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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환경규제, 항공업계에 '된서리'
정유업계, 경유 생산확대 적극적…대형항공사 최대 1600억 유류비 증가
2018-12-07 18:04:02 2018-12-07 18:04:02
[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국제해사기구(IMO)가 오는 2020년부터 선박유에 대한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강화키로 하면서 항공업계도 영향권에 접어들 전망이다. 정유업계가 저유황유 수요 증가에 맞춰 경유 생산에 집중함에 따라 항공 연료인 등유의 생산비율 조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 전문가들은 등유 공급 축소가 가시화될 경우 연간 유류비 부담이 대형항공사는 최대 1600억원, 저비용항공사는 최대 170억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IMO는 2020년 1월1일부터 선박유의 황함량 비율을 기존 3.5%에서 0.5% 이하로 낮추는 규제를 시행한다. 이에 따라 해운사들은 기존 벙커C유 대신 저유황유를 사용하거나 탈황장치인 스크러버를 탑재해야 한다. 액화천연가스(LNG)선을 운영하는 것도 대응 방안 중 하나다. 국내외 대형 선사들은 저유황유 도입과 탈황장치 적용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IMO의 환경규제 강화는 항공업계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업계가 벙커C유를 사실상 퇴출키로 함에 따라 정유업계의 석유제품 포트폴리오에도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저유황유는 크게 ▲기존 선박용 경유(MGO) ▲경유와 벙커C유를 섞은 경유(MDO)▲저유황중유(LSFO)로 나뉜다. 저유황유는 기존 벙커C유보다 가격이 50% 이상 비싸지만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다른 방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이란 게 업계의 대체적 평가다.
 
충남 서산시 현대오일뱅크 대산 공장에 위치한 아스팔텐 제거공정. 이 설비는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늘릴 수 있다. 사진/현대오일뱅크 
 
정유업계는 경유 생산확대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저유황유가 대세로 자리잡으면 경유 수요 급증과 마진 상승이 뒤따른다고 보고,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2020년 경유 생산량이 지금보다 하루 평균 130만톤 늘어야 소비 증가분을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렸다. 정유업계는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로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을 얻어낼 수 있는 고도화설비를 활용하거나, 기존 정제 설비의 제품 생산수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경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유와 끓는점이 같은 등유 생산량은 자연스레 줄게 된다.
 
문제는 항공업계가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 정유업계가 수익성이 좋은 경유 생산을 늘리게 되면 항공유로 쓰이는 등유 생산이 감소하고 연료값 상승의 후폭풍도 뒤따르게 된다. 유류비는 영업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에 달해 항공사의 수익성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 항공유 가격이 지금보다 최소 25%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정유사는 등유값 상승으로 마진이 개선되지만, 항공사는 반대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배세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변동폭이 크지 않다고 가정해도 항공유 가격은 지금보다 배럴당 4달러 이상 오를 것"이라며 "다만 여객 수요가 공급보다 우위에 있으면 항공사가 연료비 부담을 운임에 상당부분 전가시키면서 이익 방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유가가 급변동하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유류비 부담이 각각 연간 1635억원, 892억원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제주항공과 진에어도 부담액이 168억원, 147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유업계도 항공유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선박용 수요가 증가하면 마진이 높은 경유 생산양을 늘려 상대적으로 등유를 뽑아내는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석유제품 생산 플랜트가 한정돼 있어 항공유 생산량을 늘리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항공유 가격의 급등 여부는 결국 세 개의 선택지가 있는 해운사들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현대오일뱅크가 내년 10월부터 고도화설비에서 저유황 선박유를 조기에 생산해 공급한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0년 7월부터 하루 3만8000배럴 규모의 감압 잔사유 탈황 설비(VRDS)를 완공하고 양산에 들어간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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