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막말의 생태계
입력 : 2019-10-16 07:00:00 수정 : 2019-10-16 07:00:00
최병호 정치부 기자
정치. 뉴스에서나 일상에서나 자주 접하는 말이지만 그걸 정의하는 건 쉽지 않다. 역사적·사회적 분석과 쓰임도 다양하다. 어렴풋이 단서를 찾으면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는 권위적 분배를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권위적 분배를 위해 입법을 하며 그 결과는 국가·국민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치에 대해 대중의 뇌리엔 '막말'만 남았다.
 
정치권의 막말이 신기한 건 다른 공적영역에서라면 좀처럼 보기 힘든 욕설과 고함, 비난 등이 여기선 득세한다는 점이다. 다른 데에선 진작 매장됐을 인신 모욕과 특정 집단에 대한 폄훼, 장애인 비하 등이 스스럼없이 터져 나올 때도 있다. 더 흥미로운 건 막말의 생태계와 유통과정이다. 어떤 정치인이 막말을 하면 그걸 머리로 세운 기사가 넘쳐나고 삽시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 퍼진다.

처음 막말이 공유되는 건 그것의 심각성을 문제 삼거나 함의를 풀기 위한 목적이었을 테다. 하지만 마치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시간이 지나면서 막말 그 자체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그럴수록 언론의 클릭 수는 흥하고 플랫폼도 접속자가 늘어나며 수익을 얻는다. 막말과 그걸 발화한 정치인이 인구에 회자되며 유명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막말로 정치인과 언론과 플랫폼 모두 윈윈하는 셈이다. 이런 생태계에서 막말은 막말을 낳으며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한다. 14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막말과 선동만 있는 정치가 부끄럽다"고 토로하며 내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건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막말은 1차적으로는 그걸  꺼낸 정치인에게 책임이다. 그런데 막말의 생태계를 따져본다면 겉으로는 막말을 부각해 보도하는 언론과 플랫폼도 공범이다. 막말이 그 어떤 파장도 끼치지 않고 정치인의 입에서만 끝난다면 막말이 지금처럼 득세했을까. 언론과 플랫폼의 자정 작용과 의식 개선이 없다면 정치권의 막말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1995년 중국을 방문 중이던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한국의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나 우리 정치는 1류가 됐을까. 막말이 득세하는 한 정치는 4류는커녕 영원히 하류를 벗어날 수 없다. 정치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 묻는다. 정치가 사회적 가치를 분배해 공익에 도움이 되는 본연의 역할을 찾으려면 막말 생태계부터 정리돼야 한다.
 
최병호 정치부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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