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오로라의 주술 걸린 음악섬, 그 사색적 몽환의 무대
가녀린 체구, 바이킹 같은 장대함…‘겨울왕국 2’ 오묘한 목소리 주인공
음산하면서도 맑은 잔혹 동화 연상…노들섬 첫 내한 공연, 900여명 몰려
입력 : 2019-12-03 15:58:14 수정 : 2019-12-03 15:58:14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강 한 가운데 위치한 음악섬에 주술을 거는 듯 했다. 공기를 가르는 음성이 안개 자욱한 꿈결을 연상시키고, 죽은 영령을 위무하는 것처럼 퍼져 나갔다. 부서질 듯 가녀린 체구와 오로라처럼 오묘하고도 몽환적인 목소리, 한 편의 잔혹동화 같이 어둡고 기괴한 가사, 멜로디….
 
금발의 단발 머리를 격렬히 흔들며 나비 같은 고운 손짓을 펼칠 때. 삶의 온갖 불가해한 감정들을 살풀이하듯 읊어 나갈 때. 관객들은 넋 놓고 접신한 듯 빨려 들어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눈 밑 빨간 페인팅 분장을 한 채.
 
지난달 30일 서울 노들섬에서 첫 내한 단독공연을 연 오로라. 사진/ⓒAbi Raymaker (abiraymaker.com)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라이브하우스.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AURORA·본명 에우로라 악스네스·23)의 첫 내한 공연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주술 체험에 가까웠다. 칼 같은 한강 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할퀴는 날씨에도 이날 이 경이적인 여정에는 900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함께 했다.
 
1996년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출신인 오로라는 현재 가장 뜨거운 뮤지션 중 한 명.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초자연적인 그의 음악은 전 세계에 닿고 있다. 영화 ‘겨울왕국2’ 주인공 엘사의 잠을 깨운 묘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 임을 안다면 대략의 힌트 정도는 얻고 들어가는 셈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노들섬에서 열린 오로라 공연을 보기 위해 늘어선 인파.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어릴 적 전자 피아노 소리에 매혹된 그는 10살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음악 장르를 탐미하며 자신의 음악관, 예술관을 확장시켜왔다. 가수 엔야로부터 모성애 같은 천국의 음성을,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마스토돈에게서 록적 폭발이 주는 짜릿함을 흡수했다.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그의 가사들은 레너드 코언, 밥 딜런의 영향이다.
 
동화 같은 세계관을 구축하는 그는 환경 문제, 개인주의, 페미니즘, 동성애 같은 사회적 현안도 음악으로 빚어낸다. 가장 최근작인 ‘A Different Kind Of Human – Step 2’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낸 앨범. 다양한 예술, 패션 세계에도 관심이 많다. 이번 공연 직전 연두빛깔 한복을 입고 숲속에서 춤추고 노래한 유튜브 영상은 공개 열흘 만에 전 세계 20만명이 시청했다.
 
노르웨이 공영방송 NRK TV에 연두빛 한복을 입고 라이브 무대를 가진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이날 저녁 8시경, 그는 엘프처럼 가늘고 흰 두 손을 치켜들며 등장했다. 첫 곡은 오싹한 잔혹 동화를 연상시키는 ‘묘지(Churchyard)’. 귀곡성처럼 음산한 소리, 때론 맑고 청아한 음색을 오가며 사랑과 증오, 이 상반된 감정의 기억들을 쓰다듬었다. 한국 전통 무용 같은 고운 손짓은 흡사 나비처럼 날개짓 하는 망자의 혼 느낌. 온 몸을 흔드는 춤사위가 접신한 듯 격렬해지자 객석에서 천둥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바이킹 문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장대했다. 몽환적으로 시작하는 전자음이 쌓이다 후주 부분 기타, 드럼으로 터질 때 그는 사랑을 쟁취하려는 전사처럼 관객들과 팔을 하늘 위로 치켜 드는가 하면(곡 ‘Warrior’), 연체동물처럼 흐느적대다가도 360도를 회전하며 무대 위를 방방 뛰어 다녔다.(곡 ‘Animal’)
 
지난달 30일 서울 노들섬에서 열린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의 첫 내한 단독 공연. 사진/ⓒAbi Raymaker (abiraymaker.com)
 
삶과 죽음, 장미와 짐승, 빛과 그림자,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자신을 둘러싼 상반된 주변 것 안에서 그는 자기 ‘삶’의 주도성을 찾아 나선다. 주변엔 좋은 것들이 나쁜 것들과 공존하고, 괜찮다가도 한없는 우울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는 노래한다. 삶은 결국 무한한 순환 속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여기도 외로운 이들이 있을 거란 걸 알아요. 선뜻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거란 것도 알아요. 하지만 우린 늘 연결돼 있죠. 고통스러울 땐 이 노래를 기억하세요.”
 
‘초인이여, 내가 약해질 때 나와 함께 있어줄래요? (중략) 우리는 여기 당신을 위해 와 있어요, 우리에게 평화가 오고 있어요. 어머니의 배가 당신을 높게 높게 데려갈 거예요.’ (곡 ‘A Different Kind of Human’ 중)
 
지난달 30일 서울 노들섬에서 열린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의 첫 내한 단독 공연. 사진/ⓒAbi Raymaker (abiraymaker.com)
 
일견 심오해 보이는 깊은 사색의 무대를 끝내면 그는 곧장 23살의 숙녀로 돌아가곤 했다. “한국에 처음 왔다”는 그는 “전통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도시의 고층 건물들을 봤다. 노르웨이는 건물이 높아봐야 10층”이라 농담하며 관객들과 친구처럼 대화했다. 줄곧 특유의 속삭이는 고음톤으로 말하곤 했는데, 그것은 목소리 힘을 비축하려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관객들이 태극기를 건네거나(곡 ‘Apple Tree’), 핸드폰 불빛을 들어올릴 때(곡 ‘The River’), 슬로건을 들고 떼창을 쏟아낼 때(곡 ‘Queendom’) 그는 연신 감격에 젖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지막 곡 ‘Running With the Wolves’ 이후의 순간. 마이크를 총처럼 겨누고 늑대소녀처럼 포효하던 그가 인이어를 뺀 후, 이번엔 반대로 관객들을 보며 넋이 나갔다. “한국 관객들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팬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다시 돌아오게 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네요. 오마이갓!”
 
곧바로 앙코르 곡 ‘Daydreamer’가 들불처럼 객석에 번져갔다. ‘낮에도 꿈꾸는 몽상가가 되라’는 구호가 전자음, 드럼 비트에 실려 넘실댔다.
 
‘우리는 밤에 꿈을 꾸고 길을 걷고 잡담을 하네/현실에서 낮에도 꿈을 그리고 달빛을 걷고 꿈을 이야기하기 위해/낮에도 꿈꾸는 몽상가가 되기 위해/낮에도 꿈꾸는 몽상가가 되기 위해’
 
지난달 30일 서울 노들섬에서 열린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의 첫 내한 단독 공연. 사진/ⓒAbi Raymaker (abiraymaker.com)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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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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