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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뮤지컬 배우 해나…첫 리딩부터 느꼈던 '지킬앤하이드'의 힘
두 번째 뮤지컬서 흥행 대작 히로인으로…조승우·홍광호·박은태와 호흡
"완벽한 공연에 누 끼칠까 부담…내겐 너무 간절했던 작품"
2019-01-31 00:00:00 2019-01-31 07:03:49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지킬앤하이드'를 무대에 올린지 세 달이 됐는데요. 남은 공연 한회 한회가 아까워요. 너무 간절히 원했던 작품인 만큼, 빨리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15년 역사를 지닌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새 히로인이 된 뮤지컬 배우 해나는 요즘 '소중함'과 '조급함'이 교차하는 시기를 건너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공연이 벌써 중반을 향해 달리면서, '이 무대를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갈 때마다 이야기하는 건데, 이렇게 좋은 팀을 만났다는 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 완벽한 공연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은 있죠."
 
뮤지컬 배우 해나. 사진/김영택 기자.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한국 뮤지컬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흥행 대작이다. 인간의 양면성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는 만큼, 타이틀롤을 포함해 모든 배역에게 수준급의 연기와 가창력을 요구한다. 특히 해나가 맡은 캐릭터는 춤과 노래를 자유자재로 소화해야 하는 여자주인공 '루시' 역. 클럽 무용수로 일하며 밤마다 남자들을 쥐락펴락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순애보를 간직한 인물이다. 지킬에게는 사랑을, 하이드에게는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면을 지녔다. 
 
"루시는 양면적인 캐릭터예요. 겉모습만 보면 술집 여자, 거리의 여자라고 할 수 있잖아요. 사실 무언가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인물이라,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하죠. 행동거지가 남자 같고 털털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을 받고 싶은 여자거든요. 술집에서 일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면도 있고요. 연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극의 마지막에 해답을 찾는 사람은 결국 루시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 해나. 사진/김영택 기자.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루시와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매일 무대에 서서 쇼를 선보여야 하는 루시는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과 닮은꼴이다. "루시의 직업이 지금의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죠. 사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항상 가면을 써야 하고, 웃어야 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여리지만 주체적인 면이 있다고 할까요? 그런 점을 보면서 '루시랑 나랑 비슷한데?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이 너무 간절하다 보니 닮으려고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해나의 뮤지컬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7년 '위대한 캣츠비' 이후 두 번째로 캐스팅된 뮤지컬이 마침 누적 관객 120만명을 넘어서는 대작이었던 셈이다. "오디션 사이트에서 공개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뮤지컬을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일하게 좋아했던 노래가 바로 '지킬앤하이드'의 '어 뉴 라이프(A New Life)'였거든요. '내가 이 노래를 무대에서 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밤새도록 생각했죠. 고민 끝에 당장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오디션장에서 조금이라도 튀어보려는 요량으로 직접 의상을 준비해 '신 루시'를 표현했다. 1차부터 4차까지 이어진 오디션 내내 해나가 착용한 망사스타킹과 핫팬츠는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오디션을 봤거든요. 프로듀서님과 감독님께서 '쟤는 단벌 신사야? 옷이 저거밖에 없대?'라며 인상 깊게 봐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지킬앤하이드'의 모든 자료는 다 찾아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을 직접 관람한 적이 없음에도 눈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집요하게 공부했다. "그런 착각이 생길 정도로, 나중에는 제 삶의 일부가 됐어요."
 
뮤지컬 배우 해나. 사진/김영택 기자.
 
쟁쟁한 선배들과 무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신인 배우의 입장에서는 배움의 과정이다. 더욱이 '지킬앤하이드'의 이번 시즌은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아이비, 윤공주 등 화려한 스타 캐스팅으로 이목을 끈 바 있다. 특히 직접 호흡을 맞추는 세 명의 남자주인공에 대한 인상이 남다를 터. 우선 조승우에 대해서는 "진짜 루시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너무 부드러운 지킬이에요. 하이드조차도 무서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아요." 홍광호에 대해서는 "루시를 너무 사랑하지만 본능에 충실한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라고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무서운 지킬과 하이드는 다름 아닌 박은태. "자상하고 매너 있지만 본인만의 확고한 무언가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은태 오빠가 제일 무서워요. 은태 오빠의 지킬도, 하이드도." 
 
'지킬앤하이드'가 그토록 오랜 세월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도 '음악의 힘'이다. "리딩 때부터 '와' 했어요. 이번 리딩에서 유독 선배들이 열창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리딩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아노로만 연주했는데도 엄청난 감동이 있었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가면'이라는 게 모든 사람들한테 있는 거잖아요. 가면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 면이 음악과 더불어 관객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요."
 
뮤지컬 배우 해나. 사진/김영택 기자.
 
그가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넘버는 '섬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다. 특히 '날아올라'라는 가사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이른바 '사이다'같이 속 시원한 기분이 든다고. "'섬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는 부르면 부를수록 행복해져요. 루시가 지킬에게 빠진 순간을 표현하는 곡인데요. '내가 이 사람에게 빠졌다'고 느끼는 그 감정이 너무 행복한 거예요."
 
뮤지컬계에서는 신인 배우로 이름을 알린 해나이지만, 2016년 데뷔한 그룹 '마틸다'의 멤버이기도 하다. '가수 해나'와 '뮤지컬 배우 해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전 같으면 귀여운 곡을 주로 노래했기 때문에 엄청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저희가 발라드 음악을 하고 있거든요. 오히려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졌어요. 요즘은 큰 시너지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롤모델로 생각하는 여성 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 명의 롤모델을 꼽는 게 의미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옥주현과 정선아를 롤모델로 생각했지만, '지킬앤하이드'에 합류하면서 본받고 싶은 선배 배우들이 너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금 (윤)공주 언니, 아이비 언니와 함께 루시 역을 하고 있는데요. 모든 분들의 장점을 다 배우고 싶어요. 저는 밑도 끝도 없이 물어보는 스타일이거든요. '거기서 어떻게 그렇게 (연기) 하셨어요?' 하면서요. 처음에는 저도 낯을 많이 가리는데,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궁금한 걸 못 참고 꼬치꼬치 캐물어요. 조금 힘드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웃음)"
 
뮤지컬 배우 해나. 사진/정초원 기자
 
올해 초에는 '한국뮤지컬어워즈'에 참석해 동료 배우들과 축하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여자신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도 누렸다. 주변에서는 수상하지 못한 것을 격려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너무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사실 저는 레드카펫을 처음 밟아 봤거든요. 축하공연은 유튜브에서만 봤지, 제가 해본 적이 없었잖아요. 신나고 재밌었어요. 제 이름이 붙어있는 좌석에 앉아, 제가 보고 싶었던 공연을 코앞에서 봤죠. 첫 시상식 자리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뮤지컬에 도전하고 싶다는 해나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는 꼭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로 '위키드'의 엘파바와 '아이다'의 암네리스를 꼽았다. '아이다'의 경우 최근 작품의 새 얼굴을 찾는 오디션 공고가 떴다. 올해 선보이는 프로덕션은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버전의 마지막 공연이다. 해나는 "(이 작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지만, 수줍은 미소 너머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마치 작은 무대 위에서도 내면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 루시처럼. 
 
한편,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5월19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배우 홍광호는 오는 3월10일 공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오며, 새 캐스트 민우혁과 전동석이 조승우, 박은태와 함께 공연을 이어간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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