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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부패통제 뉴거버넌스 통해 청렴 사회로 도약해야”
9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반부패의 날’
한국, WEF 기업경영윤리 순위 137개국 중 90위
2018-12-17 08:00:10 2018-12-17 08:00:10
지난 9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반(反)부패의 날’이었다. 세계 반부패의 날은 유엔이 제안한 부패방지협약에 2003년 12월9일 각국이 서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으며 현재 182개 유엔회원국이 가입돼 있다. 부패방지협약 이외에 OECD, 유엔글로벌콤팩트, 국제투명성기구 등 여러 국제기구에서도 국가 간 부패방지 협약을 체결하는 추세다. 반부패 운동의 내용도 공공영역의 전통적 부패문제 해결에서 민간영역인 기업의 준법·윤리경영이나 국제스포츠기구의 부패문제 해결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뉴거버넌스’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패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업 반부패 경영 협력 포럼 2차 세미나’가 진행됐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한국투명성기구 공동주최로 열렸으며, 국가권익위원회·청년사회민관협의회·공정위원회·금융위원회·법무부 등 여러 부처 담당자가 모여 국내 반부패 현황과 기업의 반부패 경영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한국 청렴수준, 갈 길 멀지만 긍정적 변화도 관측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CPI)에서 54점을 받아 180개국 중 51위에 그쳤다. 부패인식지수란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공무원 및 정치인들에게 부패가 존재하고 있다고 인식되는 정도’에 기초하여 각국의 부패정도를 수치화해 순위로 나타낸 지표를 말한다. 부패인식지수에서 50점은 ‘절대 부패’를 구분 짓는 기준점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에 처음으로 50점을 돌파하였으나 이후 10년이 넘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난 4월 2018년 반부패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 부패인식지수 60점대, 20위권’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병섭 청렴사회민관협의회 의장은 “올해 폴란드가 60점으로 39위, 부탄이 67점으로 29위를 기록했다”며 “안정적인 20위권에 자리잡기 위해 목표점수를 70점으로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부문의 윤리경영 지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격년으로 발표하는 기업경영윤리 순위에서 지난해 우리나라는 137개국 중 90위를 기록했다. 2009년 48위에서 2011년 58위, 2013년 79위, 2015년에는 98위로 세계 100위권에 간신히 턱걸이하였다. 올해는 8계단 상승했으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부문과 관련된 부패인식지수와 비교했을 때 기업의 윤리경영 평가순위가 훨씬 낮은 셈이다.
 
그러나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일 발표한 권익위 부패인식도 조사결과에서는 ‘공직사회가 부패하다’, ‘사회 전반이 부패하다’고 보는 일반 국민의 응답률이 전년보다 각각 11.1%p, 13.4%p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에서 시행한 반부패 정책을 국민의 79.4%가 인지하고 있었으며, 가장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반부패 정책으로 ‘채용비리·갑질·부당출장 지원 등 불공정 행위 대책 마련’(57.9%)이 꼽혔다. 채용비리 대책마련 등 정부의 반부패 정책으로 사회전반에서 청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선 부패에 대한 공무원과 국민의 인식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건리 권익위 부위원장은 해당 조사에서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보는 공무원의 응답률이 7.7%로 일반 국민의 40.9%와 큰 격차를 보인 것을 지적했다. 이 부위원장은 “공무원의 부패 개념이 금품 수수·횡령 등의 전통적 부패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며 “국민이 요구하는 ‘청렴’이란 과거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념으로, 일선 공무원들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패 행위의 특성을 살펴야 통제 가능해
 
부패는 발각될 위험이 비교적 낮은 범죄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합의해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외부의 사정기구가 내부 부패를 인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부고발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이건섭 청렴사회민관협의회 의장은 “조직 내부에서 내부고발자를 배신자로 낙인찍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내부고발자 보호조치·신고보상제도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내변호사회 컴플라이언스 분과 최준우 위원장은 “자본주의 생태계가 확고한 기업에서는 내부에서 부패 통제를 시도하는 구성원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문화가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패 행위의 피해는 조직 내 불특정 다수에게 분산되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자를 찾기 쉽지 않다. 이는 부패의 적발을 어렵게 만든다. 이 의장은 권익위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10점 만점)에서 2002년 최하점을 기록했던 ‘시장형 공기업(4.47점)’이 2016년 최상위권 수준인 8.23점을 받았던 사례를 제시하며, “공기업 유형에서 부패 통제의 빠른 성과가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른 조직 유형과 달리 공기업은 청렴도 조사가 경영평가 및 성과급과 연동됐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부패의 피해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관장뿐 아니라 기관 구성원들도 부패 정보를 자신의 관심과 책임으로 인지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는 ▲청렴도 조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시기를 조정하고 ▲중앙정부 보조금 지급 기준에 청렴도 평가 영역을 확대하는 방식 등이 있을 수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 반부패 경영 협력 포럼 2차 세미나’에서 국내 반부패 현황과 기업의 반부패 경영 관련 정책 사안들이 논의됐다. 사진/KSRN
 
