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재벌개혁, 다시 생각할 때다
입력 : 2018-08-13 06:00:00 수정 : 2018-08-13 06:00:00
재벌개혁이 시대적 과제인 적이 있었다. 오래된 과제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재벌개혁은 극히 최근까지 시대적 과제였다. 가장 최근 재벌 개혁 필요성을 보여준 사건은 한진 재벌 일가의 갑질이었다. 한진 재벌 일가의 갑질은 노동자, 협력업체, 관계회사, 지역사회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밀수 등 범죄행위도 발각되었다. 아시아나 항공의 갑질도 드러났다. 협력업체 사장의 죽음까지 초래한 무리한 요구는 박삼구 회장의 사과로도 수습되지 않았다. 가족경영을 하면서 자기 딸이니 예쁘게 봐달라는 말도 했다. 최소한의 도덕감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세습재벌의 문제점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재벌의 갑질은 국정농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부터 1년 8개월전 국정농단 사태 때 청문회에 나온 재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2016년 12월 6일부터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손경식 CJ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출석해 증언했다. 이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다.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고 시민들로 하여금 6개월 이상 추운 겨울 거리에서 촛불을 들게 만든 국정농단 사태의 배후에 재벌이 있었다. 재벌은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로 박근혜, 최순실 일당과 함께 국가를 위기에 빠뜨렸다. 재벌은 국정농단 사태의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여기에 더해 세습재벌이 가지는 경영의 위험성, 재벌 성과에 따라 나라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집중된 자본력, 국가 정책을 좌우하고 정치와 여론을 흔들 정도의 사회적 힘은 재벌개혁이 시급한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개혁과제가 시급하면 전문가와 국민들이 그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에 비례하여 정책제안도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수렴, 정리된 재벌개혁방안은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2017년 2월에 발표한 방안일 것이다.
 
국민성장은 문어발식 재벌확장을 억제하고 비재벌부문을 획기적으로 육성하여 2015년 20대 재벌 총자산액이 전기업 자산액의 31%인 것을 2020년까지 20%이하로 낮추는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개혁방안은 규제대상을 65개 기업집단에서 10개 재벌로 한정하여 정책의 집중도를 높이는 것을 전제로 재벌확장 방지를 위해 이명박 정부때 폐지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지주회사 규제 강화, 일감몰아주기 등의 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친인척 계열사와 일반 계열사의 분리 및 차등 관리, 과잉경쟁업종 재벌진입 금지, 금융보험계열사의 의결권 행사 금지, 소액주주권리 확대를 통한 총수 견제장치 마련, 대표소송제 활성화를 통한 견제장치 마련, 재벌범죄의 무관용 원칙 준수, 은행과 산업의 철저분리 등이었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재벌규제와 함께 중소기업, 자영업 육성을 위해서도 각종 정책을 제시했다.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규제, 성과공유제 개선과 이익공유제 도입, 중소기업 협력네트워크 지원, 임차료 인하와 영업권 보호를 위한 임대차보호법 개정,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소상공인 지원센터 기능 강화, 소상공인 협동조합사업 지원, 서민과 소상공인 금융활성화 정책 등이 그것이다.
 
재벌개혁은 재벌규제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재벌개혁은 공정경제의 한 부분으로서 중소기업, 자영업 육성정책에도 크게 의지한다. 한편으로는 문어발 확장과 세습경영, 황제경영을 규제함으로써 재벌이 사회적 약자를 약탈하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 자영업을 육성하여 공정하고 균형잡힌 시장경제를 만드는 것이 재벌개혁, 공정경제개혁의 내용이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재벌개혁 방안은 국정농단 사태에 초점을 맞추어 급박하고도 필요한 개혁과제만을 엄선한 것이었다. 국민성장의 정책이 조금이라도 일찍 시행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해산되었지만 당시 국민성장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정책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재벌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이 자리를 못잡고 경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지금, 재벌개혁이 마치 과거의 일처럼 되고 있는 지금은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재벌개혁방안을 다시 생각할 때이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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