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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바늘방석에서 맞이한 14주년
2019-12-04 06:00:00 2019-12-04 06:00:00
지난달 28일 오후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렸다. 하나은행의 상장지수증권(ETN) 불완전 판매에 대한 처리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결과는 '기관경고' 였다. 기관에 대한 제재로서 크게 무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것도 아니다. 향후 1년동안 감독 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한 신사업 분야에 진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 직원 2명에게도 견책의 징계가 의결됐다. 하나은행은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과태료도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이 이번에 제재를 받은 것은 양매도(콜옵션과 풋옵션 동시 매도) ETN상품의 불완전판매 문제였다. 최고위험 상품에 속하는 ETN상품을 2017년 11월부터 중위험상품으로 속여 판매했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나섰고, 그 결과가 이번 제재로 이어졌다.
 
하나은행은 최근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해외금리연계파생상품(DLF) 상품에도 우리은행과 함께 ‘주연’으로 등장한다. 한 보도에 따르면 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이 사용한 고객 포트폴리오 제안서에는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쇼크에도 안정적'이라는 문구 등이 적혀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원금 손실이 없는 안전자산인 것처럼 사실상 속여 판 것이다. 더욱이 그 대상자 가운데는 고령자가 많았기에 공분을 샀다. ‘사기성 판매’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게다가 하나은행은 금융감독원이 이 문제에 대한 검사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관련 자료를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금융보안원의 도움을 받아 삭제된 자료를 되살려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은행권 채용비리' 검사 때도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가 들통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이번에 또다시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어쨌든 일 사건에 대한 검사는 끝났고, 이제 결산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대한 검사를 마친 후 의견서를 작성했다. 그 의견서에 두 은행의 최고경영자(CEO)가 제재 대상으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인사 가운데는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과 지성규 하나은행장이 거명됐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들 두 은행 CEO들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금융감독원의 방침인 듯하다. 
 
물론 이들 CEO의 거취와 처분에 대해 지금 예단할 수는 없다. 아마도 금융감독당국도 금융사들의 무책임한 영업에 대해 이번만큼은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나 이런 무책임한 영업이 계속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악습을 끊어야 할 때가 왔다. 사안의 중대성과 경위를 종합해 볼 때 중징계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래야 잘못된 악습을 청산할 수 있다. 
 
사실 하나은행은 최근 불미스런 사건에는 거의 어김없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채용비리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올 6월에는 하나은행 중국법인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유의’ 통지를 받았다. 불미스럽고 유쾌하지 않은 일만 거듭되니 민망할 지경이다. 
 
하나은행의 역사는 입지전과도 비슷하다. 단자회사로 출발해서 은행으로 ‘승급’하고 보람은행과 서울은행을 인수하는 등 도약을 거듭했다.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되찾아온 것도 하나은행이었다. 제법 화려하고 장엄한 성장사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하나은행은 비교적 세련된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불미스런 일만 거듭되면서 그런 이미지도 흐릿해졌다. 
 
자랑스럽던 시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쩌다 이렇게 불미스런 일만 쌓이게 됐을까? 어쩌면 독일 철학자 니체의 냉소적인 말처럼, 약간의 진실을 곁들이면서 더 많은 허위를 일삼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주와 사외이사는 물론이고 하나은행과 하나금융그룹 직원들은 지금 수치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수치심조차 느낄 줄 모른다면 개선의 희망조차 없다.
 
마침 하나금융그룹은 2일 그룹 출범 14주년 기념식을 맞이했다고 한다.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당분간 바늘방석에 앉아 금융당국이나 시민단체의 감시를 받아야 할 처지다. 바늘방석에 앉아서나마 스스로 돌아보고 근본적인 혁신을 꾀해야 한다.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스스로 잘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가 더 추락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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