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플)"장애·비장애인 통합? 우선 다양성 인정하는 학교환경 만들어야"
"법 만들고 정비하는 것 보다 공적영역에서 장애인 자주 보여주는게 효과적"
"장애인복지법, '권리보장법'으로 바꿔야…개별적 보장방법 마련이 과제"
2018-10-22 06:00:00 2018-10-22 06:00:00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김원영 변호사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만 오갔다.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4년 동안 조사관으로 근무했다. 현재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법학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 지인들과 함께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공연하는 예술단체인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을 만들어 연극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냈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과 법학을 결합해 장애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하도록 하는 화두를 던졌다. 김 변호사를 만나 우리나라 장애인에 대한 법과 제도의 현주소를 물었다. (편집자주)
 
김원영 변호사는 장애인 사회보장에 관한 법들이 개개인 별로 세팅돼 있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구체적인 법률 제정과 함께 실무자들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홍연 기자
 
국가인권위 조사관 시절 인상 깊었던 사건이 있었나. 
 
장애인차별 금지법과 관련해 직접 영화관과 공연장에 가서 좌석에 앉아본 뒤 일상적 경험을 법률적 검토와 결합해 정책 권고를 한 적이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시행령’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관람석 또는 열람석은 출입구 및 피난통로에서 접근하기 쉬운 위치에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좌석이 비상구 앞에 마련돼 있는데 정작 그 자리에서 잘 보이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공연을 관람하는 질적인 삶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안전이라는 가치를 장애인에게 너무 강조한 측면이 있었다. 
 
장애학 연구를 하고 있다. 어떤 학문인가.
 
장애학은 사회복지나 특수학이 아닌 학제 간 접근이다. 장애인들의 복지서비스나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왜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통합되지 않는지 등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을 연구한다. 더 나아가 문화 연구나 철학 검토까지 가능하다. 여성학이 여성복지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 여성을 차별하는 기제를 연구하듯이 이와 비슷한 접근을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학은 초보적인 수준인데, 법학 내부에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접근을 통해 연구하려 한다. 정례적으로 열리는 장애학회 운영위원으로 속해 있으며, <장애란 무엇인가>라는 미국학자가 쓴 일종의 장애학 입문 교과서를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법제도' 현주소는 어떠한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장애인과 관련한 법이 많이 생겼지만, 사회보장에 관한 법들이 개개인별로 정교하게 세팅돼 있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실무자들인 공무원의 관행 등도 규범 체계를 완성하는 데 포함되지만, 집행 관행도 섬세하지 않다.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가 있어도 개개인의 필요보다는 형식적인 틀에 맞춰 잘라내는 경우도 많다.
내년 7월에 폐지되는 장애인등급제도 개별 장애인에 대한 고려 없이 급수별로 일괄적인 서비스가 제공돼 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입법자들이 의도를 가지고 법을 만들어도 많은 부분이 포괄 위임돼 행정부에서는 편리한 방식에 따라 행정입법을 하게 된다.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선 입법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개개인의 욕구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구체적인 법률이 생겨야 하며, 장애인들의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이뤄지는 동시에 실무자들이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에버랜드의 '시각장애인 차별'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차별을 보는 시각이 깊어졌다. 단순히 차별한 의도가 좋았느냐, 나빴느냐를 보는 게 아니라 판사들이 현장검증을 통해 시각장애들과 함께 직접 놀이기구를 탔다. 사법부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관념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장애 유형과 개개인들의 실제 활동 참여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따져봤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보호’와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장애인들을 배제해오지 않았나. 놀이기구가 어떤 장애인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속성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규칙을 정하는 것은 편리하지만, 개개인에게는 엄청난 제한이 된다. 단순히 놀이기구 한번 못 탄 문제가 아니라, 한번 겪고 나면 삶 속에서 그 경험이 계속 따라다니는 게 문제다. 집단의 속성만을 이유로 배제하거나 거부하는 게 차별 아닌가. 
 
장애인 복지 정책이 시혜적 복지에서 '권리보장' 으로 바뀌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일단 우리사회가 시혜적 복지 담론에서는 벗어나고 있다고 본다. 복지서비스 받는 장애인들도 더는 자신들이 국가의 자선을 받고 있다고 생각 하지 않고 '권리'라고 생각한다. 사회보장법이 구체적인 실제법상 권리가 있어 소송을 통해 다툴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일부 승소한 사례가 있다
장애인복지법 자체도 일종의 권리보장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는데, 이건 큰 흐름이고 당연한 일이다. 추상적 원칙은 흐름대로 가고 있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개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잘 보장할 것인가가 어려운 문제다.   
정신·발달 장애인의 문제는 더 어렵다. 예컨대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정신질환 때문에 하루 8시간 근무가 어렵고, 근무 중간에 2시간밖에 쉴 수 없다는 이슈가 제기됐을 때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최근 수능시험에서도 난독증 학생에게 시간을 더 배분하는 게 논란이 됐다. 이런 문제도 당위적으로 보면 글자를 읽는데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게 최적화된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입시나 고용 영역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고 납득을 못한다. 정신·발달 장애인 영역에서도 권리를 주장하면서 개별 쟁점을 돌파하고, 각자가 가진 여러 사정을 정교하게 고려해주는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가 큰 과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군대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다양한 사람들과 접할 수 있는 게 학교다. 학교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미시적으로는 방송처럼 공적인 영역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자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휠체어에만 탔지 허우대가 멀쩡한 연예인의 모습보다는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장애인의 모습도 나오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특정한 법 체계를 만들고 정비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공유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장애인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힘들 때가 많이 있다. 긴 시간 말고 딱 좁혀서 하루를 사수하고, 하루하루 버텨 나가다 보면 상황이 나아지기도 한다. 지금 매일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것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거대하거나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라, 작은 하루를 살아내면서 구체적인 얘기를 주변에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필요했는데 공무원과의 대화 등을 통해 권리를 받게 됐다거나, 힘든 상황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일상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현장에 있는 일선 공무원들도 제한된 여건에서 재량을 충분히 활용해 장애인을 효과적으로 지원했던 사례 등도 공유됐으면 한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8월21일 서울 중구 시청역 승강장에서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지하철타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