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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세종대왕님이 노하셨습니다
2019-08-02 00:00:00 2019-08-02 08:53:57
요즘 영화계 최대 이슈는 단연코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 논란이다.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역사 학계도 분노하고 있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 낸 뜨거운 반응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세종대왕은 위대한 성군이니 무조건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이 영화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히 허무는 방법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데서 대중들은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영화는 한글 창체 과정에서 세종대왕을 기획자로 설정하고 신미스님을 주역으로 내세웠다. 연출을 맡은 조철현 감독은 이와 관련,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며 그 안에서 ‘감안’과 ‘역사 공백 개연성’을 들여다봤음을 강조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숱한 역사 기록들 속에서 공백기 사건을 감안하고 재해석하는 건 후손들이 해야 할 당연한 몫이고 일이다.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재해석한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영화는 영화’로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랏말싸미’는 역사에서 사건(콘텐츠)을 가져오면서 정작 사건과는 개연성 없는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사건 안에 밀어 넣어 버렸다. 당대를 함께 살았던 실존인물들을 하나의 가설에 의지해 한 덩어리의 사건으로 엮어버리자 역사적 사실마저도 전혀 다른 것이 돼 버렸다.
 
기록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신미스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한글 창제 이후다. 그런데 한글 창체란 사건 안에 동시대 인물인 세종대왕과 신미스님을 엮어버리니 ‘한글은 신미스님 작품’이란 메시지가 모두에게 전달돼 버렸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웃어넘기기엔 국민들이 받은 정서적 충격은 클 수 밖에 없다.
 
한글이 세종대왕 고유 창작물이 아닐뿐더러 사실 세종대왕은 한 스님의 업적을 가로채기 한 사람이 돼 버렸다. 게다가 한글이 우리의 고유 문자가 아닌 산스크리스트어와 파스파 문자에서 모티브를 따온 소리 문자로 주장해 버렸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탄탄했다면 이 영화는 새로운 사실을 예술의 힘으로 발굴해 낸 선구자적 작품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 감독이 매달린 근거는 빈약했고 그마저도 영화 개봉 이후 역사학자들에 의해 조목조목 반박 당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는 대중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문화 콘텐츠다. 영화란 콘텐츠는 대중에게 스토리를 전달하고, 이 스토리는 때때로 사실처럼 모두에게 받아들여진다. 영화는 창작의 자유로움이 허용된 콘텐츠 산업이지만, 그렇다 해서 굳이 사건과 인물 경계를 교묘히 흐리는 방식으로 역사적 사실까지 뒤집을 필요는 없었다. 빈약한 가설에 매달려 국민적 자긍심까지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해외로까지 뻗어나간단 점을 감안하면 최근 한일관계 악화와 더불어 우려되는 지점도 크다. 임나일본부설을 지금껏 주장하는 일본 극우 사학계가 이 기회를 흘려 보낼지 물어 뜯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을 기대하며 ‘나랏말싸미’를 만든 것일까. 감독의 ‘진짜 의도’가 궁금해진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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