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리뷰)'나이브스 아웃', 황석희의 선택은 옳았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추리물, 완벽하게 '떡밥 회수'
크리스 에반스, '캡틴 아메리카' 이미지 완벽 탈피
입력 : 2019-12-04 07:54:48 수정 : 2019-12-04 07:54:48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해당 기사에는 영화 '나이브스아웃'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다.)
 
모두에게 각광받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선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그 글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인품 또한 훌륭했다. 가족들의 사업을 돕는 것은 물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 그가 85번째 생일파티 다음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모였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9명의 가족은 그날 이후, 아홉 개의 칼이 되어 서로를 겨누기 시작한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감독 라이언 존슨)은 미스터리 추리 영화로, 초호화 캐스팅으로 처음부터 화제가 됐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필두로 크리스 에반스, 토니 콜레트, 돈 존슨, 마이클 섀넌, 캐서린 랭포드, 크리스토퍼 플러머까지. 이렇게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귀가 솔깃하다. 그럼에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소문난 잔치엔 이유가 있다'고.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이번 영화는 감독 라이언 존슨의 팬심이 컸다.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10년 전부터 '나이브스 아웃'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엔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캐릭터들의 성격, 씬의 분위기를 전담하고 있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대사 한 줄, 시계 하나에도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리극임에도 불구하고 다회차 관람객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브스 아웃'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헌정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아가사가 주로 다뤘던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은 물론, 긴장감을 유발하는 대사와 극적인 미장센, 섬세한 심리 묘사가 특징이다. 심지어 정치적인 이야기도 깊숙이 담겨있다는 점도 닮았다. 진정 팬심에서 우러나온 오마주도 등장하는 것이 포인트. 아가사가 생전에 이 작품을 봤다면 매우 흡족하게 보지 않았을까.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추리물은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다. 관객들의 흥미를 비교적 쉽게 이끌어내고, 장르적 특성상 결말까지 집중을 유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루즈한 진행이나 영화의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나이브스아웃'은 극 초반부터 관객들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공개한다. 이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범인을 모르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범인을 찾아가는지, 탐정이 이 범인을 과연 찾아낼 수 있는지 긴장하기 시작한다. 관객들의 시각을 범인의 시각에 맞추는 교묘하고도 현명한 술수다.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영화에 한층 더 몰입하게 만든다.
 
개연성도 훌륭하다. 일명 '떡밥 회수'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사실 영화의 모든 떡밥이 한 작품에 완벽하게 주워 담기란 쉽지 않다. 마블의 10년 MCU 서사를 총망라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2015년부터 각본을 집필하기 시작한 이 초대형 영화에서도 설정 구멍은 수도 없이 등장했다. 시간여행 설정 오류, 캐릭터 서사 붕괴, 스토리 구성의 느슨함 등으로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루소 형제들이 개봉 후 한참 동안 인터뷰를 돌며 '엔드게임' 속 스토리 설정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다. 그들은 3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서도 똑똑한 관객들을 만족시킬 순 없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에서는 모든 떡밥이 깔끔하게 회수된다. 심지어는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세밀한 설정도 뒤늦게 발견되기도 했다. 초상화 속 그림의 변화라던가, 핏자국의 정체, 한 캐릭터의 묘한 대사가 바로 그것이다. 나중에 봐서야 "이게 이걸 뜻하는 거였구나!"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10년 동안 집필했다는 라이언 존슨의 말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이쯤 돼서는 누군가 이런 일차원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크리스 에반스가 불량하게 나온다며? 몰입이 되냐?"는 질문. 하지만 정말 크리스 에반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크리스는 오히려 '나이브스 아웃'을 통해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걸 알 것이다. 평소 장난스러우면서도 다소 도를 넘는 발언을 자주 하는 크리스와 극 중 랜섬은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극중에 가끔 등장하는 진중한 눈빛은 캡틴 아메리카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이내 영화의 빠른 전개에 그 생각도 멀리 던져버리게 된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앞서 언급했던 정치적 묘사에 대해서도 '나이브스 아웃'은 수위를 아주 절묘하게 드나든다. 백인우월주의에 찌든 캐릭터부터 외국인 노동자, 페미니스트,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급진 우파까지 다양하다. 2019년 미국 사회의 현실을 유쾌하게 담아냈다. 개봉 전 황석희 번역가가 그렇게 극찬한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개봉은 4일.

영화 '나이브스 아웃' 스틸. 사진/㈜올스타엔터테인먼트
 
김희경 기자 gmlrud151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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