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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LCD 산재 문턱 낮췄다…노동계 '환영' 사업주 '불만'
2018-08-07 16:23:54 2018-08-07 16:37:06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 노동자가 산업재해 신청시 절차를 간소화한 것과 관련해 전자업계는 우려를 나타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향후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에서 발병한 8개 질병에 대해 산재 판정을 간소화하기로 했다. 산재 신청시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같거나 유사한 공정에서 산재로 인정된 사례가 있는지 판단해 결정한다. 8개 질병은 백혈병·다발성경화증·재생불량성빈혈·난소암·뇌종양·악성림프종·유방암·폐암 등이다. 앞서 삼성전자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8개의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했고,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에서 산재가 인정됐다.
 
전력 반도체 생산공정.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뉴시스
 
고용부가 산재 판정의 문턱을 낮추면서 전자업계는 불만과 우려를 나타냈다. 직업병의 업무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유사 사례 여부만 따져 산재로 인정한다는 주장이다. 전자산업이 노동자 건강에 유해한 사업장이라는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는 점도 걱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LCD 업종의 역학조사 결과 직업병과 업무 연관성을 입증할 유해인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직업병의 과학적 근거가 낮은 상황에서 산재로 인정하는 건 타 업종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LCD 업종의 경우 직업병은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법원에서 주로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작업장 유해 요인, 노출 정도 등을 검토하고, 안전보건공단 등 외부기관은 역학조사를 진행한다. 이후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산재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그 결과 사업장의 유해 요인이 직업병을 발병케 했다는 명확한 인과 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한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반면 법원은 산재의 취지를 고려해 상당한 인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산재로 인정했다. 고용부가 산재 판정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한 8개 질병 중 7개가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됐다. 반도체·LCD 사업장의 경우 교대근무로 면역력이 떨어졌고,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는 게 산재 인정의 근거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산재로 인정되지 않은 질병까지 산재로 인정했다"고 말했다.
 
산재 입증이 쉬워지면서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행정소송도 늘 수 있다. 산재 판정의 경우 근무기간, 잠복기도 고려 대상이다. 개인마다 체질과 업무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잠복기를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렵다. 퇴직 후 직업병이 발병한 경우 잠복기를 몇 년으로 정할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삼성전자와 직업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은 보상 대상을 정할 때 근무기간을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고용부의 이번 결정을 둘러싼 업계의 우려에도 노동계는 환영했다. 그간 산재 입증 책임이 사업주가 아닌 노동자와 유가족에게 있었던 탓에 산재 인정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사업주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유해 요인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방법도 없었다. 사고성 산재는 입증이 비교적 쉽지만, 직업병은 입증이 어렵다. 노동계는 나아가 산재가 사회보험인 만큼 '선보상 후입증'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선 신청자가 치료와 요양을 받도록 하고, 사업주가 업무 연관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경우, 업무 중 재해에 대해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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