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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성 평등 제로섬 아닌 '파이 키우기'로 접근해야"
박원순 시장 의지 확고…모든 분야 기획단계부터 젠더적 시각 반영 필요
"머리로는 알지만 구현방법 모르는 실무자에게 해외 실천사례 소개"
2019-03-21 06:00:00 2019-03-21 08:37:21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올해 1월 15일 서울시 시장실 직속엔 '젠더 특별보좌관'이라는 직위가 처음 생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성 평등 정책 수립과 추진 방향에 대해 조언하는 자리다.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은 임순영 전 국회의원 보좌관이다. 그는 부서 간 칸막이를 넘나들면서 시정 전반에 성 주류화와 성 인지적 관점을 반영할 계획이다. 임 특보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총무, 한국성폭력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여성자문기구 의장 사무국장,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연구담당관,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11월까지 남인순 의원실에서 4급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젠더 특보 임명은 박 시장이 직접 젠더 문제를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히는 가운데, 임 특보를 만나 젠더 문제와 성 평등 전반에 관해 물었다(편집자주). 
 
임순영 젠더 특별보좌관은 성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운다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진/홍연 기자
 
-지자체 첫 젠더특보다. 어떤 의미가 있고 무슨 역할을 하나.
정부나 지자체가 부서별로 담당하는 사업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책 전체에 성 주류화·성 인지적 관점이 반영이 필요하다. 젠더특보는 부서와 떨어져 전체를 조망하고, 부서 간 칸막이를 넘나들면서 정책을 본다. 박원순 시장님과 직접 대면해 관련 사항을 보고하고 지시받는 게 필요하다. 젠더특보를 임명한 것은 시정 전반에 걸쳐 박 시장님이 직접 젠더 문제를 챙기고 관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원순 시장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1992년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근무 당시 근무지가 박 시장님 변호사 사무실과 멀지 않아 가끔 식사를 하며 우리 일을 독려해주셨다. 그러다 1998년에는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이 있었는데,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던 때였다. 여성단체가 연대해 공동대응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고, 박 시장님은 당시 ‘해야 한다,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본인이 변론을 맡아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연구담당관으로 재직할 때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자문을 얻었으며,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시절에는 준비된 지역 리더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인 ‘좋은 시장 학교’를 맡아서 운영했다.
 
-여성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학부 때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사회운동·사회문제를 시간에서 여성운동과 여성 문제가 제일 마지막에 다뤄졌다. 당시에는 민주화 운동 시절이라 성차별 문제가 부각되기엔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다. 제 삶을 돌아봐도 저희 어머니가 맏며느리로서 굉장히 힘들게 시집살이를 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 당시 교양과목에 개설된 여성학을 들은 뒤 사회학을 하면서 풀리지 않았던 가부장적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윤곽이 그려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다. 

-박 시장을 보좌한 지 두 달 됐는데.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박 시장님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 의제에 대해선 시간과 장소를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시간을 정해 관련 사항을 말씀드리거나 보고하는 원칙주의적인 게 있었는데, 시장님은 ‘ 언제든 필요하면 (보고를) 수시로 하라’고 한다. 급한 것들은 한 일정과 다른 일정 사이에 틈이 생길 때 가서 보고한다. 가끔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보고가 이뤄지는데 그걸 귀찮아하지 않고, 활발하고 역동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타부서 업무보고에서도 본인이 큰 것을 보니 젠더 관점의 스크리닝(screening) 등을 놓칠 수 있어 되도록 자주 배석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박 시장은 조언하면 수용하는 편인가
박 시장님은 일단 듣고 아니다 싶으면 반론을 하신다, 중간에 생각이 다를 땐 적절히 조절하고 수용하신다. 또, 어떤 사안에 대해 제가 말한 뒤 의문이 있는 경우 다시 한번 물어보고, 오케이 할 때까지 그 과정이 이어진다. 
박 시장님은 지난달 20일 ‘중소기업 직장맘 간담회’에 참석해 여성들이 자녀들의 영유아 시기까지 직장에서 버티다가 결국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많이 그만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분들이 보육 문제로 이렇게 눈물을 흘릴 때까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무엇을 했는지’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이후 지난 6일 ‘우리키움 참여단 출범식’에서 ‘서울시 온마을 돌봄체계 구축 기본계획’을 발표할 때 직장맘들의 절절한 마음이 강력히 반영돼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프레젠테이션 세팅 시 반영했다. 이와 함께 돌봄 자체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하나의 도구로 보는 정책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의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고 말씀드렸고, 금방 캐치하셨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상상캔버스에서 '중소기업 직장맘, 일·생활 균형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직장맘들의 고충과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시 공무원들도 젠더특보의 제안을 수용하나
우선 성 평등과 관련한 시장님의 의지가 강하고, 성 평등 정책을 보좌하기 위해 특보라는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수용하는 입장이다. 해당 부서에서 젠더특보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같이 의논하고, 거꾸로 현업부서에서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사업을 깊이 들여다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면 같이 협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함께 일하는 젠더자문관이 협조 결재 형식으로 검토하는데 현재는 부시장 이상이 결재하는 안전, 복지, 일자리 분야로 제한돼 있다. 이를 문화, 청년, 주택, 도시 공간 사업 등으로 확대해 젠더적인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업기획 단계부터 협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과 조례를 개정하려 한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각 부서에서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 시장이 성 평등 이슈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
박 시장님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부천경찰서 성 고문 사건’에서 변론을 맡았고, 서울시에서도 여성가족정책실 산하에 여성권익담당관과 ‘성 평등 노동팀’을 신설했다. 임금 격차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마련을 담당할 ‘차별조사관’을 두는 등 정책과 조직 행보를 보면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조직 내에서도 여성 승진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고, 그 결과 최근 서울시 5급 이상 여성 관리자는 23.1%로, 3년 연속 전국지자체 중 1위이다. 성 평등 이슈에 대해 앞서가시기도 하고, 깊게 생각하시기도 한다.

-젠더 특보로서 어떻게 자문할 예정인가.
성 평등 정책 결정에 대해 의견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젠더와 관련 없는 사업도 면밀히 검토해 자문하겠다. 일례로 박물관 전시사업도 생활사 부분에서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컨설팅이 가능하다. 
우선 단기간 내에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류하고 있다. 현재까지 추진해왔던 성 평등 정책을 흔들리지 않고, 확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담당자들이 성 평등과 젠더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식하지만, 실제 사업에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막막해하기도 한다. 실제로 젠더 관점이 반영된 정책사례, 필요한 경우 해외 사례도 소개하며 구체적으로 마음에 와닿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작은 실천으로 이룬 성과들에 대해 예를 제시하기도 한다.
 
-성 평등을 위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성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의 파이를 키운다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겠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 우리사회 국내총생산(GDP)이 향상되고 보육정책 발달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 온마을 돌봄체계 같이 지자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돌봄 정책이 필요하다. 
성 평등이 갈등의 요소라기보다 사회 전체 상생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사례로 보여주고 성 인지 감수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지역사회 평생교육원에서도 성 평등과 관련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미투(Me Too)’를 지지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하면, 미투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할지 주민들이 모여 강좌를 듣고 논의를 하는 거다. 이를 통해 해결점 모색하고, 상호이해 기반을 넓힐 수 있다.
각종 지표에서 성차별을 방증하는 지표가 분명히 보이는데, 그걸 부인한들 소모적이고 얻어지는 게 없다. 우리는 ‘논의’를 통해 성 평등 문제를 구조적으로 봐야 한다. 남성집단이나 여성집단의 문제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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