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단독)조종사 2명 중 1명꼴 수면무호흡증…정부, 피로실태 조사하고도 '비공개'
국토부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FRMS) 연구보고서' 입수
조종사 피로데이터 광범위 조사…세금 투입하고도 '배포금지'
2018-03-12 06:00:00 2018-03-12 07:39:29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국토교통부가 조종사의 피로관리 제도(FRMS)를 도입하기 위해 국내·외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했지만, 업계 관계자들만 돌려보고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보고서에는 국내 조종사 2명 중 1명이 수면무호흡증을 앓고 있다는 검사 결과가 담겼다. 조종사의 건강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국민은 지난 15개월 동안 이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비행기를 탑승했다. 지난해 한해 동안만 해도 국내 공항에서 항공기를 이용한 승객은 1억936만명에 달한다. 
 
국토부가 지난 2016년12월 작성하고도 공개하지 않은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 구축 연구용역' 보고서. 이미지제작/뉴스토마토
 
11일 <뉴스토마토>는 국토부의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FRMS) 구축 연구용역'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보고서는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 12월 완성됐다. 국토부는 같은해 12월28일 오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회의실에서 국내 8개 항공사와 업계 관계자를 초청해 보고서 발표회를 진행했다. 보고서 내용은 이후 보도자료 등을 통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본지는 300여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실태조사는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450일 동안 진행됐다. 교통안전공단과 한국항공정책연구소 컨소시엄이 연구를 맡았다. 총 2억6000만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갔다. FRMS 제도 도입을 위해 국내·외 항공승무원의 근무형태, 최대 비행시간 등이 조사됐다. 국내 항공사 소속 조종사 5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수면다원검사가 진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외를 대상으로 정부의 광범위한 실태조사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면다원검사 결과 조종사 52%는 수면무호흡증을 앓았다. 이중 19%는 무호흡지수가 시간당 30회 이상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시간당 15회 이상 30회 미만으로 무호흡 증상을 보인 조종사 비율은 33.3%에 달했다. 사후 검증결과 로스앤젤레스(31.1회) 노선이 런던(13.8회) 노선에 비해 무호흡지수가 2배 이상 높아 유의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비행시간이 길고, 17시간의 시차가 나는 LA노선 조종사의 무호흡지수가 높은 것이다.
 
 
수면무호흡증은 수면 중 호흡이 간헐적으로 중단돼 수면 중 자주 깨게 된다. 주간졸림증을 유발하고, 수면 중 저산소증 상태가 돼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2회 내지 7회 가량 무호흡을 보일 경우 환자는 혈중알콜농도 0.05~0.08/dL에 해당돼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항공승무원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18분으로 성인의 권장수면시간인 7시간에 못 미친다. 
 
보고서는 "이번 연구에서 혈중산소포화도가 최대 82%로 저하된 경우가 관찰됐다"며 "이 질환은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고 설명했다. 조종사를 비롯한 항공승무원의 피로도가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최대 비행시간이 주요국들보다 길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호주 등은 비행출발시각, 기내 휴게시설, 시차 등을 고려해 비행시간을 단축한다. 그런데 국내는 이 같은 규정들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대 비행시간을 13시간(조종사 2명)에서 최대 20시간(조종사 4명)까지 두고 있다. 반면 주요국은 최대 17시간(조종사 4명)인데다, 근무여건과 운항상황에 따라 단축된다. 운항업무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운항 중 각성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자칫 운항 중 졸거나, 응급상황을 제때 대처하지 못할 경우 대형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조종사와 승무원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국토부는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이 연구를 진행했다. 보고서는 국내 조종사의 피로데이터를 수집했고,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개선안을 마련했다. 국내도 조종사와 승무원의 피로 경감을 위해 FRMS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조종사의 휴게시간을 현행 8시간에서 11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 8일도 국내 항공사와 조종사협회 관계자를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 개선안에 대해 항공업계의 반발도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FRMS 제도는 2019년 추진하기로 방침이 정해진 상태이다. 
 
조종사 노조 관계자는 "개선안은 항공안전법 시행령에 들어 있어 국토부 장관이 도장만 찍으면 되는 문제"라며 "회사는 노선을 새로 편성하고, 조종사를 추가로 뽑아 돈이 더 들어간다고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16년 연구용역은 1차로 시행한 것이고 이달 중으로 2차 연구용역에 다시 들어간다"며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발표가 안된 것일뿐 조종사들의 피로도를 줄일 여러 방안을 계속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차 용역 결과에 따라 개선할 사안도 이달 중 시행규칙 개선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다윈검사는 2016년 5월24일부터 같은해 7월26일까지 21명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검사는 신경과 전문의가 판독했고, 검사를 수행한 기관은 검사 중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없었다고 보고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