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조양호 회장과 결이 다른데…"
27일 서울 서린동 SK빌딩에서 열린 SK㈜ 주주총회에서 만난 한 SK그룹 관계자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의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이 같이 말했다. 국민연금은 전날 최태원 SK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 "기업가치를 훼손한 이력이 있다"며 사내이사 연임 반대를 결정했다. 총수 일가 갑질 파문으로 문제가 된 한진그룹과 '도매금'으로 묶인 것에 대한 불만이 깔린 발언으로 읽힌다.
이날 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된 조 회장은 지난해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분위기가 잠잠했다. 그러나 지난해 물컵 갑질을 계기로 총수 일가의 일탈 행위가 폭로 되면서 총수가 사실상 퇴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장동현 SK 대표이사 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열린 제28차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과거 배임 등 형사처벌을 받았던 전력을 이유로 국민연금이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재계는 분석했다. 최 회장과 SK 계열사는 주총 때마다 국민연금과 악연이 계속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012년 SK하이닉스 사내이사에 선임되는 과정에서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소속 일부 위원들을 반발로 중립 의견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선 경험이 있다. 또 최 회장은 지난 2013년 SK C&C 주총 당시 6곳의 기관투자자들이 이사선임을 반대하는 등 숱한 난관을 뚫고 그룹 내 입지를 다져왔다. 책임·투명 경영과 주주 친화정책 등의 노력도 뒤따랐다.
이날 주총에서는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8.4%에 그쳐 표결에 미치는 파급력이 미미했다. 하지만 이번 주총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 도입 후 내린 첫 의사결정이라는 점에서 SK그룹은 이미지 추락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비록 최 회장의 재선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SK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의미있는 실험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SK와 SK하이닉스는 나란히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도록 한 정관 내용을 변경해 이사 중 한 명을 의장으로 정하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SK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된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이 이사회 의결에 따라 의장으로 선출됐다. 최태원 회장은 사내이사 선임을 거쳐 대표이사로 재선임돼 책임경영에 나선다. SK하이닉스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이석희 대표이사는 경영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체제를 정비했다.
재계와 시장에서는 최 회장과 SK계열사들이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나선 시도에 긍정적인 반응이다. 정성엽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정관변경안을 상정하는 동시에 언론을 통해 최태원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려놓는다고 발표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의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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