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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채원 한투밸류운용 대표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투자 찾아 '가치투자' 길로"
국내 가치투자 1세대…벤저민 그레이엄 '현명한 투자자' 읽고 충격
취미는 '주식', 운전도 골프도 못해…"쌀때 사서 적정할 때 판다"
2018-05-23 08:00:00 2018-05-23 08:00:00
[뉴스토마토 이정하 기자]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린다. 1998년 최초로 가치투자 펀드를 국내에 선보인이래 지금까지도 가치투자라는 외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번역본을 읽어 한동안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그는 회사의 유일한 철학을 '가치투자'로 삼고 있다. 
 
가치투자 만을 고집하다보니, 모멘텀 투자의 시기에는 존립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과거 한 차례 가치투자 펀드를 접은 이력이 있기도 했다. 되돌아보니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안정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6년만에 운용업계로 돌아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운전도 골프도 배우지 못했다. 운용업계서 알아주는 워크홀릭이다. 머리가 아플 때, 무협지를 꺼내 읽기도 하지만 가장 큰 취미는 '주식'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지 위해 늘 노력하는 편이다. 아내의 말을 귀 기울려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믿고 실천한다. 유일한 재테크는 돈이 생길 때마다 회사에 펀드에 넣는 것. 가치투자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투자원칙을 유지해 나갈 생각이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사진/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가치투자 대가'라는 수식어, 어떻게 생각하나.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제가 운용하던 펀드가 40%의 손실이 났지만, 코스피지수(-60%) 대비해서는 오히려 20% 추가 수익을 내면서 사내 수익률 1등을 기록한 적이 있다. 당황스러웠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40% 손실이 난 상황인데도 말이다. 스스로 '뭔가 잘 못 됐다'고 느낄 때 쯤 만난 책이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였다. 당시는 이 책이 번역본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때다.
 
책은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었다. 첫째, '돈을 잃지 말 것' 그리고 둘째, '위의 원칙을 절대로 잊지 말 것'. 결국 돈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가치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이것이다. 책을 읽은 뒤 한동안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가슴으로 와 닿았고, 이를 계기로 인생의 투자 철학이 바뀌게 됐다. 스스로 성향 자체가 돈을 잃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이 책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동원증권 당시 미국식 '가치투자 전문펀드'를 만들자고 회사에 건의했고 이후 국내서 처음으로 가치투자 개념을 적용한 '동원밸류 이채원펀드'를 출시할 수 있었다. 국내서 처음으로 '가치투자'라는 용어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이채원 펀드'는 잘 운용됐나.
 
지금은 펀드매니저의 이름을 넣는 펀드가 없어졌지만, 당시는 그게 인기였다. 1998년 12월 론칭 이후 9개월까지 127%의 누적수익률을 내며 잘 운용됐으나 이듬해 하반기 닷컴버블이 오면서 기술주가 떴다. 가치투자를 운용하는 우리 펀드에는 담을 수 없는 종목이었다. 코스피가 날아가는데, 우리 펀드는 그렇지 못했다. 인생에 가장 큰 힘든 시기였다. 2000년에 손을 들고 다시 운용사에서 증권사로 옮겨갔다. 되돌아보니 그 시기만 잘 버텼으면 괜찮았을 것 같다. 가치투자는 장기투자가 수반돼야 한다.
 
이후 증권사에서 고유계정을 운용하면 매년 40%씩 수익을 냈으나, 계속 이렇게 운용하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건의해 2006년 재도전을 위해 설립된 곳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다. 팀 전체가 스핀오프(회사 분할)했고, 여기서 처음으로 내놓은 펀드가 '10년투자펀드'다.
 
-가치투자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가치주라는 용어가 쉬운 말은 아니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가치주냐 아니냐'는 여전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가치의 3요소는 ▲수익성 ▲안정성 ▲성장성이다. 이 3요소대비 저평가돼 있으면 가치주다. 성장주도 낮은 가격에 샀다면 가치주다. 아마존 주식을 20년 전에 싸게 샀다면 지금 100배 올랐을 때 팔면 된다. 그러나 지금 아마존을 사는 것은 모멘텀 투자에 가깝다고 본다. 오를 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가치투자는 시황과 무관하게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주식이 싸면 사고, 비싸면 파는 것이다. 가격과 가치의 괴리를 취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의 내재가치를 계산해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차이가 벌어지면, 살거나 팔 건지 전략을 취하면 된다.
 
