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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사람 위에 아파트 없다
2019-09-30 15:25:16 2019-09-30 15:25:16
강남구 개포동 일대에 33층짜리 고층 건물이 늘어섰다. 하얀 외관에 회색과 갈색이 어우러지며 고급스러움을 뽐낸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건설사가 재건축한 프리미엄 브랜드 아파트다. ‘고급’, ‘품격’ 등 호화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붙어 세간의 관심도 컸다. 높은 집 한쪽에는 칙칙한 갈색빛만이 감싼 7층짜리 아파트 2개 동이 나란히 섰다. 공공임대 입주민이 들어서는 곳이다.
 
논란이 일었다. 공공임대 주민을 차별하는 것이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쪽에선 비싼 돈 주고 자가로 사는 사람들과 주거 조건이 다른 게 당연하다고 반박한다. 말이 칼이 되며 날을 세울 때 임대 주민들은 당첨된 기쁨보다 차별 받을 걱정이 커진다.
 
이 같은 현상은 고질적인 문제다. 마포구에서 재개발 사업으로 등장한 주상복합단지는 입구,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 등을 따로 만들어 임대와 일반분양 가구를 분리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아파트 브랜드 휴먼시아에 거지를 붙인 ‘휴먼거지’나 ‘임대충’이란 비하 표현도 난무한다. 이외에도 차별 사례가 수두룩하다. 임대 주택이 들어서는 걸 꺼리는 모습이 만연하다. 일종의 님비현상이다.
 
반발이 심하더라도 공공임대 주택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 신혼부부나 저소득층 등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이들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에 대한 주택구매력지수는 43.6에 그친다. 이 지표는 중간 정도의 소득자가 금융기관 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수준의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 원리금을 부담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집 사기가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내 집 마련 평균 연령도 올라가고 있다. 2016년 41.9세에서 2017년 43세로, 지난해에는 43.3세로 늦어졌다. 몇 달 사이 억 단위로 뛰는 집값이 교차된다. 
 
학계에서도 집값 안정화를 위해 공공임대 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 주택을 공급해 주거안정을 도모하면서 아파트 매매 수요를 분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님비현상을 극복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공공임대는 차별의 이유가 될 수도, 돼서도 안 된다. ‘집값 하락’, ‘품격 저하’ 등의 이유로 공공임대를 배척하는 모습은 사람보다 돈을 우선하는 천민자본주의에 가까운 행태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더라도 사람보다 돈이 우위일 수는 없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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