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입력 : 2018-12-07 06:00:00 수정 : 2018-12-07 06:00:00
누구나 은사라고 여기는 선생님이 한 분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숭실고와 숭의여고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은퇴 후에는 고창으로 낙향하신 이길재 선생님이 내겐 은사님이다. 정작 나는 선생님에게서 학교 수업을 받지 못했다. 그가 근무한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내 주일학교 담임교사였고 대학 때부터는 종로5가의 명문 야학, 연동청소년학교의 동료교사였다. 
 
나는 선생님이 하는 것은 뭐든지 따라하고 싶었다. 원래 존경하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하려고 했고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서려고 했다. 그가 존경하는 분은 나도 따라서 존경했다. 야학에도 고유의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정말 멋진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여행 스타일도 닮아갔다. 하지만 끝끝내 따라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아줌마, 파는 빼주세요!" 선생님은 파를 싫어하셨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마다 선생님은 항상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야 그 모습마저 멋있게 보였지만 식당 안의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을 쳐다보곤 했다. 나는 존경심이 부족했는지 차마 내 음식에서 파를 빼지는 못했다. 파가 있어야 맛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철책에서 실습소대장으로 근무할 때다. 어느 날 대대장이 부르더니 뱀을 먹으라고 했다. 싫다고 했다. 대대장은 뱀이 정력에 얼마나 좋은지 설명을 했고 뱀을 잡아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어야만 진정한 사나이라고 침을 튀기며 강조했다. 나는 끝까지 먹지 않았다. 대대장은 짜증을 냈다. 나도 (속으로!) 짜증이 났다. 
 
자기가 먹기 싫은 것을 먹지 않는 데 핀잔을 주는 것과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이는 것은 둘 다 폭력이다. 선생님이 파를 드시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뱀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이 세상에 피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를 먹지 않는다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든지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지 않는다. 뱀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안보태세가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안 먹냐고? 철학적인 이유는 없다. 그냥 싫다. 
 
파와 뱀은 수준이 다르다. 파는 먹는 사람이 많지만 뱀은 안 먹는 사람이 훨씬 많다. 내가 뱀을 먹지 않는다고 짜증낸 사람은 그 대대장뿐이다. 그 외는 누구도 나를 비웃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파를 먹지 않는다면 사회생활이 꽤 힘들었을 것이다. 이길재 선생님이야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이니 파 정도는 드시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말이다. 
 
남들이 대부분 먹는 것을 먹지 않는 사람도 사회적 소수자다. 소수자가 이 세상에서 온전하게 살아남는 방법은 한 가지다. 자신을 드러내고 뭉치는 것.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오싫모라는 약칭으로 통하는 이 모임은 2017년 3월에 생겼는데 현재 회원이 10만 명이 넘는다. 
 
오싫모 회원들은 다들 몇 번씩은 "다 큰 사람이 왜 오이를 안 먹어? 웬 편식이야!"란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핀잔 받는 게 싫어서,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싫어서 40년 동안 냉면집에 가보지 못했다는 회원도 있다. 김밥집과 초밥집도 마찬가지다. 상사의 눈치가 보여서 억지로 오이를 삼켜야 했던 경험도 있다. 오싫모의 활약으로 이젠 냉면집에 따라서는 오이를 선택사항으로 주문받는 곳도 있다. 오이가 들어간 김밥과 안 들어간 김밥 두 가지를 메뉴로 내놓는 김밥집도 있다. 사회가 이렇게 받아주는 게 정상이다.
 
오이를 먹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이에는 쿠쿠비타신과 에라테린이라는 쓴맛을 내는 물질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7번 염색체에 있는 TAS2R38 유전자가 잘 발현되는 사람은 오이에서 쓴맛을 강하게 느낀다. 쓴 걸 싫어하는 성질 덕분에 우리가 진화과정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런데 오싫모 회원들을 대상으로 오이를 싫어하는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쓴맛과 생김새 때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8퍼센트에 불과했고 나머지 82퍼센트는 냄새 때문에 싫어한다고 응답했다. 오이에는 2,6-노나디엔올이라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다.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알코올 냄새를 향긋하고 시원하게 느끼는데,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알코올 냄새에 불쾌감을 느낀다. 분명히 어느 유전자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급식에서 오이 남긴다고 야단치지 마시라.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다. 이길재 선생님도 파를 안 드시는 게 아니라 못 드셨을 거다. 나는 파도 좋고 오이도 좋다. 뱀만 싫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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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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