특히 단기적 실적악화, 중소형주라는 점에서, 인기가 없어서, 트렌드가 안 맞아서, 대중의 편견, 무관심, 오해 등 이런 요소에 의해 쌀 때가 있다. 이럴 때 사서, 제 값을 찾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헐값에 사서 제 값에 판다'가 가치투자의 핵심이다. 싸다는 의미는 PER(주가수익률)과 PBR(주가 순자산 비율)을 지표로 삼아보고 있다. 미래가치인 성장성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익성과 안정성에 더 집중한다. 
 
-하반기 시장전망 어떻게 보나.
 
본격적인 대세상승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세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있지만, 시간이 2~3년 혹은 그 이상, 꽤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장에 돈이 많이 풀러 있다. 그 돈이 건전한 실물경제로 갈 수도 있지만, 부동산 등 투가자본으로 간 경우도 많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이런 측면에서 '잘된 결정'이라고 본다. 우리 회사는 '낙관적이다', '비관적이다' 이런 뷰를 갖고 있지 않는다. 모멘텀 투자를 지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주식은 채권보다 리스크가 높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수익률을 내줘야한다. 국내 시장에는 대형주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작년 3분기부터 실적 둔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하반기에 정부가 3000억원 이상 벌어들이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을 올리겠다는 기조이기도 하다. 차입금은 없고 현금이 많은 기업이 가치주가 될 것이다. 철근, 시멘트, 사료 등의 기업들이 PER이 낮다는 점에서 가치주의 영역으로 들어올 것이다.
 
-취미가 있나.
 
'주식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수없이 많이 듣고 살았다. 운전도 못하고, 골프도 못 친다. 주식이 취미라면 취미다. 그 외에 가끔 무협지 읽는 정도다. 별 다른 취미가 없다. 일상생활에 관심을 갖고 시대의 흐름을 읽으려한다. 아내 얘기도 잘 듣는다. '마트에서 무엇이 잘 팔리는 지' 그런 얘기다. 과거 이프로 음료가 히트 칠 때 롯데칠성을 싸게 사서 적절할 때 팔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생활습관 덕분이었다. 최근에는 4차산업혁명 관련해 변화가 기대되지만, 국내에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많지는 않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해외펀드 출시 계획은 없나.
 
확정은 아니지만 고민 중에 있다. 내년쯤이나 아시아지역의 주식에 투자하는 가치펀드를 론칭해볼까 하는 생각은 있다. 아시아지역이 지리적으로나 언어(한자)적 및 관습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아는 쪽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치투자 관련 상품 라인업을 하는 게 맞다는 점에서 검토 중이나 확정은 아니다. 일단은 가장 잘 아는 곳인 국내에 집중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재테크 어떻게 하나.
 
살고 있는 집 하나가 전부다. 투자 목적은 아니다. 그 외에 모든 자금은 우리 펀드에 넣고 있다. 유일한 재테크 수단이다. 가치투자를 믿고 스스로 실천한다. 우리 펀드가 잘못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나'다.
 
-향후 목표가 있다면.
 
대박보다는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가장 기본 철학은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라는 가치투자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투자하려 한다. 10년 이상의 투자 뷰를 갖고 있는 투자자와 함께 가고자 한다. 정말 긴 안목일 수 있으나 시장 금리를 이길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 사내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치투자가 문화나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살아 있는 공기처럼 느끼고 호흡하는 것과 같이 가치투자가 생활화 될 수 있도록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채원 대표 약력 ▲중앙대 경영학과 ▲동원증권 입사 ▲동원투자신탁운용 자문운용실 실장 ▲동원증권 자산운용실 상무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 본부장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이채원 대표가 IMF 직후 시장에 출시했던 가치투자 펀드를 소개하는 광고 전단지. 사진/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이정하 기자 l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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