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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깨려는 자, 지키려는 자
2019-10-04 00:00:00 2019-10-04 00:00:00
내게 ‘권력’을 떠올리면 그려낼 수 있는 이미지는 ‘소나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멋대로 삐죽삐죽 솟은 소나무가 아니라 뿌리에서부터 쭉 뻗어 나간 날렵한 몸통이 한 지점에서 양 갈래로 갈려 마치 두 그루처럼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소나무. 완벽한 명목(名木)이다. 이런 명목은 주로 권력이 있는 곳에서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얼마 전 이런 명품 소나무를 시내 한 가운에서 보게 보게 됐다. 대검찰청 앞 정문 근처에 멋들어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대한민국은 다른 이슈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몇 개의 키워드가 나라 전체를 잠식하고 있다. 조국, 특혜, 검찰, 권력 등의 키워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한 여론은 양보 없이 갈리는가 싶더니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은 중의를 모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주말 200만에 이르는 촛불이 그것을 증명했다. 
 
견제할 장치하나 없는 대한민국 검찰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영화가 늘 주목한 지점이었다. 권력은 시선과 잣대를 어디에 둔다고 해도 문제 투정이로 비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내부자들’에선 정치와 결탁한 권력의 독과점을 여실히 선보였다. 매개는 돈이다. 권력은 그 특성상 자신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분산되지 못한 힘은 고인 물에서 썩어가기 마련이다. 검찰 권력이 중앙응집성 성격을 띠고 있는 건 권력의 독과점을 감시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을 요구하며 서초동에 촛불이 모여든 이유다. 영화 ‘부당거래’에선 검찰이 수사권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 방법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검찰 개혁의 또 다른 핵심요소가 왜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여야 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영화 ‘더 킹’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력형 비리검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은 수사권을 이용해 정치인들의 약점을 캐고 기소권으로 그들과 거래를 하며 자신의 검은 욕망을 채워 나갔다. 정우성의 모습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더 씁쓸한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화성 연쇄살인범 검거가 그리 큰 이슈가 아닌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2019년 가을, 대한민국은 들썩이고 있다. 그 핵심은 조국 법무부 장관 개인이 아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어이 장관에 임명한 이유,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편파적 수사에 매달리는 이유, 검찰 개혁이 핵심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한 구절이 떠오른다. 1605년 가톨릭 탄압에 저항해 영국 국회의사당 폭파를 기도한 ‘가이 포크스’ 얼굴 가면을 쓴 주인공 ‘브이’는 말한다. “사람이 아닌 신념을 기억하라. 신념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가면 뒤에는 살덩이만 있는 게 아니다. 총알에도 죽지 않는 신념이 있다.”
 
신념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조 장관의 신념과 검찰 신념 중 어느 쪽 신념이 결국엔 승리해 세상을 바꾸게 될까. 깨부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의 정면충돌. 역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촛불 민심은 정국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지, 정의는 어느 쪽에 있는지, 우리는 지금 중요한 권력의 심판을 위해 서 있는 중이다. 당신은 깰 것인가. 지킬 것인가.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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