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정유업계가 4년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제유가 급락의 여파로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하면서 정유 3사의 석유사업부문 적자 규모가 1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4년 4분기 나홀로 흑자 기조를 유지했던 현대오일뱅크 역시 6년만에 적자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호조세를 보였던 정유업계는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급락이라는 막판 돌발 변수의 등장으로 영업이익 8조원 달성이라는 대기록 작성을 미루게 됐다.
8일 업계에 따르면 4분기 정유부문에서 SK이노베이션은 최대 4900억원, 에쓰오일은 최대 37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는 지난달 중순까지 추정된 적자 규모가 1700억원대로, 월말 상황까지 감안하면 영업손실 규모가 20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3사의 합산 손실액만 무려 1조원에 달한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 2014년 4분기 1조1285억원 이후 4년 만에 최대치다.
석유사업 부문의 대규모 영업손실로 각사의 4분기 전체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650억원, 에쓰오일 6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GS칼텍스도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며 경쟁사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현대오일뱅크의 분기 적자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2년 2분기 15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낸 이후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지난 2014년 4분기 초유의 상황에서도 나홀로 136억원의 흑자를 거둬 주목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영업손실을 피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3분기 정유 4사의 누적 영업이익은 총 5조7096억원으로, 전체 연간 흑자 규모는 5조원대 초중반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울산 에쓰오일 온산 공장의 야경. 사진/에쓰오일
3분기까지 잘 나가던 정유업계의 실적에 제동이 걸린 것은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급락이 겹친 탓이다. 국내 도입원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지난해 10월 배럴당 84달러에서 지난달 49달러로 급전직하했다. 이에 따라 각 정유사들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고평가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같은 기간 휘발유 판매 가격도 급락했다. 국제 휘발유 가격(옥탄가 95RON)은 지난해 10월 배럴당 87.7달러에서 지난달 60달러로 석달동안 31%나 떨어졌다. 두바이유와 국제 휘발유 가격의 동반 하락으로 제품과 원료 가격의 차이를 의미하는 스프레드도 바닥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배럴당 8.3달러를 기록했던 스프레드는 그해 12월 2.69달러로 내려앉았다. 중동에서 원유를 구매하던 미국이 지난해부터 자국산 원유 생산을 늘리면서 휘발유 공급량도 덩달아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복합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 아래로 추락한 점도 수익성의 발목을 잡았다. 복합정제마진은 원유를 고도화 시설로 가공해 얻는 석유제품의 마진으로, 국내 정유사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로 파악된다. 정제마진은 지난해 10월 배럴당 7달러에서 지난달 3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일각에서 현대오일뱅크의 적자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로 정유업계 중 고도화율이 40%로 가장 높다는 점을 꼽는다. 업계 관계자는 "고도화시설에 투입되는 원료인 벙커C 가격이 원유보다 비쌌지만,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인 휘발유 가격은 미국발 공급과잉의 여파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수익성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작년 4분기의 경우 고도화율이 높은 정유사도 실적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울 만큼 상황이 나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 1분기 역시 고전이 예상된다. 재고 관련 손실은 사라지지만, 미국발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 요인과 비수기 진입에 따른 정제마진 약세로 흑자 전환에 만족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설명이다. 아울러 새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히는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상장이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유업황 부진으로 상장을 하더라도 제 값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4~5월에 도래하는 드라이빙 시즌(석유 소비가 많은 시기)에 진입해야 수요부진과 미국발 공급과잉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을 포함한 국내외 정유사들이 전체 가동률을 얼마나 유지하는지 여부도 수익성 회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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