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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⑤사회적가치를 담은 후방예측과 '소망하는 2050'
2018-10-01 07:00:00 2018-10-01 07:00:00
30년 뒤의 아젠다가 될 '국가비전2050'을 2018년에 벌써부터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국가비전2050년이 지금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을까. 30년 뒤의 국가비전을 잘 만든다고 해서 현재의 삶이 나아질까. 사회적 위기와 위험이 증가할 때 국가비전은 개인과 공동체 국가 모두에 중요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폭풍 속에 있는 배에 위기가 닥칠수록 분명한 침로가 필요하듯 국정운영에서도 국가비전은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미래연구 방법은 크게 두개다. '전방예측(Forecasting)'은 국내 국책기관의 정책보고서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과거의 자료를 수집·분석해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이를 근거로 장래를 전망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주어진 조건이 현재와 같다면'이란 가정이 선행되고 그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기고, 전방예측과 그에 따른 전망은 무용지물이 된다. 다른 방법은 '후방예측(Backcasting)'이다. 미래의 특정 시점, 예를 들면 2050년에 일어날 상황을 상상한 뒤 거기서부터 2040년→2030년→2020년→2018년으로 거슬러 오는 것이다. 후방예측에서 중요한 것은 '소망성(Desirability)'을 담은 청사진이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예측하는 메가트렌드를 바탕으로 실증적인 미래를 전망한 후 그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를 담아 미래의 청사진을 설계해야 한다. 2050년의 청사진으로 그려진다면 미래에서 현재까지 단계별로 내려오며 그 사회가 앞으로 지날 경로를 예상할 수 있다. 마지막에는 2050년을 위해 오늘날 또는 1~2년 후에는 무엇을 할지 구체적 목표와 전략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국가비전2050은 단순히 미래의 청사진만 아니라 국가장래를 위해 지금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과 연동, 더욱 현실적 중요성을 갖는다.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까지 나타난 반세기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의 경제발전을 이르는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다. 2018년 한국은 2050년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 사진/뉴시스
 
혁신적 포용국가의 비전, 'BL-10, G-5'
 
'소망하는 2050년'은 메가트렌드로 본 2050년의 미래상에 한국이 해결할 도전과제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구성적 미래다. 사회적 가치는 사회정의와 공정, 공공성,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 세대 간 정의, 문화적 다양성, 장기적 시계, 젠더 형평성 등이다. 21세기가 동아시아 시대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원천인 천명정치와 민본주의, 치국평천하, 천하국가 등도 고려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정비전인 '소망하는 2050'에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능동적으로 선도하는 'BL-10, G-5 국가'를 제안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Better Life) 기준 10위권 국가(BL-10)와 글로벌 5대 강국(G-5)을 모두 달성, 혁신적 포용국가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삶의 질 기준은 29위, 세계 경제는 11위다. 'BL-10, G-5 국가' 전략은 다소 낙관성을 품었더라도 충분히 도전할만한 하다. 
 
이것이 기존 국가전략과 다른 첫번째 소망성은 사회적 가치와 사회정책이 경제적 가치와 경제정책보다 우선한다는 점이다. 국가전략을 'BL-10, G-5 국가'와 'G-5, BL-10 국가' 중 무엇으로 할 것이냐는 핵심적인 화두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역대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는 언제나 경제발전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경제발전을 위해 사회정책은 방치되거나 희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미래연구라는 거시사적 시각에서 보면 경제발전 우선주의의 종말은 1997년 외환위기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며 경제발전 우선주의가 정착됐고 김영삼정부는 시장개방과 경쟁력 담론을 최우선시하며 경제자유화를 추진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발전국가 모델은 해체됐다. 하지만 한국은 20년이 넘도록 글로벌 환경에 맞는 새 국가운영 모델을 재정립하지 못했다.
 
1969년 12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대전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 노선이 개통됐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한국, '공동체, 삶의 만족, 일과 삶의 조화' 취약

OECD의 삶의 질 지수는 소득과 주거, 노동,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 안전, 일과 삶의 조화 등 11개 분야에 걸쳐 국가별 유형과 특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삶의 질은 취약한 영역과 양호한 영역이 확연히 구분되는 불가사리 형태다. 주거와 노동, 교육, 시민참여, 안전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소득과 공동체, 환경, 삶의 만족, 일과 삶의 조화 부문에서는 꼴찌에서 못 벗어난다. 특히 공동체 부문은 최악이다. 대표적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와 프랑스 등은 비교적 균형적인 동그라미형에 가깝다.

