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침보라소에 오르자
입력 : 2019-08-02 06:00:00 수정 : 2019-08-02 06:00:00
네 사람은 손바닥을 대고 무릎을 끌며 높고 좁은 산등성이를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왼쪽의 가파른 절벽은 반질반질한 얼음으로 덮여 있고 오른쪽 아래는 칼날 같은 바위가 돌출된 높이 300미터 수직 벽이다. 신발 바닥을 파고든 삐죽 튀어나온 돌에 다친 발에서는 피가 흐른다. 허파는 희박한 산소를 들이마시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1802년 6월 23일 그들이 오르던 산은 당시 세계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던 해발 6400미터의 침보라소. 정상에서 불과 400여 미터 남았을 때 너비 20미터, 깊이 180미터의 크레바스가 그들을 막았다. 열정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였다. 그때까지 해발 5917미터에서 호흡해 본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역사적인 등반의 주인공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 그는 기압계, 온도계, 육분의, 인공수평기, 시안계를 챙겨 침보라소를 오르면서 100미터 오를 때마다 온도계를 땅에 꽂고, 기압계를 읽고, 습도와 물의 끓는점을 측정했으며 공기 샘플을 포집하여 화학 조성을 분석했다. 그리고 마주치는 생물 종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해발 5500미터에서 발견한 이끼를 기록한 후 그들은 더 이상 어떤 생명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침보라소를 오르며 훔볼트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터득했다. 그는 식생대가 차곡차곡 층상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야자나무와 대나무로 시작한 숲은 침엽수, 참나무, 오리나무와 관목으로 이어지더니 고산식물과 이끼류가 나타났다. 침보라소를 오르는 여행길은 마치 적도에서 극지를 향해 떠나는 여행과 같았다. 
 
훔볼트는 하나의 산에 여러 대륙에 상응하는 기후대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생태계 이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혁신적인 개념이었다.
 
침보라소에서 내려온 후 훔볼트는 안데스 산맥 기슭에서 자연을 한 장의 그림으로 스케치했다. 침보라소에서 발견한 모든 식물들을 발견한 위치에 정확히 표시했다. 그리고 이것을 '자연그림'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하면 자연그림은 침보라소의 단면도다. 
 
훔볼트는 나중에 남아메리카 대륙의 자연그림을 90×60센티미터 규격의 그림으로 정식 출판했다. 침보라소를 가운데 두고 좌우 여백에 여러 칸을 마련해서 세부적인 정보를 기재했다. 각 고도별로 기온, 습도, 기압이 어느 정도이며 어떤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는지 나타냈다. 훔볼트는 다른 나라의 중요한 산에 대한 자연그림도 그렸다. 고도와 온도에 따라 변하는 침보라소의 식생대가 다른 산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훔볼트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런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훔볼트는 식물을 엄격한 위계질서를 따르는 분류학에 매몰되지 않고 기후와 지역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는 자연그림을 통해서 다양한 자연 환경 속에 관통하는 통일성을 찾아냈다. 여기에서 기후대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남아메리카를 3년간 탐험한 훔볼트는 1803년 2월26일 다시 적도를 넘어 북반구로 올라왔다. 그 사이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수천 종의 식물을 채집하고 이것저것 수도 없이 측정했다. 탐험과 측정을 통해 그는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는 새로운 비전을 품었다. 그리고 그의 트렁크에는 '자연그림'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의 아이디어와 그림 한 장은 다음 세대 사람들이 자연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그것이 바로 '생태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훔볼트는 알렉산더의 형인 빌헬름이다. 플로이센 제국의 외교관이었으며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설립자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훔볼트해류, 훔볼트오징어 등 자연에 많이 남아 있지만 현대인의 뇌리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밝히고 제안한 등온선, 기후대, 생태계 같은 개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마치 공기처럼 의식하지 않고 사용한다. 마치 처음부터 있던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런 개념이 나오기까지는 목숨을 바친 탐험과 '자연그림'이라는 이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디자인이 있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독립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어떻게 생겼는지 잊혀졌다. 우리나라는 언제나 독립 국가였고 우리는 처음부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것 같다. 당연히 아니다.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었다. 이제는 우리가 훔볼트가 되어야 할 때다. 큰 그림을 그리자. 그리고 독립과 자유를 지켜내자. 눈앞에 있는 일본이라는 침보라소를 오를 때다. 사투를 버릴 때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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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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