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발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위험)가 고조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제유가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폐기할 의사를 밝히면서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유 공급 차질이 빚어지고, 나아가 오는 6월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의 감산 논의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미국이 이란과 베네수엘라 제재에 나서면 올해 말 세계 석유공급량이 하루당 140만배럴가량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 리서치 조사업체 헷지아이는 미국이 이란을 제재하면 하루당 100만배럴 정도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고,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이란 핵 협상에 참여했던 리처드 네퓨 전 국무부 관리는 현재보다 40만~50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이란의 하루당 원유 생산량은 383만배럴로, 핵협정이 발효했던 지난 2016년 1월(하루 291만배럴)보다 32% 정도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하루당 원유생산량이 올해 12만배럴, 내년 10만배럴로 매년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이란은 OPEC 3위 산유국으로, 원유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면 유가가 또다시 들썩일 수 있다.
중동 내 라이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국제유가를 두고 팽팽한 이견을 보이는 점도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사우디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가 성공하려면 유가가 적어도 배럴당 70달러대를 찍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란은 배럴당 60달러대를 원하고 있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이 셰일가스·오일 생산을 늘려 유가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보고 있어서다. 최근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핵보유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란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배경도 이란이 '감산 대신 증산'으로 기조를 바꾼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이란이 최근 감산으로 유가를 올리지 말고, 증산하자는 뜻을 내비치며 아람코 IPO에 신경에 곤두서 있는 사우디를 자극했다"며 "이란 핵협상이 파기되면 유가는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로 강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이란 핵협정 파기를 빌미로 OPEC과 감산 합의를 없던 일로 하고, 독자 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중동이 얽히고설켜 예측 불허의 상황이 전개될 조짐을 보이자 국내 정유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계는 원유 도입량의 80%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S-Oil을 제외한 정유 3사는 최근 미국산 셰일가스 생산량 증대로 거래선이 다변화하고 있지만, 주로 스팟(단기)거래로 들여온다. 아직까지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가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중동산을 선호하고 있다.
전문가와 정유업계는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미국이 셰일생산량을 늘리고, 유가가 다시 하락하는 흐름이 지난 2014년 이후 반복적으로 나타난 점에 주목한다.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하더라도, 셰일 증산 효과로 상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중동 리스크가 부각되면 생산량이 줄어 국제 석유시장의 수급에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은 셰일이 있어 상대적으로 생산여력이나 재고부족 우려가 덜하다"며 "다만 미국이 핵협상을 파기할 지, 제재 수준을 높일 지를 가늠하기 힘든 만큼 결론이 나는 5월까지는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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