부패 피해 인식 확산을 위해 뉴거버넌스 활용해야
 
부패행위가 발생한 공공기관의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피해를 인식하여 청렴도 개선을 이끌어낸 것은 시사점이 크다. 청렴도 조사가 공공기관 성과급, 선거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면서 부패행위의 감시 구조가 복잡해진 것이다. 기존의 부패 감시 구조가 부패행위자-사정기구로 한정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동료, 기관장, 언론, 전문가, 일반시민, 유권자 등 다각적인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부패 통제에서도 여러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맺어 서비스를 주고받는 ‘뉴거버넌스’ 구축이 중요해진 셈이다. 사정기구 중심의 단독적·전통적인 감시 구조를 넘어 뉴거버넌스를 적극 활용, 부패 피해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부패통제를 위해선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부패 행위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부패 현장을 공개하거나 청렴도 조사를 대중에 주기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의장은 “중앙정부에서 청렴 관련 공시를 의무화해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의 청렴도를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설립돼, 지난달 20일 3차 회의를 개최한 반부패 컨트롤타워 ‘반부패정책협의회’와, 사회 각 분야 대표들이 참여하는 권익위의 ‘청렴사회민관협의회’는 다양한 주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단 점에서 반부패 문제 해결의 긍정적 신호탄으로 꼽을 수 있다. 이건리 권익위 부위원장은 “정부부처·장관뿐 아니라 사회각계의 참여를 통해 다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반부패·청렴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 100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반부패 개혁을 통한 청렴한국 실현’을 내놓았다. ‘OECD 꼴찌’ 수준인 청렴도를 국가적인 리스크로 인식하고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지난 4월 2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문 대통령이 발표한 ‘5개년 반부패 종합계획(2018~2022년)’은 그 청사진이다.
 
종합계획은 ▲함께하는 청렴 ▲깨끗한 공직사회 ▲투명한 경영환경 ▲실천하는 청렴의 4대 주요 전략 하에 추진되어 반부패정책협의회뿐만 아니라 ‘청렴사회민관협의회’를 통해 이행과정을 지속적으로 점검·평가받는다. 청렴사회민관협의회에는 경제계, 언론, 학계, 시민사회 등 사회 각 분야 대표들이 참여한다. 권익위 이건리 부위원장은 “하향식 방식이 아니라, 권익위가 청년사회·민간단체 등과 긴밀하게 협의해 도출한 계획이란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9대 생활적폐 과제’를 선정했다. 취임 이후 문재인 정부의 반부패 정책이 지난 정권의 권력형 적폐청산 작업에 주력했다면, 올해부터는 사회 전반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형 적폐’ 청산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 결과 이달 10일 ‘생활적폐대책협의회’가 구성되어 첫 회의가 열렸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에서는 원사업자-중소 하도급 업체 간 고질적인 불공정행위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발제를 맡은 송상민 공정위 경쟁정책과장은 “원사업자와 중소 하도급 업체 간 갑을관계는 협상력 격차에서 발생한다”며 중소기업 협상력 제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정위는 이를 위해 지난 7월 전속거래 강요행위를 새로운 위법행위의 하나로 신설했다.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하도급업체에게 원가 등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9월에는 가맹본부·임원의 위법행위 등으로 발생한 점주의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가맹계약서에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국회에서 의결됐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는 가맹본부의 정보공개 기재사항에 본부에서 점주에게 구입을 강제하는 품목 등에 관한 정보가 포함된다. 이밖에도 ▲대기업의 1차 협력사에 대한 하도급대금 결제조건 공시 의무화 ▲가맹점주 단체신고제 도입 ▲대리점 본사의 악의적 보복조치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등이 법 개정을 앞두고 있다.
 
청렴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엄격한 법집행 못지않게 기업의 자율적인 법 준수 노력이 중요하다. 기업 내부의 내부준법시스템의 수준을 평가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 CP)’ 등급평가가 좋은 사례다. CP는 자율적인 법 준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기업이 자발적으로 채택해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자율준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공정위에서는 매년 CP 등급을 평가한다.
 
기업이 공정위 산하기관인 공정거래조정원에 등급평가를 신청하면 ▲서류평가 ▲심층면접평가 ▲현장방문평가 과정을 거쳐 공정위가 최종 평가등급을 부여한다. 우수 CP 운영 기업은 공정위 직권조사 면제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 자율준수 문화 확산을 통해 기업의 법 위반을 예방하고 시정조치를 취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2001년 시행된 이후 상당수 기업들이 CP를 도입, 2015년 기준 636개 기업이 CP제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금융위는 회개개혁 통해 외부감사 질 높이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하는 쪽으로, 법무부는 권력형 적폐 사범 범죄수익 환수 및 생활형 적폐 범죄 기준 상향하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잡고 있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실장은 “정부, 국회, 기업, 시민사회의 주체가 모여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조성을 목표로 협의체가 구성되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 반부패 경영 협력 포럼’은 올해 협의내용을 기반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국회와 함께 시작할 예정이다.
 
정윤하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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