한국의 상황은 OECD 삶의 질 지수가 만들어질 당시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2008년 국제연합(UN) 총회는 그간 1인당 국민소득 중심의 경제성장 지표가 숱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하며 사회적 가치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다양한 지표들이 개발됐다. OECD 삶의 질 지수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불균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불균형성장론을 기본전략으로 채택했다. 모든 경제영역을 발전시킬 수 없으니 가장 경쟁력 있는 것부터 발전시키고 파급효과를 기대해야 한다는 이 이론에 따라 한국은 경제발전 우선주의를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했다. 이 관점이 50여년간 지속된 결과 지금 한국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불균형이 심각해졌다.
 
사진/뉴스토마토
 
그동안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 가치와 사회정책을 경제적 가치와 경제정책에 우선하는 담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 국가운영 모델을 모색하는 것은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대담한 기획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회정책에 대한 전향적인 결정과 집행이 있어야만 새로운 국가모델이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참여정부 때도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은 동반성장한다는 선순환구조의 담론이 제시됐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선순위를 찾는다면 경제성장이 더 먼저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비전2050'의 기획에서는 국가비전의 우선순위를 'G-5, BL-10 국가'가 아닌 'BL-10, G-5 국가'로 전환, 사회정책의 효과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발상과 접근이 필요하다.
 
'BL-10, G-5' 위한 과제…사회혁신과 갈등 완화

'BL-10, G-5 국가'라는 미래가 설정되면 그간 한국의 국가전략과 글로벌 싱크탱크들이 제시한 국가전략을 연쇄적으로 고려, 구체적 경로를 설정할 수 있다. 2020년은 미국 국가정보위원회의 '글로벌트렌드' 보고서가 언급한 '가까운 미래(Near-term future)'에 해당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기는 사회적 갈등과 긴장이 증가한다. 전통산업이 무너지고 새 산업이 생기면서 기존 일자리들에는 위기가 커진다. 이때 개인과 공동체, 정부는 각자의 위기를 견뎌낼 정신적 지구력과 육체적 근력, 즉 회복탄력성이 필요하다. 한국이 지금 겪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은 1970년대 형성된 중화학공업의 산업구조가 최근 붕괴되면서 고용위기가 어느 때보다 심화됐다. 한국도 2020년 총선까지는 고용위기가 지속될 개연성이 높다. 정부의 역량에 따라 위기는 더 빨리 극복될 수도 있다.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는 2022년에 성과가 극대화되는 것으로 설계됐다. 100대 국정과제가 완수되고 혁신체제가 구축되면 공공기관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공기관 비정규직 폐지, 노후 화력발전소 폐쇄 등과 같은 개혁정책의 입법도 완료된다. 아울러 국정과제 성과에 대한 대국민 공유와 지지를 통해 지속가능한 정치·경제구조와 사회혁신체계를 구축한다는 비전도 갖고 있다. 2030년은 참여정부 때 구상한 '비전2030'을 통해 국가비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한세대 앞을 내다보는 최초의 국가 장기 종합전략이었다고 평가된다. 주요 내용은 성장과 분배가 함께 하는 동반성장을 추진하고 인적자원 고도화와 사회적 자본 확충, 능동적 세계화를 적극 진행한다는 전략이었다. 복지투자는 확대하되 2010년까지는 증세 없이 '비전2030'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미국 뉴욕에 있는 국제연합(UN) 본부. 사진/뉴시스

2035년은 '글로벌트렌트 2035' 보고서를 기초로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글로벌 공동체라는 3개의 층위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기계와 인간의 결합으로 새 일자리들이 생겨나고 글로벌 소프트파워가 증가해 현재보다는 훨씬 나은 삶의 향유할 것이다. 동아시아 측면에서는 한반도 분단이 종식되고 평화가 구축되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할 수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의 문명충돌로 중간지대인 한반도에서 분쟁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공동체 관점에서는 현재 UN이라는 틀을 벗어나 세계정부의 초기형태와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사무국은 4대 강국인 미 중·러·일의 중간인 한국에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전략이 중요해진다. 

후방예측을 통해 2050년에서 2018년까지 거슬러 오면 두 시간은 30년의 시대를 넘어 하나의 미래지도 속에 들어온다. 2018년과 2050년은 서로 대화하고 자극받으며 두 세계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연구와 달리 시간의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미래연구의 흥미로운 점이다. 여기서 가장 큰 메세지는 'G-5, BL-10'이 아닌 'BL-10, G-5'로 순서를 바꾸라는 것이다. 30년 뒤의 아젠다가 될 '국가비전2050'을 지금부터 고민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2018년에 문제해결의 단초를 찾지 않으면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국가전략에서는 현재가 미래고, 미래가 현재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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