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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공작’, 거짓 같은 사실 속 진짜 이야기
1993년 ‘흑금성’ 사건, 최초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DJ정권 탄생 직전 벌어진 ‘총풍 사건’ 남북 뒷거래
2018-08-01 16:24:31 2018-08-01 16:24:3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군 정보사 출신 장교였다. 하지만 도박에 빠져 강제 전역을 당했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장사꾼이 됐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수입해 팔았다. 한 마디로 뼛속까지 잇속만을 위해 움직이는 장사꾼이 된 것이다. 어느 날 북한 내 고위층과 줄이 닿았다. 북한으로 물건을 빼돌리고 중계로 인해 막대한 수익을 얻을 기회를 맞이했다. 급기야 북한에 들어갈 기회까지 잡았다. 당시 북한 최고 권력자와 독대할 기회까지 잡았다. 이 남자, 수완 하나만큼은 신도 울릴 능력자다. 이름 박석영, 정체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포섭된 북파 공작원. 암호명 ‘흑금성’. 앞선 모든 설명은 안기부에 의해 조작된 가짜다. 영화 ‘공작’에 대한 얘기다. 무엇보다 경악할 사실은 이 모든 내용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이른바 ‘흑금성’ 사건, 대한민국 현대사를 발칵 뒤집어 놨던 실화다.
 
 
 
사실 이 모든 내용은 실화이면서 실화는 아니다. 영화적 각색과 창작이 더해졌지만 그럼에도 사실이 아닌 사실이다. 실존 인물 ‘흑금성’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얘기가 사실에 가까운 사실임을 알고 있다. 영화 ‘공작’에는 1993년 북핵 위기와 DJ정권 탄생 이전 이른바 ‘총풍사건’ 등 시대를 뒷걸음치게 했던 우리 역사의 패악 정치의 민 낯과 이면이 고스란히 조명된다. 물론 최근 상업 영화 시장의 트랜드로 주목 받고 있는 고발 형식의 사회 조명 시스템을 바라 본 얘기는 아니다. ‘공작’은 엄연히 그리고 완벽하게 스파이 스릴러 장르에 충실한 영상 문법을 따른다. 기존 디지털 시대의 액션 스파이 장르가 아닌 아날로그적 스파이 장르로 풀어냈다. 총 소리 한 번 나지 않는 러닝타임은 지루할 여지를 남겨둘 것 같지만 의외로 긴장감이 압권이다. 언제 총 소리가 날지 모르는 가능성을 이어간다. 총소리(위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주인공 박석영과 관객 모두에게 해당한다. ‘공작’은 한국 영화 사상 전례 없던 문법을 취한다. 그 지점이 오히려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냈다.
 
1993년 북핵 위기로 한반도에는 전쟁 위기가 조성된다. 안기부 해외공작팀 최실장(조진웅)은 군 정보사 출신 소령 박석영(황정민)을 포섭해 북한 내 핵무기 존재 여부를 확인케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신분 세탁 과정에 들어간다. 평소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먹고, 근처에도 가지 않던 도박에 빠지는 박석영이다. 그는 그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전직 군인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장사꾼이 된다.
 
영화 '공작'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중국을 오가며 북한 잠입의 실마리를 찾던 박석영은 북한 내 고위층이자 해외 자금줄 리명운(이성민)을 포착한다. 박석영은 안기부의 정보 공작 그리고 중국 내 정보원들의 도움으로 리명운과의 관계를 잇는다. 하지만 리명운의 지근거리에 북한 보위부(안기부와 같은 성격) 소속 정무택 과장(주지훈)이 버티고 있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 겸 북한 체재 옹호론자다. 그는 박석영의 진위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정무택의 감시를 피해 그리고 리명운의 환심을 타고 박석영은 북한 잠입에 성공한다. 이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다. 이제 그는 북한의 외화 벌이와 김씨 일가의 정권 유지 자금의 원천인 외화 벌이의 일환으로 남한 기업의 북한 내 광고 촬영 사업을 제안한다. 광고 촬영을 빌미로 북한 내 핵 시설 정보 취합을 위해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암초가 나타났다. 남한 내 대선에서 친북 성향의 김대중 후보가 보수 성향의 이회창 후보를 앞서며 정권 교체 가능성이 제기됐다. 북 핵 위기설이 문제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안기부는 존폐 위기에 몰렸다. 남북 대치 상황을 정권 유지의 기반으로 이끌어 가던 보수주의 패악 정치 세력의 계산기가 빠르게 셈을 한다.
 
영화 '공작'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박석영은 안기부와 정권 그리고 북한 권력층의 뒷거래를 감지한다. 이건 국가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공작원 ‘흑금성’ 박석영에게도 예상 밖의 변수다. 안기부 최실장의 다른 명령이 전달된다. 도대체 박석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역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셈을 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 공작원으로 일한 박석영이다. 또한 같은 시간 동안 이윤에 따라 이념조차 넘나들던 장사꾼으로 살아오기도 했던 박석영이다. 그는 남과 북의 정보전 그리고 뒷거래를 통해 발생할 이익과 자신에게 돌아온 불이익 그리고 예상 밖의 변수를 계산한다. 셈을 끝낸 그는 결정을 한다. 어떤 생각으로 박석영은 이 거대한 판을 다시 짤 생각 일까.
 
‘공작’은 기존 냉전 체재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 장르의 풀이법과는 조금 다른 지점으로 관객들을 끌고 간다. 주인공의 정체성 혼란, ‘미션’ 수행에 따른 과정과 결과 그리고 사건에 대한 전개와 해결, 여기에 생존에 대한 목적성은 흐릿하게 색을 지워나간다. 반면 남북의 경색된 대치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는 뒷배에 시선을 돌린다. 서로의 정권 유지 차원에서 긴장감 조성을 위한 거래의 이면과 민 낯은 실체와 루머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경악스럽다. 앞서 언급됐고 실제 DJ정권 탄생 직전 한반도에 발발된 ‘총풍 사건’은 패악의 시절이 만들어 낸 추악한 민 낯이자 숨기고 싶은 과거다. 박석영 스스로도 진실과 거짓의 괴리감에 따른 혼란이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리명운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전향을 권하는 이면의 모습은 그 괴리감을 인정하기 힘든 속내와 신념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거부감일 것이다.
 
영화 '공작'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황량하고 차가운 평양의 회색 빛은 그래서 박석영의 정체성으로 이어질 위기감으로 내포되기도 했었다. 회색의 도시 속 회색 빛 공작원의 정체성. 하지만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은 단순한 암투 속에 담긴 비밀과 뒷거래의 추악스러움으로 ‘공작’을 마무리 짓지는 않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모를 이 거짓 같은 진짜의 얘기 속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마지막을 짚었다. 아직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과연 이유가 있는 것인가라고. 개봉은 오는 8일.
 
영화 '공작'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P.S 1)2005년 북한의 조명애, 남한의 이효리가 함께 만나 찍은 ‘애니콜’ 광고의 뒷얘기가 등장한다. 이 시절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놀랍고 반갑다. 뒷얘기가 사실일지 아닐지에 대해선 영화적 해법으로 남기겠다.
 
P.S 2)영화에는 실제 김정일 위원장과 ‘흑금성’ 박석영 그리고 리명운이 만나는 장면도 나온다. 당시 김 위원장과의 만남 장면 묘사는 윤 감독이 실제 ‘흑금성’ 박모씨 가족을 통해 박씨에게서 전해 들은 장면을 창작과 팩트를 적절히 섞어 묘사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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