건을 통과시키면 1개월 안에 배당금이 지급된다. 5월에 주총을 하면 6월이나 돼야 한다. 전년도 결산에 대한 배당을 새해의 절반 가까이 지난 시점에 받는 것이다.
 
최성현 상장사협의회 본부장은 "정부는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배당기준일을 상정한 상법 자체를 개정하는 것이 순서"라며 “지금의 시행령 개정안은 기업의 배당 활동을 억제하고, 주주와 마찰을 일으킬 것이며 배당을 늘리려는 현재 시장 분위기도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상장사협의회 연구원은 “배당기준일을 결산월 말일 이후 또는 가능하다면 주총 개최일 이후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현행 상법 개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총 분산을 놓고 정부와 기업의 의견 차이가 극명해진 시점은 섀도보팅(Shadow voting)을 폐지한 후부터다. 섀도보팅은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기업들은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주총 안건 부결이 쏟아질 것이라며 제도 유지를 호소했지만, 정부는 3년간의 유예기간을 뒀다며 이를 폐지했다. 이후 섀도보팅 없이 이뤄진 지난해 주총에서는 76개사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주총 안건이 부결됐고, 올해 초 열린 2018년 결산 주총에서는 188개사, 238개 안건으로 늘었다. 부결된 안건은 감사선임 안건(149건·62.6%), 정관변경(52건·21.8%), 임원보수승인(24건·10.1%) 순이었다.
 
안건 부결이 현실화되자 정부는 전자투표 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전자투표로 참여율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2017년 정기주총에서 주주의 전자투표 행사율은 1.80%로 극히 낮았으며, 2018년엔 3.90%, 올해는 5.04%로 나타났다. 참여 주주는 이제 겨우 10만명이다.
 
이번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공인인증서 외에 휴대폰 인증 등으로 전자투표를 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익명의 한 업계 관계자는 “주총 분산을 유도하는 것도 결국 주주들의 참석률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전자투표에도 관심 없는 주주들이 주총을 분산한다고 참여할지 의문”이라며 “단기 투자 비중이 높은 국내 투자자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기업을 휘두르려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주총회 내실화를 두고 기업과 정부의 의견 차이가 극명하다. 사진은 모 기업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신송희 기자 shw1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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