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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외면·시장교란 낙인…애물단지된 코스닥벤처펀드
금융당국 수장 바뀐후 무관심…'관치펀드'는 필패?
우선배정 받은 공모주 상장첫날 털어내 IPO시장 왜곡 '눈총'
메자닌 채권 발행급증…부실기업 리스크 떠안아
2019-11-24 12:00:00 2019-11-24 12:00:00
[뉴스토마토 신송희 기자] 벤처기업의 모험자본 공급을 목표로 정부가 적극 추진한 코스닥벤처펀드가 성과 부진과 자금 이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득공제 혜택과 공모주 배정 등을 무기로 내걸고 코스닥 활성화를 외쳤지만, 판매개시 1년7개월이 지난 현재 코스닥벤처펀드는 메자닌 과열과 IPO(기업공개)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금융투자업계는 대대적인 손질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한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공모형 코스닥벤처펀드의 설정액은 490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월 7820억원까지 증가했지만 1년 사이 3000억원가량 빠져나간 것이다. 자금 이탈 속도도 빨라 이대로라면 내년 초쯤 펀드 투자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코스닥벤처펀드는 전체 투자금의 50% 이상을 코스닥기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벤처기업 신주나 전환사채(CB)에 15% 이상, 벤처기업 또는 벤처기업 해제 후 7년이 안된 코스닥 중소·중견기업의 신주와 구주에 35%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그 조건으로 투자금액 3000만원까지 납입액의 10%를 소득공제해주는 혜택도 주어졌다.
 
◇코스닥 근본 체질부터 개선해야
 
그러나 세제혜택도 소용없을 정도로 수익률이 부진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설정액 10억원 이상인 12개 코스닥벤처펀드의 6개월 수익률은 평균 -8.59%에 그친다. 설정액이 1200억원대로 가장 큰 KTB코스닥벤처증권투자신탁의 1년 수익률은 -4%다.
 
전체 코스닥 시장의 위축으로 코스닥벤처펀드들도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닥지수는 연초 680선에 시작해 700선을 웃돌기도 했지만 지난 8월에는 600선 밑으로 추락했고 현재 630선을 오가는 중이다. A코스닥벤처펀드의 매니저는 “주식 편입 비중을 줄여도 시장이 하락하면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면서 “보유 종목의 개별이슈보다 시장에 영향받아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펀드 성과를 돌리기 위해서는 코스닥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B증권사 연구원은 “코스닥벤처펀드 출시는 시장의 질적 활성화가 아니라 양적 지원을 끌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코스닥벤처펀드를 출시한 C자산운용사 대표는 “생산적인 기업과 벤처로 자금이 흘러가 나스닥처럼 오를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시장 수급이 개인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변동성이 커졌고, 펀드수익률 부진이 다시 자금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처음 상품 출시부터 탁상공론 식이었다"면서 "지금이라도 코스닥 활성화를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만큼 단기 수익률을 기대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코스닥벤처펀드만으로 시장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고 규제완화 등 전반적인 생태계 활성화가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실기업 메자닌 증가…담는 펀드도 위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익률 고전과 자금 이탈을 겪는 와중에도 시장 교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 출시 후로 메자닌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메자닌은 일정 조건에서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채권이다. 코스닥벤처펀드는 벤처기업 신주나 전환사채(CB)를 의무적으로 담아야 해 메자닌 수요가 급증했고, 공급도 함께 늘어났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7월까지 발행된 메자닌 채권은 전년동기보다 14.0% 증가한 3조3784억원을 기록했다”면서 “코스닥벤처펀드로 인해 메자닌 투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메자닌 수요가 증가하자 부실기업들까지 메자닌을 발행해 자금을 끌어다 쓰는 현상이 나타났다. 메자닌은 주로 기업 신용도가 낮아 일반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이 활용하기 때문에 이 채권을 담는 코스닥벤처펀드도 위험을 떠안게 된다. 실제로 ‘KTB코스닥벤처증권투자신탁’이 편입했던 엘앤케이바이오는 현재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된 상태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메자닌 채권 발행기업 중 상장폐지된 비중이 6.9%에 달한다”면서 “신용도 낮은 기업이 주가 상승에 따른 전환옵션을 제공하는 대신 조달비용을 절감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메자닌이 늘어나면 기존 주주의 보유주식 가치가 희석되는 점도 문제다. B증권사 관계자는 "급증했던 메자닌 채권의 전환청구 개시일이 순차적으로 돌아올 텐데, 이게 다 주식가치 희석요인"이라며 "대규모 전환청구 시 단기적으로 수급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모주 우선배정받아 상장 첫날 던진다
 
코스닥벤처펀드는 벤처기업 등 코스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져 공모주 우선배정 같은 혜택이 주어졌다. 코스닥 공모주를 배정 받을 때 기관과 일반투자자에겐 각각 20%만 배정되지만 코스닥벤처펀드는 30%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받은 공모주를 상장 첫날에 팔아치우는 바람에 공모기업들의 주가가 부진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경준 혁신투자자문 대표이사는 “코스닥벤처펀드 출시 이후로 상장기업들의 주가 하락세가 뚜렷해졌다”면서 “코스닥벤처펀드 물량이 첫날부터 나오니까 주가 하락을 우려하는 다른 기관들까지 매도에 동참해 결국 공모시장이 왜곡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코스닥 새내기의 상장 첫날 매매동향을 보면 기관이 순매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은 제테마가 상장한 첫날 67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으며, 라파스(82억원), 아이티엠반도체(83억원), 티라유텍(122억원) 등도 순매도했다. 코스닥벤처펀드 운용진을 무조건 매도할 수도 없는 것은, 이렇게 해서라도부진한 성과를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우선배정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면서 “우량한 기업의 주식을 장기간 보유할 니즈가 높은 기관이 우선 배정을 받아야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이는 상장기업이 안정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4월5일 코스닥벤처펀드가 출시된 지 1년 7개월이 지난 이후 수익률 부진과 자금 이탈을 겪고 있다. 사진은 출시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직접 상품에 가입하는 등 흥행을 위해 적극 홍보에 나서는 모습. 사진/뉴시스
신송희 기자 shw1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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