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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어린 의뢰인’, 우리 모두 분명한 유죄이다
2013년 ‘칠곡 아동 학대 사건’ 모티브, 끔찍한 사건 정황
어른 무책임 vs 사회 시스템 문제 거론, 결국 모두 ‘범인’
2019-04-30 12:33:16 2019-04-30 12:33:16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폭력은 정당성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행위이다. 특히나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은 가장 추악한 행위 자체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건 사회적 합의나 인간적 동요가 아니다. 폭력의 가해자는 선택으로 이뤄질 수 있지만 피해자는 선택될 수 없다. 그래서 폭력의 정당성 자체를 논의하는 것부터가 어떤 식으로든 불성립의 개념인 셈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폭력은 최악의 상황으로 따지고 들더라도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욱이 그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 특히나 아동이라면 이건 논점 자체가 달라진다. 더욱이 그 가해자가 친권을 소유한 부모다. 이건 사회적으로 개념의 논의가 분명히 필요한 지점이다. 반드시 지금이라도 필요한 논의이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리고 분노에 휩싸이게 만든 칠곡 아동 학대 사건은 그래서 출발 자체가 달라야 한다. 폭력의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폭력의 피해자가 보호 받아야 한단 완벽한 대의 명제가 논점이 아니었다. 법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조차 없는 아동 피해자와 친권을 무기로 자녀에 대한 소유욕을 주장하며 폭력을 의무와 권리로 착각한 어른의 무책임 자체가 본질이다. 아동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울타리조차 만들어 주지 못한 사회의 어른과 양육을 소유로 망각한 부모란 이름의 가정 속 어른의 두 시선이 모두가 범죄일 뿐이다. 결국 제2 3칠곡 아동 폭행 피해자는 언제라도 나올 수 밖에 없다. ‘어린 의뢰인어른이란 이름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무게, ‘어린이이란 이름이 갖고 있는 한 없이 소중한 무게의 숫자를 상기시킨다. 어른인 우리가 우리 자신의 책임감이란 무게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의 미래는 그 무게에 짓눌린 채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뿐이다.
 
 
 
