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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보편화 이어 건축사 양성 힘쓸 것"
(사회적기업가를말하다)장남경 한옥협동조합 대표
한옥 도면 만들며 한옥건축 본격 시작…기술자 모임으로 한옥협동조합 설립
"초기엔 '족보 없다' 비판 받아…사회적가치·사업성 동시 노릴 것"
2018-04-30 06:00:00 2018-04-30 06:00:00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한옥 시장은 국내 건축산업에서 0.1%에 불과할 만큼 규모가 작다. 한옥은 비싸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일반인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매년 20% 내외로 규모가 늘어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자체가 한옥 신축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건축업체들도 규격화에 앞장선 데 따른 것이다.
 
장남경 한옥협동조합 대표는 업계 내에서 한옥 규격화를 통해 한옥 보급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 건축기사로 활동하다가 한옥 분야로 돌아선 장 대표는 사업 초반엔 업계 내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한옥협동조합을 정착시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지난주 장 대표를 만나 한옥협동조합 설립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한옥협동조합을 만든 계기는.
 
건축기사로 일하던 중에 2000년대 초반 한옥이 포함된 현장을 만났다. 이후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문화재 일을 주로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한옥을 만드는 방식은 도면 없이 목수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놓고 지시하는 식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술이 개인에서 개인으로 전승되기 때문에 목수를 포함해 창호, 구들, 와공, 미장, 도배 등 각 부분의 기술자들이 일하는 방식도 각자 달랐다. 사정 때문에 사람이 바뀌면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등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도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건축설계(CAD) 기법은 벽에 자재를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돼 있는 반면 한옥은 부재를 서로 얽거나 짜맞춰 조립하는 결구가 기본이어서 건축CAD로는 한옥 도면을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일반 기계CAD에서 구현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한옥건축을 하는 목수와 건축사, 기계CAD 기술자를 한 팀으로 만들었다. 목수의 머리에 있는 내용을 건축학적으로 분석해 기계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쳐서 도면을 만들어냈다.
 
도면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한옥일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만해도 한옥이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이어서 문화재일을 많이 맡았다. 지방 현장이 많았는데 그 지역의 기술자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기술자들을 다 데려갈 수는 없기 때문에 지방에서 찾아야 하는데 기술자 수가 많지도 않고 지역에 대해서도 잘 모르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을 모아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거리가 절실했고, 문화재 면허를 받을 수 있는 자본금과 기술능력 등을 충분히 확보해 문화재청으로부터 시공면허를 받아서 지금에 이르렀다.
 
장남경 한옥협동조합 대표는 "기술자들의 조직체로 협동조합 형태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진/강명연 기자
 
한옥 시장 상황은 어떤지.
 
지금은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한옥마을 조성에 나서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졌다. 당시만 해도 한옥은 특수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이었다. 지방에는 남아있는 한옥이 거의 없었고 서울 북촌에만 일부 남아있는 정도였다. 유지보수 시장만으로는 성장이 힘든 상황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방에서 뜻 있는 사람들이 한옥 부흥을 위해 지원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한국만의 정체성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유산이기 때문이다. 전라남도에서 행복마을이라는 이름으로 10~20세대의 한옥마을을 만들면 지원해주는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당시 한 채에 8000만원 가량을 지원해 집값의 3분의2를 보조받을 수 있었고, 이후 한옥마을 붐이 일었다. 이후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해서 점점 시장이 커졌다.
 
현재는 서울시 지원액이 최대 1억8000만원으로 가장 크다. 서울의 집값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단위 자체가 커졌다.
 
지원규모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어디까지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아무래도 생활 편의성을 위해 현대 건축방식이 많이 적용되고 있는데, 전통을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지원의 의미가 반감된다는 문제가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법인 형태를 선택한 이유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협동조합이 제일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술자들은 개별적으로 각자 고유의 영역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분야별로 모임을 만들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본부와 직원들이 역할분담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옥을 규격화시키면 지역 특색이나 전통이 사라질 우려는 없나.
 
기계화시키고 도면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전통방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한옥 기술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족보가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봤을 때 도편수가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건 지금 시대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도면을 만들어 공개한 결과 이제는 일반화가 됐다.
 
지역 특색이나 양반집과 평민들 집의 차이가 있는데 물론 그런 전통을 살릴 필요도 있다. 하지만 좁은 한반도에서 평균치를 만들어 보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평균 치수를 조사해 통일시켰다. 이후 여러사람들이 이를 벤치마킹하는 데 이르렀다.
 
한옥은 생활한옥과 전통한옥으로 나뉜다. 전통한옥은 곡재를 써서 나무의 맛을 살리는 등 기존 방식을 지켜나가는 반면 생활한옥은 기계를 사용해 좀 더 현대생활에 맞추는 퓨전한옥을 의미한다. 한옥 보급화를 위해서는 퓨전한옥을 널리 퍼뜨릴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한동안 퓨전한옥에 집중해왔다. 지금은 어느정도 보편화가 됐기 때문에 문화재를 다루는 관점에서 전통한옥을 기반으로 퀄리티를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지금부터 한옥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경우 퓨전한옥에만 치우치면 전통한옥을 알지 못하게 되는 문제도 있다. 전통한옥에서 응용하는 수준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일정 수준을 벗어나버리면 한옥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서 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여러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의견충돌이 간혹 생긴다. 돈이 결부된 일이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협동조합 차원에서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할 때도 있어 이를 조율해나가는 게 힘들다. 기술자들마다 많이 받기를 원하는데 모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주로 협동조합에서 주도해서 결정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조합원 간의 갈등이 커지지 않고 화합을 이뤄낼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조직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시기에는 크게 불만이 없는 것 같다.
 
2015년 한옥협동조합이 서울시 북촌 개방의 날(종로구청 사회적경제 장터 참여) 한옥 모형 조립 체험 부스를 연 모습. 사진/문화재청
 
사회적 기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 계획인가.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법인을 운영하다보니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추구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전통문화 보급, 발전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판단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겠다고 선언해 지난해 서울시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한옥 보급과 활성화까지 생각했는데 이후 사회적기업들 간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어떤 일을 할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판단해 18곳의 문화재청 소속 사회적 기업들의 협의회를 만들었다. 전통주, 택견, 한옥민박업, 발굴업체, 고싸움보존업체 등 다양한 사회적기업들이 모여 대학생들에게 인턴 기회를 주고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에 접근할 기회를 주고 있다.
 
젊은이들이 현장을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선배들 모습이 화려하지 않고 일은 힘들기 때문에 빨리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기업이 전통문화 보급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서 조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직원들이 흔들림 없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회사도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이런 쪽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직률도 거의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옥 부흥을 위해서는 기술자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젊은 인력이 없고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 일당이 30만원이 넘는 경우도 많다. 인건비 부담은 건축비 증가로 이어져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사람을 길러내고자 한다. 일반 건축에서 건축기사 역할을 하는 한옥건축사가 많이 필요하다. 이들은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통건축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강원도 원주에 부지 7000평, 연건평 700평을 확보해 올해 안에 문을 연다. 한옥학교 외에도 자재백화점, 목수 100명이 동시에 일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려고 한다. 목수 개개인은 영세하기 때문에 자재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3년 뒤에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데 꿈을 이룰 수 있게 돼 기쁘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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