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곤 명예회장 별세)‘말 채찍’ 부친 교육…‘경청·관용·배려’ 리더십 익혀
2019-03-04 19:00:00 2019-03-05 07:49:25
[뉴스토마토 채명석·안창현 기자] 연강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이 살던 집안에는 그가 승마하던 때 쓰던 말채찍이 여럿 남아있었다. 그가 말 채찍을 손에 쥘 때는 말을 탈 때와 함께 또 다른 목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곧 자녀들의 버릇을 고쳐줘야 할 때였다. 그가 자주 말 채찍을 자주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들었을 때 맞는 아들은 채찍의 두려움을 뼈 아프게 느껴야 했다고 한다.
 
이유가 있었다. 용곤·용오·용성·용현·용만·용욱과 딸 용언 등 그의 자녀 6남 1녀중 대부분은 해방 후부터 6.25 동란까지 중학교,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 과정에 있었다. 자녀 교육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됐던 시기였던 것이다.
 
중심을 잡기 위해 연강은 엄격한 교육태도를 전개했다. “재산은 못 물려줄 지언정 교육만은 시키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신이 어떻게 교육을 받아 왔는가 하는 것을 상기하면서 자녀들 교육에도 적용했으며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종아리 매질’이었다. 종아리 매질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맞은 아들은 장남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경동중학(6년제) 상급반 때까지 종아리를 맞았다.
 
박 명예회장은 학교에서 시험답안지를 돌려받으면 반드시 받은 그대로 곧장 시험지를 보여줘야 했다. 틀린 것이 있으면 이유 불문하고 야단을 맞고 종아리를 걷어야만 했다. 중학 1학년 때는 영어와 수학을 매헌으로부터 배웠는데 조금만 서툴러도 머리를 쥐어박았다. 장남이었던 까닭에 더욱 많은 매질을 당했는지 모른다. 상급반이 되면서부터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는 이유로 때때로 종아리를 맞았다.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참고 서 있는 손자를 보며 안쓰러워하던 할아버지 매헌 박승직 창업주가 말리고 나서야 매질이 끝났다. 이처럼 엄격함을 넘어 때론 무서울 정도로 부친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박 명예회장은 장남으로서 두산그룹의 번성과 집안의 평안이라는 두 개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고 살아왔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지난 1995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해 감독·선수, 임원들과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사진/두산그룹
 
박 명예회장 리더십의 근원은 ‘경청’과 ‘관용’, ‘배려’로 요약할 수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뤄낸 재산 덕분에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박 명예회장은 무명옷을 색이 바랠 때까지 입었고 고무신도 닳아서 물이 샐 때까지 신었다. 근검절약을 해야한다는 것과 더불어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을 생각해서였다는 것이다. 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를 다닐 때는 끼니를 제대로 못 잇는 급우들을 위해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을 한 가방씩 들고 등교했다.
 
박 명예회장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생전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된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만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신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자신의 뜻을 짧고 간결하게 전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 때도 그는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경청했고 다 듣고 나서야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한 번 일을 맡기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믿음의 경영’을 실천한 고인에 대해 두산 직원들은 “세간의 평가보다 사람의 진심을 믿었고,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던 ‘침묵의 거인’이셨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큰 어른’이셨다”고 말한다.
 
언젠가 면접 시험장에서 박 명예회장은 입사 지원자에게 부친의 직업을 물었다. ‘목수’라는 답변을 듣고는 “고생하신 분이니 잘해드리라”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그 지원자는 합격해 중견 간부로 성장했으며 그때의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하루는 박 명예회장이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을 했던 것이다. 주차장에서 이 모습을 본 직원의 보고에 사무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일을 한 사람으로 이후 박 명예회장과 40여 년을 함께 했다.
 
박 명예회장은 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2군을 제일 먼저 창단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두산 관계자는 “지난 2008년 4월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아 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었다”고 전했다.
 
채명석·안창현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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