영화는 책임감을 성공이란 잣대로 평가하는 한 어른으로 시선으로 출발한다. 오직 성공만이 인생의 목표인 변호사 정엽(이동휘)이 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형 로펌 면접에서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유무죄 의향을 묻는 질문을 받는다. 모든 이들이 잠정적 유죄를 선택하지만 그는 정황을 근거로 죄를 물을 수는 없단 입장을 내비치며 무죄를 선택한다. 그의 법률적 인식과 합리성은 사회 통념에서 유연함으로 불릴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통속적인 잣대를 들이 밀자면 금권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는 가장 속물적인 어른의 표상인 셈이다. 해당 로펌 취직을 합격하면서도 우린 태생적 불합리성을 부정하는 집단이다는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사람은 태어난 위치에서 모든 것이 정해졌다는 대표의 발언이 우리 사회 어른들이란 인물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이다. 정엽은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정해 놓은 성공의 가치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정엽의 가치는 반대였다. 그는 로펌 취직 전 잠시 머물던 사회복지센터를 통해 알게 된 다빈-민준 남매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 속 무형의 가치를 자극 받았던 것이다. 겉 모습으론 남매의 살가움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남매의 순수함에 끌리고 동화돼 갔다. 스스로도 몰랐던 것이다. 가치 기준에 있는지를 사실 정엽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로펌 취직이 결정되고 사회복지센터에서 사직을 한 뒤 서울로 향한다. 두 남매에겐 오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며 꼭 다시 햄버거 같이 먹자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채.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남매 중 동생 민준은 심각한 구타로 인해 사망한 상태였다. 누나 다빈은 공포에 질린 채 어른들의 질문과 시선에서 스스로를 닫아 버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빈이가 경찰에 자신의 동생을 때려 숨지게 했다고 자백을 했다. 이제 겨우 10세 소녀이다.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른 바 촉법 소년이다. 그렇게 어린 민준의 죽음은 묻혀져 버렸다. 다빈은 세상의 시선에 손가락질을 받으며 동생을 죽인 누나가 됐다. 어린 소녀의 믿을 수 없는 자백과 그보다 어린 소년의 끔찍한 죽음. 그리고 남매의 보호자인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내이자 남매의 새엄마인 여자는 친권이란 법적 보호 체계 아래에서 세상의 의심에 적반하장일 뿐이다. 정엽은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에게 만큼은 마음의 문을 열었던 다빈-민준 남매의 고통을 외면해야 할까. 아니면 어른으로 자신이 느끼고 또 고통 받고 있는 양심의 시선을 따라가야 할까. 세상 모두의 어른은 이 사건을 외면한다. 모두가 외면하는 이 상황을 정엽은 정면으로 부딪쳐 맞서기로 한다. 정엽 역시 사실 세상의 모든 어른들과 같은 어른일 뿐이다. 하지만 단 한 마디가 자신의 가슴을 치게 만든다. 어릴 적 자신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다빈은 엄마란 어떤 느낌이냐라고 정엽에게 묻는다. 그저 엄마는 엄마일 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질문이 정엽을 괴롭혔던 것이다. 보호 받고 사랑 받고 그 안에서 자라고 또 성장해서 내 자리를 대신해 또 다른 어른으로 커가야 할 다빈과 민준의 질문이 가슴을 후벼 팠다. 정엽은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빈이 물었던 엄마의 느낌. 최소한 엄마는 아니지만 세상 모든 어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정엽의 마음은 그렇게 스크린 밖에서 이들의 얘기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가슴 한 복판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힌다. 어른이란 이름의 책임감이 갖고 있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그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된 것이며 의무란 것을.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어린 의뢰인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13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그린다. 가정은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 작은 사회에서도, 그 작은 사회를 품고 있는 커다란 우리의 세상 속 사회에서도 보호 받지 못한 어린 두 남매를 통해 시작부터 잘못된 인권 사각의 문제점을 감정의 무게로 후려친다. 감정의 무게로 후려 친다고 감정 자체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복지 시스템 자체가 갖고 있는 원론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면밀하게 담아냈다. 쳇바퀴 돌 듯 책임을 떠넘기는 시스템 체계의 문제는 언제라도 똑 같은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시스템의 문제는 어른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핵심적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의 무사 안일한 책임 면피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영화 후반 가해자인 새엄마의 독백 속 단 한 마디가 면피의 실마리로 작용될 수도 있는 여백을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해자 역시 또 다른 피해자였고 이른 굴레를 만들어 낸 시스템의 오류가 진짜 문제란 점을 거론하고 싶었던 감독의 선택으로 느껴진다.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누군가는 굴레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다빈과 민준도 결국 학대의 삶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삶 자체의 트라우마를 얻었을 지 모른다. 또 다른 새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럼 이건 누구의 책임인가. 영화 초반 정엽이 로펌 면접 장면에서 받은 질문이다. ‘제노비스 사건당시 이 사건 현장을 목격한 마을 주민 들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엄연히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경찰 신고를 하지 않은 주민들은 유죄일까. 아니면 행위의 주체가 아니기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무죄일까.
 
새엄마의 과거가 폭력의 정당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법률적 시선의 최소한일까. 그걸 인정한다면 다빈이 미래에 선택될 수 밖에 없는 삶이 어느 쪽이더라도 그 역시 과거의 트라우마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굴레의 사슬을 끊어야 한단 점에선 무조건 동의가 된다. 하지만 이건 분명 답은 하나 일 뿐이다. ‘어린 의뢰인의 잘못된 선택이라기 보단, 이 영화가 말하는 점은 사실 딱 한 가지일 것이다. 어른이란 이름의 사회가 만들어 낸 폭력 자체가 범인이라고. 우리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점이다. 5월 개봉 예정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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